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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1월 7일] YS, 재산 환원 이후는?
재작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타계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김영삼 전 대통령의 눈치를 살폈다. 민주화투쟁을 함께 해온 동지이자 평생 라이벌이었던 사람의 죽음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은 퇴임 이후, 대통령직을 승계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을 기회 있을 때마다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1999년 10월 16일 부산 민주공원 개원식에서는 면전에서 독재정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DJ 사후 보기흉한 언동 줄어
국가 원로로서 전직 대통령의 금도를 보고 싶어 했던 사람들은 품위 없고 주책없는 행동에 크게 실망했다. "제발 입 좀 다물고 가만히나 계시지."이런 말을 하며 혀를 차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랬던 YS는 DJ가 중병이 들자 문병을 가 화해를 선언했고, DJ 서거를 누구보다 더 슬퍼했다. 그 연말에는 DJ의 동교동계 사람들을 초청해 화해의 만찬을 함께 했다. DJ의 장례가 국장으로 치러짐에 따라 YS가 타계할 경우 장례를 어떻게 치러야 하느냐는 숙제가 생겼지만, 그 뒤 국장과 국민장을 국가장으로 통합함으로써 이 문제는 저절로 해결됐다.
임기 말에 IMF를 맞아 평가가 일그러지긴 했어도 YS가 범상한 대통령은 아니었다. 군의 사조직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공직자 재산등록제 도입은 조선총독부 청사를 때려 부술 만큼 결단력을 갖춘 그가 아니었으면 실행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퇴임 이후 품위 없는 행동으로 비난을 자초했던 YS는 DJ의 사후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런 YS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키로 했다. 50년간 살아온 상도동 자택과 거제도 임야는 사단법인 김영삼 민주센터에, 거제도 생가와 기록관은 거제시에 맡긴다고 한다. 모두 합쳐 50억원 상당이라고 한다. 이미 유언에 의한 증여 형태로 공증절차를 마쳤다.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이고 영원히 못 산다"는 게 YS의 말인데, 대통령 취임 당시에도 그는 "평생 땅 한 평 늘린 적이 없다. 이 모습 그대로 퇴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YS의 환원행위는 자기가 자기에게 선물을 주는 꼴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 환원이 아니라 자기 묏자리를 키운 일이라는 것이다. 거제시에 기부한 재산은 이를 처분하지 못하는 조건이어서 시 예산으로 생가를 보존ㆍ관리하도록 덤터기를 씌운 것이라고 흥분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아들 중 현철씨는 이미 해 먹을 만큼 다 해 먹은 사람이니 재산을 물려줄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한다.
사실 그런 점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전직 대통령 중 처음이라는 재산 환원이 좀더 의미가 깊고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갈 수 있는 방향으로 추진됐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DJ의 경우도 아태평화재단을 연세대에 기증하고, 노벨평화상 상금 중 일부를 기부해 김대중 도서관을 만들게 했지만 따지고 보면 자기 현창사업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YS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올해 84세이니 죽음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이다. 공증을 마쳤다는 유언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재산 기부에 관한 말뿐이라면 실망스러울 것이다. 나라와 민족 사랑이 담긴 메시지를 담아, DJ와 달리 아주 소박한 장례를 치르게 하거나 국립묘지를 고집하지 말고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처럼 향리로 돌아가는 건 어떨까.
의미있는 장례가 될 수 있게
DJ가 타계했을 때 놀라웠던 것은 죽음 준비가 안돼 있는 것처럼 보인 점이었다. 사후에 공개된 일기에서는 건강과 행복에 대한 의지, 가족(특히 아내) 사랑, 시국에 대한 분노를 읽을 수 있었지만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오히려 마지막으로 입원할 때도 퇴원할 때 쓰려고 지팡이를 가져갔다고 한다.
이제, 전직 대통령 중에서 유일하게 좋은 선례를 남길 수 있는 기회가 YS에게 주어졌다. 정치 무대든 삶의 무대든 아름다운 마무리가 필요하다. 특히 국가원수의 죽음은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공공자산이 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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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1/01/06 21: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