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에 반한 멕시칸들, 판소리에 “얼쑤” 사물놀이하며 ‘덩실’
팬클럽의 번개모임 6월 28일 멕시코시티 중심부인 레포르마 거리에서 케이팝 팬클럽 회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플래카드를 들고 ‘번개미팅’을 가졌다. 이 자리에는 빅뱅,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2NE1,샤이니, 원더걸스, FT아일랜드 등 20여 그룹의 팬클럽 회원 100여 명이 참석했다. 멕시코시티=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
6월 26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서쪽 산타페 주거단지 광장에 갑자기 한국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빅뱅,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소녀시대 등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가수들의 노래 24곡이 메들리로 나오는 가운데 100여 명의 멕시코 청소년들이 일사불란한 댄스를 선보였다. 케이팝 가수들의 댄스와 한 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들은 멕시코 한류 팬클럽 연합단체 ‘멕시코리아(Mexicorea)’ 회원들. 이달 말 있을 대규모 한류 축제 ‘케이팝 멕시코리아 페스티벌’에서 선보일 춤과 노래를 최종 연습하던 참이었다. 회원 3300명 중 엄격한 심사를 통해 선발된 이들은 매 주말 오전 11시∼오후 5시 광장에 모여 연습을 한다.
로시오 살리나스 회장(29·여)은 “케이팝 팬클럽이 워낙 다양해 24곡을 선곡하는 데 큰 애를 먹었다”며 “멕시코시티에서 페스티벌이 열리는 동안 과달라하라 몬테레이 등 다른 주요 도시에서도 회원들이 광장공연을 한다”고 소개했다.
○ 라틴 정취 속을 파고든 케이팝미국 유럽 일본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중남미 대륙도 한류 열풍이 한창이다. 특히 멕시코에서 확인한 ‘케이팝 열기’는 가히 폭풍 수준이다. 한류 팬클럽은 셀 수 없을 정도이며 100명 이상 회원을 가진 대형 클럽만 50∼60개에 달한다. 지난달 케이팝을 소개하는 특별 프로그램을 방송한 멕시코 공중파 방송 아스테카는 멕시코 내 케이팝 팬을 4만 명가량으로 추산했다.
빅뱅, SS501, 2PM, 2AM의 팬이라고 소개한 마이라 에르난데스 씨(19·여·대학생)는 “부모님도 한류 팬클럽 활동을 적극 지지해 주신다”면서 “그 대신 그냥 노래와 춤만 좋아하지 말고 한국말까지 아예 정식으로 배우라고 말씀해 주신다”고 말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과 함께 ‘별은 내 가슴에’(2002년) ‘겨울연가’(2005년) ‘대장금’(2009년) 등의 드라마가 상륙하면서 시작된 ‘멕시코 한류’는 영화로도 번졌다. 2008년 멕시코 국립영화소가 주최한 국제영화포럼에서 한국 영화는 참가국 중에 가장 많은 10편이 상영됐다. 올 10월에 열릴 국제영화포럼에서는 아예 한국영화 주간을 따로 만들 계획이다. 멕시코 중부 과나후아토에서 매년 11월 열리는 과나후아토 국제단편영화제에서는 올해 한국이 주빈국으로 선정돼 한국영화 78편이 집중적으로 상영된다.
○ 한국문화의 뿌리를 찾는 진지한 관심
영상물로 시작한 한국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은 이제 케이팝으로 절정에 이르면서 한국문화의 뿌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6월 26일 저녁 멕시코시티 코리아타운으로 통하는 소나 로사 구역의 한국 음식점 명동회관 3층에서는 멕시코인들로 구성된 사물놀이 공연단 ‘휘모리’의 신명나는 사물놀이 장단이 울려 퍼졌다. 이들은 곧 있을 몬테레이 지방 공연에 대비해 1시간 넘게 영남가락, 호남 자우도 가락, 우따리 가락, 짝새 가락 등을 연습하고 있었다.
‘휘모리’는 한국 전통문화를 사랑하는 멕시코인들이 2007년 만든 단체. 학생과 직장인 15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15세부터 37세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이들은 한국 사물놀이 공연 비디오를 일일이 분석하고 멕시코와 다른 남미 국가에서 한국인 선생님까지 초빙해 실력을 다듬는다. 5월 멕시코시티 주최로 열린 ‘세계 우호 문화축제’ 개막식에서는 한국을 대표해 거리행진까지 했다. 단장격인 웬디 로드리게스 씨(37·여)는 “단원을 모집할 때면 100명 이상 지원자가 몰린다”며 “한국 드라마나 가요를 좋아하게 된 후 한국 전통문화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판소리와 함께 멕시코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또 다른 ‘한국 뿌리 알기’는 다름 아닌 한국어 배우기 열풍.
멕시코에서 한국말을 배울 수 있는 곳은 대학 부설 언어교육 프로그램과 한글학교다. 대학 부설 프로그램은 현재 멕시코자치국립대, 콜리마대, 나야리트대 등 3, 4곳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지난해부터 수강생이 급증하고 있다. 멕시코자치국립대 부설 국제언어교육원의 경우 3단계 수준으로 나눠 진행되는 한국어 수업에서 2, 3년 전만 해도 50명에 못 미쳤던 수강생이 올해는 100명에 달하고 있다.
멕시코시티에 있는 한글학교 김혜경 교장은 “멕시코 수강생들이 ‘방학이 필요없다’면서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요청해 여름학교 프로그램을 개설했다”며 “여름학교 기간에는 한국 언어예절을 배우는 문화수업, 쿠킹 클래스, 사물놀이 부채춤 등 전통예술 교육 등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슈퍼주니어 팬클럽 회원이라고 밝힌 샤론 우르비나 씨(26·여·요리사)는 “한국 노래 가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한국어 특유의 리듬감은 좋아한다”며 “기본적인 한국어 표현을 알고 싶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5월 14일부터 29일까지 멕시코시티의 최대 중심거리인 레포르마 거리에서 열린 ‘우호의 문화축제’는 멕시코 한류의 열기를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멕시코에 사는 다양한 민족들의 문화를 소개하는 이 행사에서 한국은 유일하게 2개 부스를 차지한 국가였을 만큼 많은 멕시코 관람객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멕시코 자원봉사자들의 활약도 눈부셨다. 서남교 주멕시코 한국대사관 문화홍보관은 “다른 국가들은 행사요원만 간단하게 나와 있는데 한국은 자원봉사자들만으로도 부스가 꽉 차는 진풍경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내년 한-멕시코 수교 50주년을 앞두고 멕시코시티 부촌 폴랑코 지역에 올 11월 3층짜리 단독 건물인 한국문화원을 개원할 예정이다.
멕시코시티=정미경 특파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