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전파된 지 100여 년 만에 세계에서 유례없이 폭발적인 성장을 한 한국교회를 두고 그동안 여러 가지 의견들이 제기돼 왔다. 한국민족은 고대로부터 하느님을 잘 섬기던 천손민족이어서 그것이 기독교신앙과 접목되었다느니 또 혹자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단 지파가 한민족의 뿌리와 관련이 있느니 하는 등의 의견들이었다. 이러한 다양한 의견 가운데 최근 한국교회 안팎에서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다. 다름 아니라 한민족은 셈의 후손인 욕단의 자손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같은 주장을 한 장본인은 현재 부천 상동중앙교회를 담임하면서 목회를 하고 있는 유석근 목사이다. 그의 저서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은 발간된 직후부터 한국교회는 물론 불신사회에까지 널리 알려져 읽히고 있다. 이어 2009년에는 후속편인 ‘알이랑 고개를 넘어 예루살렘으로’가 출판돼 한국을 통해 이루어질 이스라엘의 회심과 구원을 성경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에 한민족의 영적 정체성 확인과 함께 민족 복음화와 세계복음화 운동에 참고하도록 도서출판 예루살렘에서 발간한 이 책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한다.
/편집자우리 겨레가 에벨로부터 셈계의 일신 신앙을 계승한 욕단 계열의 천손(天孫)으로서 처음부터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던 일신교도들이었다는 사실은(창 10:21~30), 한민족의 경전으로 간주되는 「단군 천범」(壇君天範) 및 「삼일신고」(三一神誥)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이 경전들은 우리 겨레의 정통적 종교와 신앙이 무엇이었는지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경전의 내용으로 말미암아 우리 알이랑 민족은 천손민족답게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하나님)과 동일한 하느님을 섬겼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다.
(1) 천범(天範)
단군의 천범은 고려 말 이암(李巖)[문정공(文貞公), 1296~1364]이 엮은 책 「단군세기」(壇君世紀)라는 사서(史書)에 실려 있다. 이 책은 아사달에 도읍하여 조선이라는 나라 이름을 사용한 단군의 이야기를 싣고 있는데, 1세 단군 ‘왕검’으로부터 47세 단군 ‘고열가’까지 대략 2,100년 동안 각 단군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주요 사건을 편년체로 기록하고 있다.
단군세기 역시 고려시대에 많이 있었던 「고기」들을 토대로 완성한 것이다. 따라서 「천범」은 밝달나라 조선을 건국한 단군(욕단)이 친히 조선 백성들에게 전한 한민족의 경전임을 알 수 있다. 천범은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된다.
“오직 제(帝, 하느님)는 일신(一神)으로 가장 높은 일위(一位)에 계시며 천지를 창조하시고 전 세계를 주관하시며 수없는 만물을 지으시니 넓고 넓어 쌓이지 아니하는 물건이 없고 티끌 하나라도 새지 않게 하시었다. 오직 제(帝, 하느님)는 일신(一神)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계시고 천궁(天宮)을 다스리시며, 만 가지 착함과 만 가지 덕의 원천이 되시는 하느님은 많은 영들이 지키고 모시니, 크게 길하고 가장 빛나는 밝은 곳을 말하여 신향(神鄕·하느님의 나라)이라 한다…(중략)…많은 무리들은 오로지 하늘이 내리신 법을 지켜 만 가지 착한 것을 돕고 악한 것을 감하여 본성에 이르면 하늘나라를 볼 것이다. 천범은 하나일 뿐이니 그 문은 둘이 아니다. 너희들은 오직 순수하게 참다움을 다할 것이니 이로써 너희 마음이 하느님을 보게 되리라….”
단군 천범은 가장 먼저 하느님은 일신(一神)으로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임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에 계시된 유일신 하느님과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느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신 6:4). 뿐만 아니라 천궁, 즉 하늘나라에 대해 밝혔고, 하늘이 주신 천법(天法)을 잘 지키라 하였으며 이를 잘 지키면 조천(朝天), 즉 하느님을 볼 것이라고 했다. 이는 하늘나라에 간다는 뜻이다. 그리고 천범은 오직 하나라 하였다. 이 하늘법은 진리(true reason, truth)와 같아 그 문이 하나이며 모든 것을 지키면 하느님을 볼 것이라고 한다. 이 구절은 요한복음 14장 6절을 연상하게 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천범은 모든 내용이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함을 알 수 있다.
(2) 삼일신고(三一神誥)
삼일신고는 단군 이전 시대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의 상고사를 서술하고 있는「태백일사」(太白逸史)라는 사서(史書)에 실려 있다. 이 책은 조선 연산군과 중종 때의 학자였던 이맥(李陌)이 펴낸 것으로, 그는「단군세기」를 저술한 이암의 현손이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의 삼일신고는 본래 단군의 훈고(訓誥)로 당시의 사관(史官) 신지(神志)에 의하여 기록 되었으며 이는 그 후 은대(殷代)의 왕수극(王受剋)에 의하여 은문(殷文)으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둘 다 없어지고 오늘에 전해지는 것은 고구려 시대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현금 삼일신고에는 발해 고조왕(高祖王) 대조영(大祚榮·669년∼719년)의 「찬문」―어제삼일신고찬(御製三一神誥贊)―일편과 그의 아우인 반안군왕(盤安君王) 대야발(大野勃)의 서문이 실려 있으며, 그 후에 3대왕 문왕(文王) 3년(739년)에 삼일신고봉장기(三一神誥奉藏記)가 씌어진 사실들을 보아 알 수 있다.
삼일신고(三一神誥)의 ‘삼일’(三一)은 단군교 계통에서 말하는 환인(桓因)·환웅(桓雄) 단군(檀君)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느님’을 뜻하는 말이다. 왜냐하면 강화도 마리산을 보더라도 단군 자신이 삼일의 하나가 아니라 단군이 마리산 천제단에서 하늘, 곧 삼위일체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기 때문이다.
삼일신고는 인류 시조의 가르침을 문자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한다. 천훈(天訓), 신훈(神訓), 천궁훈(天宮訓), 세계훈(世界訓), 진리훈(眞理訓)의 5장으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앞의 두 장만 살펴보기로 하자.
제1장 ‘하늘’에 대한 말씀 (天訓 천훈, 36자)
1절: 하느님께서 가라사대 너희 무리들아 파란 것이 하늘이 아니며, 까만 것도 하늘이 아니니라.
2절: 하늘은 모양과 바탕이 없으며, 시작과 끝이 없으며, 위아래와 사방이 없고
3절: 비고 비어서 어디에나 있지 않은 데가 없고 무엇이나 싸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帝曰 爾五加衆 蒼蒼非天 玄玄非天
天無形質 無端倪 無上下四方
虛虛空空 無不在 無不容
제2장 ‘하느님’에 대한 말씀 (神訓 신훈, 51자)
1절: 하느님은 위없는 으뜸자리에 계시사, 큰 덕과 큰 지혜와 큰 힘으로 하늘을 내시고, 무수한 세계를 주관하시며
2절: 만물을 창조하시되 티끌만한 것도 빠뜨리심이 없으며, 밝고도 신령하시어 감히 이름 지어 헤아릴 길이 없느니라.
3절: 소리나 기운으로 원하고 빌면 꼭 친히 만나볼 것이니, 참된 성품으로 그 씨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 머리 위에 내려 임재하시리라.
神在無上一位 有大德大慧大力 生天 主無數世界
造物 纖塵無漏 昭昭靈靈 不敢名量
聲氣願禱 絶親見 子性求子 降在爾腦
삼일신고는 그 제목이 말해주듯이 삼일신(三一神), 즉 ‘삼위일체 하느님’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고대 한국인이 섬긴 하느님은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과 동일한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느님이셨다(이에 관한 글은 다음 호에 연재합니다).
제1장 ‘천훈’(天訓)은 ‘우주론’인데, 하느님께서 내신 하늘의 원리를 설명했다. 하늘은 파란 것도 검은 것도 아니요, 형질도 없고 시간의 시작과 끝도 없을 뿐만 아니라 공간으로서의 상하사방(上下四方)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공으로 표현되는 존재자로서 무소부재(無所不在)하며 무소불용(無所不容)한 것이 하늘이라고 교훈한다. 공간적인 우주세계를 곧 천(天)이라 하여 그에 대한 설명을 한 것으로 하늘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
제2장 ‘신훈’(神訓)은 ‘신론’(神論)으로 하늘이라는 우주 안에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창조주 하느님을 설명했다. 이 제2장을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신훈’이 교훈하고 있는 하느님은 실로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과 동일한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① 지존자이시다(사 33:5; 57:15) - “하느님은 위없는 으뜸 자리에 계시사”
② 덕이 있으시다(벧전 2:9, 벧후 1:3) - “큰 덕과”(이 말은 하느님의 성품이 사랑과 정 의로 가득하신 분임을 나타낸다. 이교(異敎)의 신들은 덕이 없으며 다만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다.)
③ 지혜와 명철이시다(잠 3:19) - “큰 지혜와”
④ 능력과 권능이시다(대상 29:12) - “큰 힘을 지니시어”
⑤ 창조주이시다(창 1:1, 사 40:26) - “하늘을 내시고” “만물을 창조하시되 티끌만한 것도 빠뜨리심이 없으며”
⑥ 만물의 주재자이시다(롬 11:36) - “무수한 세계를 주관하시며”
⑦ 빛이시다(요일 1:5) - “밝고도”
⑧ 영이시다(요 4:24) - “신령하여”
⑨ 측량할 수 없다(시 145:3) - “감히 이름 지어 헤아릴 길이 없느니라”
⑩ 음성과 마음으로 기도하면 만날 수 있고 임재 하신다(렘 29:12~13 ; 33:3) - “소리나 기운으로 원하고 빌면 꼭 친히 만나볼 것이니…너희 머리 위에 내려 임재하시리라.”
◆ 고대 한국인이 섬긴 하나님은 성경에 계시된 유일신 하나님과 일치분명히 고대 한국인이 섬긴 하느님은 성경에 계시된 유일신 하느님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제천의식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던 숭배의 대상, 천(天) 혹은 하느님(한알님)은 성경의 하느님과 동일하신 분이었던 것이다. 결코 막연한 하늘이거나, 범신론적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 한국인의 선조들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의 신인 절대자가 하늘에 계심을 분명히 알았고, 자기네들은 그 하느님의 백성 곧 ‘천손민족’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바로 그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려고 하늘에 ‘천제’를 드렸던 것이다.
알이랑 민족 우리 한국인의 선조들은 홀로 한 분이신 창조주 하느님만을 섬기던 일신교도들이었다. 그들이 가진 종교(천신숭배·제천신앙)는 역사적으로 변화함을 입지 않고 태초로부터 내려와(아담→아벨→셋→에노스 계열을 통해), 노아→셈→아르박삿→셀라→에벨을 거쳐 벨렉과 욕단에게로 계승된 유일신 신앙이었던 것이다(창 10:21~30).
기독교의 하느님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도 우리 한민족은 아득한 옛날부터 그 하느님을 믿고 받들고 섬겼던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외래 종교가 아니다. 한민족은 고조선시대부터 기독교의 하느님을 섬겨왔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결코 유대인의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일찍이 숭배했던 그 ‘유일신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그 하느님을 잊었다가 기록된 계시인 성경을 통해 다시 찾은 것뿐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고대뿐만 아니라 삼국·고려·조선·근세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한국인의 영성 깊은 곳에 여전히 살아있는 신이었다. 바로 이것이 한국교회가 선교 100년 이라는 짧은 기간에 2천년 교회사에서 유례가 없는 큰 부흥이 일어난 근본적인 요인이다. 한국교회가 단기간에 부흥한 가장 큰 까닭은 기독교의 하느님은 한국인이 원래 믿고 받들고 섬겼던 그 하느님과 같은 신이므로 한국인의 정서와 영성에 아주 잘 영합(迎合)한다는 사실에 있다.
◆ 유일신을 섬겼던 한민족에 대해 기록한 개신교 선교사들유일신을 섬겼던 한민족에 대해서는 한국에 왔던 개신교 선교사들의 기록을 통해서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캐나다 선교사인 게일(J. S. Gale)은 그의 저서「전환기의 조선」(Korea in Transition)에서 “한국인의 신이란 ‘하느님’으로서, 즉 유일하게 위대하신 분이다”라고 말했다(James S. Gale, 「전환기의 조선」, 신복룡 역, 서울: 집문당, 1997, p.70).
헐버트(H. E. Hulbert)라는 미국인 선교사는 그의 저서「대한제국 멸망사」(The Passing of Korea)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오늘날 한국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순수한 개념으로서의 종교관은 외래적인 의식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원시적인 자연숭배와도 거리가 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다. 하느님이라는 어휘는 ‘하늘’이라는 단어와 ‘주인’이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한자의 ‘천주(天主)’에 해당하는 것이다. 모든 한국인들은 이 하느님이 우주의 ‘최고 지배자’라고 믿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Honer B. Hulbert, 「대한제국 멸망사」, 신복룡 역, 서울: 집문당, 1999, pp.469~470).
이외에도 장로교 선교사인 H. G. Underwood의 부인인 L. H. Underwood는「Underwood of Korea」에서 “옛 한국의 일부였던 고구려 왕국(the Kingdom of Kokurei)에서는 하느님이라 불리는 유일한 신만을 섬겼다 … 그리고 유일한 신 하느님은 크고 유일한 하나(only One)를 가리키는 것 이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유일신 개념은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는 신과 동일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섬기는 신 여호와가 유일하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왕하 10:15, 요 5:44, 17:3). “그룹 사이에 계신 이스라엘 하느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는 천하만국의 유일하신 하느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조성하셨나이다.”(사 3:16)
헐버트 선교사는 이에 대해 “한국인들은 유일신을 믿으며, 이 하느님에게 부여된 속성이나 권능은 외국의 선교사들이 기독교를 보급하기 위해 거의 보편적으로 말하는 여호와의 그것과 일치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 한국인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성경의 하나님과 일치하는 하나님 섬겨실로 한국인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성경에 계시된 유일신 하느님과 일치하는 하느님을 섬겼던 것이다. 앞서 살펴본 바처럼 우리 겨레는 ‘알이랑’, 즉 ‘하느님과 함께’라는 유일신 신앙으로 민족사를 시작한 단군, 곧 욕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단군이 백성을 교화하기 위하여 썼다는 이 ‘삼일신고’의 시원(始原)은 여러 가지 문헌에 나타난 기록에 의하면, 단군이 건국한 조선시대는 물론이지만 그 이전 태초 무문자 시대에 구전하던 글(口傳之書)이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온 것으로서 ‘삼일신고’는 우리 겨레의 형성과 그 시원을 같이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실로 고대 한국인의 신앙은 여러 면에서 독창적인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것은 유일신론적이었다. 고대 이방 종교들은 모두 다신론적이었다. 그러나 한국인의 선조들은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섬겼다. 더욱이 고대 한국인의 신앙은 반(反)형상적이었다. 즉 그들의 하느님은 어떤 형태로든 묘사되거나 형상화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하느님을 숭배하고자 결코 어떠한 우상도 만들지 않았다.
다신교 숭배의 고대 세계에서 우리 조상이 지녔던 이와 같은 ‘독창적 유일신관’은 한국인이 참으로 홍수 이후 셈계의 일신신앙을 가지고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극동 아시아까지 이동해 온 욕단계 천손민족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다음 호에 계속)
2009-5-1 (13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