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는 14일 <8시 뉴스>에서 1980년 5.18 당시 미국 국무부의 비밀 전문을 입수해 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이 비밀 전문에 따르면, 1980년 5월 25일 오전 9시 머스키 당시 미 국무장관은 한·중·일 대사관 등에 보낸 비밀 전문에서 "군의 실력자 전두환 장군(당시 보안사령관)이 (5.18민주화운동에 관해) 군사 작전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아울러 머스키 전 장관은 "마지막 협상 시도가 실패하면 진압 작전이 시작될 예정"이라며 "이 경우 합참의장이 미국에 먼저 알려주기로 약속했다"고도 전했다.
이어 다음 날인 5월 26일에는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 대사가 최광수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난 후, 머스키 전 장관에게 긴급 전문을 보내 '27일 0시경 진압 작전이 시작된다'고 보고했다. 이 보고 후, 미국 시각 5월 26일 오전 7시, 머스키 전 장관은 '한국 상황 보고서'를 통해 '전두환 장군이 상황을 끝내기 위한 광주 진입에 강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또 "(대한민국의) 합참의장이 주한 미군 사령관에게 27일 0시부터 계엄군을 투입한다고 알렸다"고도 전했다.
즉, 전 씨가 민주화운동에 나선 광주 시민 학살을 직접 계획했고, 사전에 미국 측과도 관련 내용을 공유했다는 뜻이다. 그간 자신의 책임을 강하게 부인하던 전 씨의 모든 주장이 거짓이었음을 미국 측 자료를 통해 확인한 셈이다. 국내 주장이 아닌, 미국 정부 측의 자료를 통해 밝혀진 내용이라 특히 5.18을 왜곡해 온 국내 극우세력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전 씨의 거짓 주장을 미국 문서를 통해 입증 가능했던 이유는 전 씨의 쿠데타 이후 한국의 엄혹한 정치 상황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재의 5.18기념재단 조사위원은 SBS와 인터뷰에서 "제5공화국을 지나면서 (전 씨의 이름이 국내 문서에서) 지워졌던 것 같다"며 "반면 미국 문서에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밝혔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의 날조도 전 씨가 직접 주도했음을 입증하는 근거도 미 국무부 비밀 문건에서 나왔다.
이와 관련, 전 씨는 거짓으로 일관해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은 회고록에서도 당시에 관해 '북한 특수군의 개입 정황이 있었다"는 식의 주장을 되풀이 한 바 있다.
북한군 투입설은 제5공화국 들어 안기부와 국방부를 중심으로 민간에 유포되었다는 게 그간 학계의 정설이었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단 한 차례도 확인되지 않았다.
미 국무부 비밀 문건은 이 같은 주장을 전 씨가 했다고 기록했다. 광주를 유혈 진압한 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장이 된 전 씨는 1980년 6월 4일, 주한 미 상공회의소 기업인들과 만찬을 했다. 이 자리에서 전 씨는 광주에 관한 미국 기업인들의 질문을 받자 "22명의 신원 미상 시신이 발견됐는데 모두 북한의 침투 요원으로 본다"고 답했다.
전 씨는 아울러 "5.18의 책임은 김대중에게 있으며, 그를 기소해 이를 입증하겠다"고도 주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전 극우 세력으로부터 끊임없이 북한과 내통하는 빨갱이라는 식의 공격을 받았다. 미 국무부 문건에 따르면, 이 같은 논리를 만든 주범이 바로 전 씨다.
정의당 최석 대변인은 15일 논평을 내고 "5.18광주 민주화항쟁 당시 미국 국무부 비밀 문건에서 최종 진압 작전의 지시에 대해 '전두환이 결정했다'고 명시하고 있음이 드러났다"며 "전두환은 그간 회고록까지 출간해가며 끝끝내 자신의 죄를 부정했지만, 결국 끔찍한 살상의 최종 책임자였음이 명백히 밝혀진 것"이라고 했다.
최 대변인은 "현재 계엄군에 의한 집단 성폭행 등 20년 전 재판에서 기소·인정되지 않았던 죄상들이 새롭게 수면 위로 드러났고, 1995년 제정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과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에 의해 공소시효 진행 또한 정지된 상황"이라며 "전두환에 대한 조속한 수사와 죄에 따른 엄중한 형사책임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