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영적 정체성 3

한민족의 영적 정체성 3

복음제일교회 0 1,819 2021.01.18 23:36

도대체 우리 민족은 어디서 왔을까?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왕검은 도대체 누구이며, 그는 무엇을 했을까?

언젠가 TV 다큐먼트리에서 고인돌의 유물에서 동물의 뼈(말 뼈), 청동칼 등이 발견되었다고 들었다.

마지막에 하는 말이 단군은 제사장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물론 기독교 tv가 아니었는데, 어느 방송사였는지는 기억이 안난다.

 

결국 우리 시조 단군은 하늘의 하나님께 제사를 지내되, 희생제물(동물)을 드렸고, 희생제물을

드릴때 항상 칼을 이용하여 피를 제단에 뿌렸다는 것에 주목할 수 있는데,

이것은 구약성경 창세기의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 수없이 많이 나오는 희생제사와

동일하며, 그 구체적인 것이 모세에 의해 행해짐이 또한 기록되어져 있다.

이 동물의 피는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를 상징하고, 피가 없는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는다고 했다.

가인과 아벨에서도, 가인은 피제사가 없어 하나님이 제물을 받지 않았고, 아벨은 피제사를

드려 제물이 열납되었다.

주몽이나 태왕사신기 같은 드라마에서 신녀가 동물의 피를 내고 제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제사장은 여자가 아니고, 남자라는 것이 정설이고, 드라마처럼 신녀가 꼭 무당같이

행동하는데, 단군은 그런 무당같은 제사장이 아니다는 것이다.

단군은  하늘의 하나님께 희생제사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동물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하나님께 제사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단종교단체(승리제단)에서는 우리 민족의 야곱의 12지파중 단지파라고 우기지만,

연대적으로 맞지 않다. 즉, 단군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아니고, 그 훨씬 윗단계의 사람일 것이다.

 

 

창세기 8:20 (노아가 번제를 드림).

노아의 희생제사 사건을 보면서, 성경에는 하나님이 희생제사를

드리라고 기록되지 않았지만, 노아는 희생제사를 드린 것이다. 즉, 노아는 윗조상으로부터

희생제사드리는 것을 교육받은 것이다. 그럼 그 조상은 어느 때부터일까 아마도 아담이라고

생각된다.

 

창세기 3:1(가죽옷=짐승을 잡고,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었다. 즉, 범죄한 아담때부터 희생제사 드림)

창세기 4:4 (양의 첫새끼와 그 기름으로 예물드렸고)

이것이 결국 노아가 드릴 번제와 동일할 것이다는 것이다.

 

 

참고할만한 자료를 퍼왔으니, 참고 바랍니다.

 

 

퍼온곳 :

 

http://www.darakwen.net/news/NewsList.asp?pg=3&CodeName=사설/컬럼&TCode=12&MCode=17&LCode=10

 

 

" [한민족 영적 정체성 탐구(4)]/ 한반도는 돌제단 고인돌 왕국 "

기독교가 전파된 지 100여 년 만에 세계에서 유례없이 폭발적인 성장을 한 한국교회를 두고 그동안 여러 가지 의견들이 제기돼 왔다. 한국민족은 고대로부터 하느님을 잘 섬기던 천손민족이어서 그것이 기독교신앙과 접목되었다느니 또 혹자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단 지파가 한민족의 뿌리와 관련이 있느니 하는 등의 의견들이었다. 이러한 다양한 의견 가운데 최근 한국교회 안팎에서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다. 다름 아니라 한민족은 셈의 후손인 욕단의 자손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같은 주장을 한 장본인은 현재 부천 상동중앙교회를 담임하면서 목회를 하고 있는 유석근 목사이다. 그의 저서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은 발간된 직후부터 한국교회는 물론 불신사회에까지 널리 알려져 읽히고 있다. 이에 한민족의 영적 정체성 확인과 함께 민족 복음화운동에 참고하도록 도서출판 예루살렘에서 발간한 이 책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한다.   /편집자

고인돌은 우리의 고대문화를 밝히는 유력한 증거이자, 우리 문화의 뿌리를 찾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나아가 한반도를 둘러싼 고대사를 다시 써야 할 정도로 강력한 뇌관을 지닌 유산이다.
우리나라 전역에서 속속 확인되고 있는 고인돌 중 가장 오래 된 것은 무려 6000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간다. (부장품을 통한 절대 연대측정 자료에 의하면 요령 소재 고인돌은 기원전 20세기에서 15세기에 축조되었으며, 경기도 양평군 양수리에서 발견된 다섯 기의 고인돌은 이 유적에서 채집된 숯에 대한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2325년에 축조된 것으로 산정되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대의 고인돌 유적 보유국이라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고인돌의 건립 연도가 기원전 3000~4000년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은 그 시기부터 국가가 성립되었다는 개연성을 갖는다. 고고학에서는 무릇 국가라는 것은 한 사회가 적어도 청동기를 사용할 줄 알아야만 국가단계의 권력체가 출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고인돌과 함께 발견되는 청동기 부장품의 존재는 그 시대가 이미 국가사회였음을 뒷받침해 준다. 그런데 이 작은 땅에 있는 세계 최대의 고인돌 유적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더욱 중요한 사실은 당시 사회는 알이랑 정신으로 유일신 하느님을 섬겼던 종교적 공동체였다는 것이다.

◆ 지석묘(支石墓)가 아닌 지석단(支石壇)
대홍수 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와 동방의 새 땅에 정착한 고대 한국인은 천일지이(天一地二)에 따라 돌 두 개를 세우고 큰 돌 하나를 위에 덮어서 ‘제단’을 만들었다. 그것이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무덤이 아니다. 동이문화권에 많이 나타나는 고인돌은 원래 아담 때부터 하느님(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드리던 제단의 형태로서, 옛날에 하느님을 공경하던 우리 조상들이 ‘제천의식’을 거행하기 위해 제단으로 축조한 것이다.
아담과 그의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이 하느님(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정성 없이 그냥 맨 땅에 제물을 놓고 제사했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께 바치는 거룩한 제물에 흙과 먼지가 묻는 것과 벌레가 기어 다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불에 타지 않는 돌로 제단을 축조하여 그 위에 희생제물을 올려놓고 번제를 드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최초로 고인돌을 만든 사람은 인류의 조상 아담이었다.
강화도 하점면 부근리에 있는 고인돌은 사적 제137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탁자식 고인돌 가운데 가장 큰 것이다. 덮개돌의 크기는 장축 길이가 650㎝, 너비가 520㎝, 두께가 120㎝, 무게는 약 80톤 정도이다. 받침돌의 크기는 길이가 450㎝와 464㎝, 두께가 60㎝와 80㎝, 높이가 140㎝이다. 덮개돌 두께를 합치면 고인돌 전체 높이는 260㎝나 된다. 이런 형태의 고인돌은 무덤이 아니라 제단으로 축조된 것이다. 여기에서는 대단히 큰 규모의 제천행사가 치러졌을 것이다. 고인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영문(목포대학교 고고학 교수) 박사는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고인돌은 대지상에 거대한 덮개돌이 받침돌에 의해 웅장한 모습을 띤 것이라든지 주위에서 쉽게 관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점에서 무덤으로서의 기능보다는 제단으로서의 기능이 강한 것이다.”(이영문, 「고인돌 이야기」, 다지리, 2001,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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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
이런 형태의 고인돌은 ‘제단’으로 축조된 것이다. 강화에는 약 120기에 달하는 많은 고인돌이 있다.

고인돌은 흔히 족장의 무덤으로 알려져 왔다. 대형 고인돌의 위용과 그것을 축조하는 데 들인 노역을 감안한다면 아무래도 그만한 권력을 지닌 사람의 무덤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이 엄청난 노역을 들여서 거대한 고인돌을 축조했던 단 하나의 까닭은 그것의 용도가 하느님께 경배를 드리기 위한 ‘제단’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무덤 설은 애초에 가정부터 잘못 세우고 나온 엉터리 이론인 것이다. 그것은 우리 겨레 고유의 종교 및 문화가 ‘제천신앙’이었다는 것을 간과한 데서 나온 억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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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 도산리 민가 장독대 옆 고인돌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과 같은 형태로서, 역시 무덤이 아니라 제단으로 축조된 것이다(정종목, 「역사스페셜」, 효형출판, 2000, p.228)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고인돌은 고창 운곡리에 있다. 높이가 약 4m, 200톤 무게의 대형 고인돌이다. 그러나 이 지역 발굴을 담당했던 전영래(전 원광대 교수) 박사는 이 고인돌에서 유골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근처의 다른 고인돌도 마찬가지였다. 신분과 권력을 상징할 만한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전북 고창 매산 마을 산기슭에는 수백기의 크고 작은 고인돌이 널려 있다. 이 고인돌들 역시 1992년 전영래 박사가 발굴 조사했는데 유골은 물론 권력을 상징할 만한 부장품이 전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일부 고인돌은 유적에서 사람의 뼈가 출토된 사례가 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고인돌 당시가 아니라 후대에 일부 무지한 자들이 고인돌 밑에 사람의 시신을 매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주 작은 몇 가지 사례만 갖고서 고인돌을 전부 무덤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난센스이다.
박성수(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 대학원 교수) 교수는 몇 군데 고인돌 밑에서 유골이 나왔다고 해서 고인돌을 묘라고 단정해 버리는 선입견에는 문제가 있다면서 지석묘(支石墓)가 아니라 지석단(支石壇)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한다(박성수,「단군문화기행」, 서원, 2000, p.136). 아주 타당한 지적이다. 고인돌의 정확한 기능은 그 형태가 어떤 것이든 간에 묘가 아니라 ‘제단’이었기 때문이다.

◆ 전국에서 거행된 제천행사의 장소
고인돌의 기능에 대해 19세기 말까지는 대체적으로 제단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무신론 사상이 팽배한 현대에는 고인돌을 선사시대의 돌무덤, 즉 지석묘(支石墓)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며 거석문화의 한 자취로 간주한다. 물론 그릇된 이론이다. 고인돌은 제천행사에서 희생제물을 바치던 감사의 제단이었다. 그것은 다른 지역의 여타 거석문화와는 근본적으로 본질이 다른 것이다. 그래서 고인돌은 천손민족 우리 배달겨레가 갖고 있는 고대사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귀중한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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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곡 양원리(全谷 兩猿里) 고인돌
고인돌의 기능이 무덤이 아니라 제단이었음을 알려주는 특이한 고인돌이 북제주에 있다. 제주도 애월읍 하귀리 관전동 고인돌이다. 이 고인돌은 해안가 조간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밀물 시에는 상석까지 물에 잠겼다가 썰물 시에 상석과 지석은 물론 바닥면(암반)까지도 드러난다. 이것은 결코 무덤일 수 없다. 누가 시신을 물에 잠기는 바닷가에 매장한다는 말인가? 더욱이 시신을 묻기 위해 암반을 파낸 흔적도 없다. 이 조간대 고인돌은 강화도 부근리 고인돌처럼 무덤이 아니라 하느님께 경배하기 위해 제단으로 축조된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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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제주 조간대 고인돌
고인돌 상석은 다공질의 현무암으로 평면 형태는 부정형이나 장방형 꼴에 가깝다. 상석 하부는 남북쪽에 각각 6매의 지석이 고여 있는데 남쪽에는 높이 40Cm, 두께 10Cm 가량인 현무암제 판석형 지석 1매가 고여 있고 그 외에는 크고 작은 자연석을 사용하여 지석으로 이용하였다. 고인돌 상석은 남쪽이 22-32cm 가량 다소 높게 들려져 있고 북쪽은 다소 기울어져 있는 상태이다. 상석의 장축은 N45W방향이며 두께는 30-80Cm 이다. 상석의 길이는 장축 276Cm이고 단축 122-156cm 이다. 이 제주도 조간대 고인돌은 고인돌의 기능이 천단(天壇)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주는 유적이다.

제천행사는 전 국민이 참여하는 국가적 대사였다. 그렇게 국가적 행사로 천제(天祭)를 드리려면 국가의 위엄이 풍겨나는 큰 제단과(강화도 부근리 고인돌), 전국에서 지방별로 나누어 드릴 작은 제단들도 아울러 필요하다. 이것이 만주와 지나(支那) 서부지역(동이족 영역), 한반도 각지에 고인돌이 골고루 산재해 있는 이유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되는 고인돌은 다른 지역과 달리 부장품이 함께 발굴되는 경우가 많다. 주로 화살촉과 돌검이 중심을 이루고 돌도끼 등의 석기와 토기류, 동검 및 청동기 등도 출토된다. 이것은 제물로 바칠 짐승을 잡아서 희생 제사를 드리는 데에 사용한 도구였을 것이다.
제천의식에 대한 역사의 기록은 확실하게 남아 있다. 고구려의 동맹, 동예의 무천, 부여의 영고 등은 창조주 하느님께 제사하는 제천행사였다. 물론 제천행사는 당연히 백두산정과 마리산정의 천제를 필두로 시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국중대회로서 전 국민이 일제히 치러야 했으니 야산이나 들판에도 제천의식의 장소가 마련되어야 했다. 그 거룩한 종교의식을 행하는 장소에 제단으로 축조한 것이 바로 고인돌이었다. 고인돌이 우리나라의 일반적 무덤과는 다르게 주로 평지나 구릉에서 발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고인돌은 제단이었으며 하나의 성역(聖域)이었다.

구약성경 신명기 27장 5절 이하에 보면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다듬지 않은 돌로 하느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으며 하느님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이스라엘 백성보다 훨씬 먼저 단군시대부터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만들어서 그 위에 희생의 제물을 바치고 거기서 먹고 마시며, 노래하고 춤추며 하느님 앞에서 즐거워했던 것이다. 그것이 곧 국중대회로 치러진 ‘제천행사’였다.

◆ 고인돌의 나라
우리나라는 고인돌 왕국이다. 고인돌은 유럽 전역에 걸쳐 수천 기 정도밖에 없는데 견주어(유럽의 거석문화가 5만 5천 기라고 하는데 이는 선돌, 열석, 환상열석 등을 포함한 수이므로 고인돌은 그리 많지 않다) 한반도 전역에는 총 4만 기 이상이 분포되어 있다. 단일 면적에서 가장 많은 분포를 보이는 곳은 우리나라이다. 가히 한국을 ‘고인돌의 나라’라고 부를 만하다. 아시아에서는 지나 요령지방(고조선 영역)에 326 기, 일본 규수(九州) 지방(한반도 도래인 개척 지역)에 600여 기가 있다.
게다가 제단의 형태도 아주 또렷한 우리나라 고인돌은 다른 나라 것에 비해 모양이 월등히 아름답다. 그리하여 2000년 12월 2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우리나라 고인돌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했다. 우리나라 고인돌의 보존가치를 세계가 인정한 것이다. 한국인은 이 놀라운 우리 문화유산에 마땅히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 조상들이 옛날에 하느님께 경배하기 위해 제단으로 축조했던 고인돌은 이제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 모두가 보존해야 할 인류 문화유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 고인돌의 3/4 이상이 우리나라에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다신 숭배가 만연한 고대 세계에서 동방의 한국인은 오직 한 분이신 하느님만 정성을 다해 섬겼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왜 그랬는가? 우리 조상은 대홍수 후 ‘알이랑’, 즉 ‘하느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을 갖고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천동한 셈족의 장자 욕단계 천손민족, 곧 ‘제사민족’이었기 때문이다(창 10:21a, 25, 30).
세계적으로 고인돌은 ‘Dolmen’으로 불린다. 이것은 우리말의 ‘돌멩이’ 바로 그것이다. 고인돌의 고향이 코리아라는 사실이 언어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 세계 고인돌의 3/4퍼센트가 한반도와 만주 땅에 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 우리 겨레는 거의 대부분이 성직자 집안이었다. 곧 전 세계 강대상의 3/4퍼센트가 우리나라에 있었으니 “우리는 제사장 집안이다” 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겨레의 원형이요, 참모습이다. 오늘날 기독교를 수용한지 겨우 1세기가 약간 넘은 한국교회가 세계 2위의 선교강국으로 부상한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닌 것이다. 우리 알이랑 민족은 근본이 제사장 민족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있는 세계 최대의 고인돌 유적은 한민족이 욕단의 직계후손이라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입증해주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왜 이 작은 땅 한반도에 전 세계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이 있는가? 이 의문에 대한 진정한 해답은 성경 안에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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