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 속 하루하루 달라지는 기온의 변화를 문득 느낄 때 우리는 계절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단지 기온의 변화뿐 아니라 우리 주변의 생물들을 통해서도 이런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봄의 전령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위를 이겨내고 산과 들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야생화를 떠올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겨울의 전령을 꼽으라고 한다면, 어떤 생물들이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기러기나 청둥오리와 같은 겨울철새를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겨울이면 찾아오는 손님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는 새들은 각기 고유의 이동성을 가지는데 각각의 이동성에 따라 텃새, 여름철새, 겨울철새, 통과철새 등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철새들이 우리나라를 찾아오는데 그 중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철새 중에는 고니, 기러기, 청둥오리, 두루미 등과 같이 유달리 사람들에게 더 친숙한 종류들이 많습니다. 이는 덩치가 크고 강이나 호수 등의 넓은 습지에 무리를 지어 사는 종류들이 많아 다른 철새들에 비해 대체로 쉽게 관찰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와 함께 겨울철새 중에는 그 수가 많지 않아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는 종도 많은데, 그만큼 매스컴의 관심을 많이 받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친숙하게 느껴지는 점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500여 종 이상의 새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중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보내는 겨울철새의 정확한 종/수를 산정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150여 종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중 대표적인 겨울철새로는 기러기류, 오리류, 고니류, 두루미류, 말똥가리류, 갈매기류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얼마나 많은 겨울철새들이 찾아올까요?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에서는 매년 겨울 겨울철새가 많이 월동하는 전국의 주요 습지 200개소를 대상으로, 어떤 종류의 새들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같은 날 동시에 조사를 해오고 있습니다.
올해 1월에는 전국 200개 습지에서 총 190종 133만여 마리의 새가 관찰되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겨울철새로 200개소 이외에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한 지역에도 겨울철새가 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매년 100만 마리 이상의 겨울철새가 우리나라를 찾아와 겨울을 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겨울철 동시조사 결과에서 가창오리가 35만여 마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가 월동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다음으로 청둥오리, 쇠기러기, 떼까마귀가 월동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들 겨울철새들 중 분류학적으로 기러기목(Order Anseriformes) 오리과(Family Anatidae)에 속하는 종들인 오리류, 기러기류, 고니류들이 92만여 마리로 전체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어 가장 대표적인 겨울철새라 할 수 있습니다.
▲ 연천에서 만난 설원 위 두루미. ⓒ함께사는길(이성수)
겨울철새는 어디에서 날아올까?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겨울철새들은 봄이 되면 북쪽의 번식지로 다시 돌아갑니다. 봄과 여름 동안 번식지에서 알을 낳고 새끼를 키워 가을이 되면, 다시 우리나라로 되돌아오는 먼 여정을 매년 되풀이합니다.
그렇다면 겨울철새들이 번식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번식지와 월동지로 가기 위해 얼마나 먼 거리를 이동할까요? 겨울철새들이 번식하는 지역의 위치와 범위는 종마다 차이가 있고 현재까지도 이에 대해 명확히 다 밝혀진 것은 아닙니다. 그간 각 지역에서의 관찰 결과를 통해 대체로 우리나라보다 고위도 지역에 넓은 범위로 퍼져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근에는 위치추적장치와 같은 첨단기술을 활용해 종별로 정확한 번식지역과 월동지역, 그리고 이 두 지역 사이의 이동경로를 파악해 나가고 있습니다. 위치추적장치를 이용한 국립생물자원관의 종별 이동경로 연구에 따르면 청둥오리는 극동 러시아 북부에 위치한 부라티야와 이르쿠츠카야, 중국 북부의 내몽골과 흑룡강성 등에서 번식하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월동지인 우리나라까지의 이동거리는 직선거리로 약 1500킬로미터에서 약 2700킬로미터나 되었습니다.
특히 쇠기러기, 홍머리오리는 러시아의 추코츠키 지역, 가창오리는 러시아의 레나 삼각주가 번식지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들 지역은 북극과 인접한 고위도 지방으로 우리나라로부터의 직선거리만 4000킬로미터 이상 되는 아주 멀리 떨어진 지역들입니다.
왜 겨울철새들은 이렇게 힘들게 먼 거리를 이동할까요? 이는 각각의 계절에 따라 가장 살기 좋은 환경을 찾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오리류나 기러기류는 번식기가 되면 광활하게 펼쳐진 초지와 습지 환경을 좋아합니다. 이런 환경은 새끼를 낳고 키우는 시기에 서로 간의 경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제공해 주며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동물성 먹이가 풍부해지기 때문입니다.
새끼들이 다 자라나면 번식지에도 겨울이 찾아옵니다. 고위도 지방의 겨울은 빨리 찾아올 뿐 아니라 그 추위는 매우 혹독합니다. 추위에 잘 적응한 오리류나 기러기류라 할지라도 그러한 추위를 이겨내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겨울이 따뜻하고 먹이를 구할 수 있는 우리나라로 날아오는 것입니다.
점점 힘들어지는 겨울나기매년 겨울이 되면 다양하고 많은 수의 겨울철새가 우리나라를 찾아옵니다. 이 중에서 2014년 이후 겨울이 되면 가장 주목받는 겨울철새가 있습니다. 바로 가창오리입니다. 주목을 받는 이유가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철새 중 가장 수가 많기 때문일까요? 안타깝게도 조류인플루엔자(AI)와 관련된 오해가 더 큰 주목을 받게 된 이유인 것 같습니다.
2014년 1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1000여 마리의 가창오리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언론의 '오보'가 있었습니다. 이후 가창오리는 우리나라를 찾는 겨울철새를 대표해 조류인플루엔자의 매개체라는 불명예를 안고 매년 겨울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당시 전북의 한 저수지 수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가창오리 무리를 모두 죽은 것으로 본 것이 이런 어이없는 오보를 만든 발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해 우리나라를 찾은 가창오리 38만여 마리 중에서 폐사체로 발견된 것은 고작 130여 마리뿐이었으며, 이조차도 10회에 걸쳐서 발견된 수입니다.
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해서는 닭이나 사육오리를 대상으로 현재까지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야생조류와 관련된 부분에 있어서는 연구의 결과가 많지 않을뿐더러 결과의 해석에 있어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황으로 특정 상황에 대해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가창오리에 대해서는 살아있는 개체가 아닌 일부 폐사체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가 검출된 것으로 볼 때 역학 관계상 바이러스의 전파자라기보다는 피해자라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입니다. 다시 말해 AI의 주범이라고 오명을 쓰기에는 너무 억울한 측면이 있습니다.
과거 겨울의 진객으로 대접받던 많은 오리류와 기러기류들은 서식지의 감소와 환경변화, 이에 따른 먹이 부족으로 인해 매년 힘든 겨울나기를 해오고 있습니다. 여기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의 전파자라는 오명이 더해져 우리나라에서의 겨울나기가 더욱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건강하면 감기를 잘 이겨내듯이 겨울철새들이 안정된 휴식과 충분한 먹이 섭취를 통해 건강하게 겨울을 나고 번식지로 되돌아가는 것이 이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가금류에서의 조류인플루엔자 발생을 줄이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