억지가 득세하는 세상이 두렵다
해방 후 반민특위 때문에 국민이 분열되었다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은 우리를 몹시 당혹스럽게 한다. 비판이 쏟아지자 그는 다음 날 말꼬리를 살짝 돌렸으나, 결국 그 소리가 그 소리였다. 2~3일이 지나면서 그 이야기는 '선거개편'과 '버닝썬' 등 다른 이슈에 묻혀 관심권에서 점차 멀어지는 듯하지만, 그의 발언은 그럴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우리가 그 발언을 특별히 주목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사안의 중대성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그처럼 황당한 억지 주장이 잇따라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된 '5·18 망언'이 강시처럼 되살아나 국회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는가 하면, 이미 몇 차례나 결론이 난 '태블릿 PC 조작설'도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제1 야당 대표가 끄집어냈다. 두 사건 모두 진실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나와 있는데도, 그랬다. 이른바 '태극기부대'가 목청을 키우며 북 치고 장구 치는 바람에 '갈증'을 느낀 집단이 놀아난 것 아니냐고 보는 사람도 있다.
실은 그게 다 '옳은가, 그른가? 맞는가, 틀리는가?'보다 '나나 우리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라는 비뚤어진 잣대 때문에 빚어진 비극적 현상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코 견해가 달라 생긴 문제가 아니다. 몇 해 전 필자가 다른 칼럼에서 언급한 두려운 이야기가 있다. 여론을 조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수법으로, 사실(事實)을 바꿔치기 해 사실(死實)로 둔갑시키며 사악한 사실(邪實)을 섞은 뒤,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의 역사적 사실(史實)로 만드는 '작업 과정'이다.
'5·18 망언'이나 '태블릿 PC 조작설'도 진실을 바꿔치기하며 사람을 속이고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멱살을 잡고 인질극을 벌이며 억지를 부리던 한유총의 분탕질도 그 연장선상일 듯 싶다. 사람들은 사실(邪實)을 끼워 넣으려고 기를 쓰는 것을 다 보았다. 억지가 득세하는 세상을 이어가고자 했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첫머리로 돌려, 나경원 원내대표의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의 약칭)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반민특위는 이 나라 현대사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대표적인 사례다. 1945년 해방이 되고, 1948년 국회는 일제청산을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만든다. 독립 운동가들과 그들 돕던 민초들을 때려잡고 수탈하고 학대하던 고등계 형사들은 물론, 일제와 야합해 단물 빨던 부호들을 처벌 대상으로 하는 법률이었다.
이 법에 따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고, 맹렬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때 이승만 씨는 기반 정치세력이 없어 고등계 형사 등 친일 기득권 세력과 손을 잡고 정치를 시작했다. 따라서 반민특위를 곱게 볼 리 없었다. 그는 "반민특위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담화를 내놓더니, 급기야 서울 중부경찰서장에게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중부서장 지휘로 경찰관 80여 명이 반민특위 사무실에 쳐들어가 조사관들을 폭행하고 조사서류와 집기를 강탈해 갔다. 그렇게 반민특위는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친일청산은 물 건너갔다. 최근 개봉된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조민호 감독)의 마지막 장면에는 유관순을 손톱 고문까지 하던 조선인 간수 정 아무개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자막이 뜬다. 반민특위 습격 과정에서 조사서류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뒷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벌벌 떨던 고등계 형사 등 친일 기득권 세력은 가슴을 펴고 활개 치면서 갑질 행세를 했고 빨갱이를 잡으러 다닌다고 설쳐댔다. 그리고는 이승만 정권의 여당인 자유당에 몰려 들어가 으스댔다. 이들은 이후 박정희 씨가 쿠데타로 집권하자, 대부분 그 정권의 여당인 민주공화당원이 되었다. 민주공화당은 이 나라 기득권층인 민자당, 신한국당 등 이른바 지배세력으로 이어져 왔다. 이를 모르는 사람 또한 별로 없다.
이승만 씨는 친일세력을 가차 없이 단죄하고 역사와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웠어야 했다. "독립운동 하던 집안 자식들은 다리 밑에서 살고, 완장 찬 친일 기득권 세력 자식들은 잘 먹고 잘살더라"는 이야기가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달랐다. 나치 점령 기간이 4년여로 우리보다 짧았지만, 1944년 나치 독일에서 해방되자 혹독한 응징이 이어졌다. 보복 약식 재판으로 1만여 명이 처형됐고, 최고 재판소의 정식 재판을 통해 766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9만 5000명이 실형 선고를 받았으며, 특히 언론인과 작가에게는 '프랑스의 정신을 타락 시켰다'며 경영진 처형·재산 몰수 등의 처벌이 뒤따랐다.
이 나라 '반민특위 이야기'에는 프랑스와는 너무나 다른 눈물이 질펀하게 깔려있다. 따라서 생기지 말았어야 할 반민특위 때문에 국민이 분열되었다는 이야기는 해서는 안 되는 소리였다. '반민특위 이야기'와 '5·18 망언'과 '태블릿 PC 조작설', 그건 누가 뭐래도 다 억지다.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 밝혀졌는데도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며 억지를 쓰고 뒤집으려 하는 건 죄를 짓는 일이다. 역사의 죄인으로 불릴 수도 있다.
그런 나라는 건강한 나라가 아니다. 유불리만을 따지며 억지를 부리면 나라는 골병이 들 수도 있다. 얼토당토 하지 않은 억지가 줄줄이 뛰쳐나와 얼굴을 들고 돌아다녀서야 되겠는가
해방 후 반민특위 때문에 국민이 분열되었다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발언은 우리를 몹시 당혹스럽게 한다. 비판이 쏟아지자 그는 다음 날 말꼬리를 살짝 돌렸으나, 결국 그 소리가 그 소리였다. 2~3일이 지나면서 그 이야기는 '선거개편'과 '버닝썬' 등 다른 이슈에 묻혀 관심권에서 점차 멀어지는 듯하지만, 그의 발언은 그럴 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우리가 그 발언을 특별히 주목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사안의 중대성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그처럼 황당한 억지 주장이 잇따라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된 '5·18 망언'이 강시처럼 되살아나 국회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니는가 하면, 이미 몇 차례나 결론이 난 '태블릿 PC 조작설'도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낸 제1 야당 대표가 끄집어냈다. 두 사건 모두 진실 여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나와 있는데도, 그랬다. 이른바 '태극기부대'가 목청을 키우며 북 치고 장구 치는 바람에 '갈증'을 느낀 집단이 놀아난 것 아니냐고 보는 사람도 있다.
실은 그게 다 '옳은가, 그른가? 맞는가, 틀리는가?'보다 '나나 우리에게 유리한가, 불리한가?'라는 비뚤어진 잣대 때문에 빚어진 비극적 현상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들이 많다. 결코 견해가 달라 생긴 문제가 아니다. 몇 해 전 필자가 다른 칼럼에서 언급한 두려운 이야기가 있다. 여론을 조작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흔히 쓰는 수법으로, 사실(事實)을 바꿔치기 해 사실(死實)로 둔갑시키며 사악한 사실(邪實)을 섞은 뒤,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의 역사적 사실(史實)로 만드는 '작업 과정'이다.
'5·18 망언'이나 '태블릿 PC 조작설'도 진실을 바꿔치기하며 사람을 속이고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멱살을 잡고 인질극을 벌이며 억지를 부리던 한유총의 분탕질도 그 연장선상일 듯 싶다. 사람들은 사실(邪實)을 끼워 넣으려고 기를 쓰는 것을 다 보았다. 억지가 득세하는 세상을 이어가고자 했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를 첫머리로 돌려, 나경원 원내대표의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의 약칭)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반민특위는 이 나라 현대사에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대표적인 사례다. 1945년 해방이 되고, 1948년 국회는 일제청산을 위해 반민족행위처벌법을 만든다. 독립 운동가들과 그들 돕던 민초들을 때려잡고 수탈하고 학대하던 고등계 형사들은 물론, 일제와 야합해 단물 빨던 부호들을 처벌 대상으로 하는 법률이었다.
이 법에 따라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되고, 맹렬한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때 이승만 씨는 기반 정치세력이 없어 고등계 형사 등 친일 기득권 세력과 손을 잡고 정치를 시작했다. 따라서 반민특위를 곱게 볼 리 없었다. 그는 "반민특위가 삼권분립에 위배된다"는 담화를 내놓더니, 급기야 서울 중부경찰서장에게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하라고 명령을 내린다.
중부서장 지휘로 경찰관 80여 명이 반민특위 사무실에 쳐들어가 조사관들을 폭행하고 조사서류와 집기를 강탈해 갔다. 그렇게 반민특위는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친일청산은 물 건너갔다. 최근 개봉된 영화 <항거:유관순 이야기>(조민호 감독)의 마지막 장면에는 유관순을 손톱 고문까지 하던 조선인 간수 정 아무개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자막이 뜬다. 반민특위 습격 과정에서 조사서류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뒷이야기를 따라가 보면, 벌벌 떨던 고등계 형사 등 친일 기득권 세력은 가슴을 펴고 활개 치면서 갑질 행세를 했고 빨갱이를 잡으러 다닌다고 설쳐댔다. 그리고는 이승만 정권의 여당인 자유당에 몰려 들어가 으스댔다. 이들은 이후 박정희 씨가 쿠데타로 집권하자, 대부분 그 정권의 여당인 민주공화당원이 되었다. 민주공화당은 이 나라 기득권층인 민자당, 신한국당 등 이른바 지배세력으로 이어져 왔다. 이를 모르는 사람 또한 별로 없다.
이승만 씨는 친일세력을 가차 없이 단죄하고 역사와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웠어야 했다. "독립운동 하던 집안 자식들은 다리 밑에서 살고, 완장 찬 친일 기득권 세력 자식들은 잘 먹고 잘살더라"는 이야기가 나와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프랑스는 달랐다. 나치 점령 기간이 4년여로 우리보다 짧았지만, 1944년 나치 독일에서 해방되자 혹독한 응징이 이어졌다. 보복 약식 재판으로 1만여 명이 처형됐고, 최고 재판소의 정식 재판을 통해 766명의 사형이 집행됐다. 9만 5000명이 실형 선고를 받았으며, 특히 언론인과 작가에게는 '프랑스의 정신을 타락 시켰다'며 경영진 처형·재산 몰수 등의 처벌이 뒤따랐다.
이 나라 '반민특위 이야기'에는 프랑스와는 너무나 다른 눈물이 질펀하게 깔려있다. 따라서 생기지 말았어야 할 반민특위 때문에 국민이 분열되었다는 이야기는 해서는 안 되는 소리였다. '반민특위 이야기'와 '5·18 망언'과 '태블릿 PC 조작설', 그건 누가 뭐래도 다 억지다. 움직일 수 없는 진실이 밝혀졌는데도 자신들에게 불리하다며 억지를 쓰고 뒤집으려 하는 건 죄를 짓는 일이다. 역사의 죄인으로 불릴 수도 있다.
그런 나라는 건강한 나라가 아니다. 유불리만을 따지며 억지를 부리면 나라는 골병이 들 수도 있다. 얼토당토 하지 않은 억지가 줄줄이 뛰쳐나와 얼굴을 들고 돌아다녀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