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정신-간질 환자 1만1000명이 운전대 잡았다
제대로 된 적성검사를 받지 않고 운전면허를 보유한 정신질환자와 간질 환자가 1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에 대한 운전 적격 여부 검사를 전면 재실시하기로 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22일 “이르면 6월부터 장애인 등록자 중 정신질환자와 간질 환자 등 운전 부적격 가능성이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수시적성검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ㆍ2종 운전면허 소지자 중 정신질환자와 간질 환자는 지난해 3월 현재 1만 5053명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 중 1만1297명이 운전 적격 여부를 가리는 정밀 검사인 수시적성검사를 받지 않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수시적성검사란, 1ㆍ2종 운전면허 소지자 중 안전운전에 장애가 되는 후천적 신체장애 등을 가진 경우 면허시험장에서 정하는 전문의의 정밀 감정을 받아 운전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다. 질환이 깊어 운전에 부적격하게 된 이를 걸러내기 위한 것. 면허 취득일 기준으로 7년(65세 이상은 5년)마다 받아야 하는 정기적성검사와는 다르다. 일부 환자들은 면허시험장에서 병력 확인을 자기신고서로 대체한다는 것을 악용해 병력을 누락해온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생계 등을 위해 반드시 운전을 해야하는 환자 등이 자발적으로 신고하지 않으면 사실상 병력을 알 수 없었던 것”이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자료를 받아 대상자 전원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의 정밀 진단을 거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부터 1만여명의 관련 환자에 대해 수시적성검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문제는 도로교통법 시행령에 있었다. 경찰은 관련 질환자 자료를 군, 병무청, 지자체, 치료감호소, 근로복지공단 등 여러 곳에서 자료를 넘겨받아 수시적성검사 대상자를 선정한다. 그러나 도로교통법 시행령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관련 자료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음에도 정신질환자, 간질환자 자료를 경찰에 통보할 의무가 없는 것. 현재까지는 시행령에 따라 보건복지부장관은 마약류 관련 장애만 경찰에 통보하도록 돼있어 문제였다. 경찰청은 지난해 감사원으로부터 이같은 지적을 받고 법령 개정에 나섰다.
경찰은 관련 개정안을 최근 경찰위원회와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입법예고하고, 이르면 오는 6월부터 시행할 계획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이들 모두가 운전 결격자는 아니지만 치료 기간과 발병 횟수, 약물 복용 정도 등에 따라 종합적으로 판단해 면허 갱신 여부를 가릴 것”이라고 말했다.
임희윤 기자/imi@herald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