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영적 정체성 6

한민족의 영적 정체성 6

복음제일교회 0 2,000 2021.01.18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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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민족 영적 정체성 탐구(6)/ 고대 한국인의 산정제사와 제천신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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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 마리산 제천단

기독교가 전파된 지 100여 년 만에 세계에서 유례없이 폭발적인 성장을 한 한국교회를 두고 그동안 여러 가지 의견들이 제기돼 왔다. 한국민족은 고대로부터 하느님을 잘 섬기던 천손민족이어서 그것이 기독교신앙과 접목되었다느니 또 혹자는 이스라엘 12지파 가운데 단 지파가 한민족의 뿌리와 관련이 있느니 하는 등의 의견들이었다. 이러한 다양한 의견 가운데 최근 한국교회 안팎에서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다. 다름 아니라 한민족은 셈의 후손인 욕단의 자손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같은 주장을 한 장본인은 현재 부천 상동중앙교회를 담임하면서 목회를 하고 있는 유석근 목사이다. 그의 저서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은 발간된 직후부터 한국교회는 물론 불신사회에까지 널리 알려져 읽히고 있다. 이에 한민족의 영적 정체성 확인과 함께 민족 복음화운동에 참고하도록 도서출판 예루살렘에서 발간한 이 책의 내용을 요약 정리하여 소개한다.   /편집자

우리 한국인은 대홍수 후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와서 배달나라를 세운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의 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의 후손으로서 민족사를 알이랑 정신, 곧 창조주 하느님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으로 시작한 천손민족이다(창 10:21~30). 그렇기에 한국인 고유의 종교는 다신숭배가 아닌 ‘제천신앙’이었다.

◆ 천손민족의 종교, 제천신앙

다신숭배가 만연한 고대 세계에서 오직 한국인은 ‘제천의식’을 성대히 거행하여 유일신 하느님을 섬겼다. 더욱이 한국인은 이 하느님(하나님)을 표상하기 위해 우상을 만들지도 않았다. 다만 제단을 쌓고 천제(天祭)를 드렸을 뿐이다. 단군 조선 시대에는 제천의식이 북으로는 백두산에서, 남으로는 강화도 마리산 산정(山頂)의 참성단에서 행하여졌다.
백두산은 단군과 조선족이 제천(祭天)하던 곳이고, 우리 조상이 제일 먼저 정착하여 개척한 곳은 지금의 하얼빈을 중심으로 한 송화강 연안 요동평야이다. 송화는 고대에 소밀, 속말, 소머리 즉 우수(牛首)라고 하였다. 흰 소를 잡아 제천하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소머리라는 지명은 후일 민족이동과 함께 강원도, 춘천, 경주, 그리고 일본 각지로 전파된다(최태영,「한국 고대사를 생각한다」, 서울: 눈빛, 2003, p.125).
산정에서 거행했던 이 제천의식은 고조선 붕괴 후 열국시대(列國時代)와 삼국시대(三國時代)에 계승되어 한 결 같이 국중대회(國中大會)로 성대히 치러졌다. 곧 부여는 매 10월에 제천(祭天)하고 주야가무(晝夜歌舞)하였으니 이른바 영고(迎鼓)라는 국중대회를 열었고, 예맥은 매 10월에 제천하고 주야가무하였으니 무천(舞天)이라는 국중대회를 열었고, 마한은 매 10월에 농사를 마치면 국읍(國邑)이 한 사람을 제주(祭主)로 하여 제천신(祭天神)하니 이른바 천제(天祭)라는 국중대회를 열었고, 고구려 매 3월과 10월에 제천(祭天)하니 동맹(東盟)이라는 국중대회를 열었고, 백제는 매 4월 중월(仲月)에 제천(祭天)하니 교천(郊天)이라는 국중대회를 열었고, 신라는 매 10월에 제천하니 이른바 답지위절(踏池爲節)이라는 국중대회를 열었다. 하느님께 제사하기 위해 나라 전체가 움직이고, 흰 옷 입은 백의의 백성들이 다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흥겨워하였다.

이 제천의식이야말로 동이문화의 정수(精髓)이며, 우리 문화의 본성(本性)인 것이다. 하느님께 제사하는 제천의식은 동방에서 최초에 백두산 산정에서 거행되었다. 바로 우리 한국인의 시조 단군이 약 4300년 전 조선을 건국할 때 먼저 백두산 산정에 올라 하느님께 정성스레 천제를 드렸을 때다. 단군이 그렇게 창조주 하느님을 위해 제사를 드렸던 까닭은 그가 ‘알이랑 정신’, 곧 ‘하느님 중심 사상’과 ‘신본주의 정신’을 갖고 동방으로 천동한 셈의 현손(玄孫) ‘욕단’이었기 때문이다.
백두산정에서 천제를 드렸다는 사실은 백두산에서 발견된 고대 제단 무더기가 뒷받침해 준다. 1995년 6월 27일자 중앙일보는 “백두산에서 고대 제단 무더기 발견”이라는 꼭지 글 아래 백두산에서 고대 제단 무더기가 발견되었음을 아래와 같이 보도하였다.
“백두산의 고대 제단 무더기는 중국 아마추어 고고학자 리수린이 발견하였다. 추정연대는 4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돌무더기 제단은 양 40기를 드릴 수 있는 고 제단이다. 이 돌 제단의 용도에 대하여 윤내현(단국대 박물관장)은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제단 주위에서 수백 개의 적석총군과 마을 유적이 확인됐다고 하는데 이는 이 지역에 고조선의 지배층 그 중에서도 종교적 지도자들이 거주하고 있었음을 알게 해준다. 또 돌로 만든 제단과 적석총이 발견된다는 사실은 이 유적이 우리의 고대 문화유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준다. 중국의 황하 유역에서는 이런 류의 유적 발견 예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곳에서 발견된 둥근 형태의 제단은 요령성 서부의 홍산문화 말기 유적과 비슷한 것으로 홍산문화가 우리 민족의 고대 문화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백두산은 단군이 고조선을 세운 곳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제단의 발견은 고대 한국인이 집단적으로 하느님께 천제를 드렸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동방 최초의 산정제사였던 백두산 천제 이후 ‘산정’에서 하느님께 제사 드리는 관습은 우리 겨레의 생활 속에서 계속 되었는데, 강화도 마리산(마니산의 원래의 이름으로 ‘머리산’이라는 뜻이다)을 비롯해 황해도 구월산, 강원도 태백산 등지의 산정에는 우리 한국인의 선조가 하느님께 제사를 드린 제천단이 남아 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은 우리 겨레가 고산숭배 민족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낱 우연이 아닌데, 이웃 나라인 차이나만 하더라도 그들은 고산숭배 민족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사를 그냥 들판에서 지낸다. 이를 ‘교제’(郊祭)라고 한다(최남선, 불함문화론).
그러면 한국인의 선조들에게 있었던 이러한 고산숭배 사상과 산정에서 제사(천제)를 드리는 관습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가? 그것은 대홍수 후 노아가 아라랏 산정에서 하느님께 천제를 드린 것에서 비롯되었다(창 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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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 제천단

◆ 아라랏 산정의 천제와 백두산 산정의 제천의식

아라랏 산은 노아의 방주가 머문 곳으로서 홍수 이후의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본향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바로 거기 아라랏 산정에서 노아는 홍수 후에 제천의식을 거행하였다. 곧 천단(天壇)을 쌓고 ‘번제’를 하느님께 드렸던 것이다(창 8:20). 하느님은 아라랏 산정에서의 그 천제(天祭)를 열납하셨고, 그 높은 산정에서 노아를 다시 만나 주셨다. 하느님은 그 산정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복을 주셨고(창 9:1~7), 무지개(물지개)의 언약으로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벌하지 아니하시리라고 약속하셨다.(창 9:8~17).
그리하여 에벨로부터 노아의 일신 신앙을 계승한 셈계의 민족, 특히 셈족의 종가(宗家)인 욕단 가계의 백성에게는 아라랏 산은 ‘천산’ 즉 ‘하느님의 산’(알뫼~알뫼니아~아르메니아: 방주가 정박한 지역)이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성산’(聖山)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날 이후에 그들에게는 하늘 높이 우뚝 솟은 높은 산은 하느님이 내려오시는 곳, 즉 성산으로 간주되었다. 바로 거기에서 고산숭배 사상이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욕단계 선민인 우리 한국인의 선조들은 평지가 아닌 산꼭대기를 천제(天祭)의 장소로 선택하였고, 제사를 드리려면 당연히 제물을 준비하여 산꼭대기로 올라가야 했다. 우리 겨레는 예로부터 항상 하느님을 존중하는 동시에 산악을 경외하였는데, 이러한 고산숭배 사상과 산정제사의 관습은 그 기원이 바로 노아의 아라랏 산정에서의 제사에 있는 것이다.
단군이 조선을 건국할 때 백두산에 올라 평지가 아닌 ‘산정’에서 천제를 드렸던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당시 단군은 노아의 아라랏 산정의 천제를 답습했던 것이다.

이렇게 천제를 늘 산에서 거행하다 보니 후일 천제를 산제(山祭)로 오인하게 하였으며, 천신과 산신을 혼돈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제단의 위치가 본래 산 정상에 자리하지 산 중턱에 자리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산제는 본시 천제였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천신과 산신의 혼동은 이미 일연의 「삼국유사」나 이승휴의 「제왕운기」에 나타나고 있으니, 일연이 끝내 단군을 ‘아사달에서 산신이 되었다’(於阿斯澾爲山神)고 잘못 기록하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실로 단군이 백두산 산정에서, 또한 마리산 선정에서 드렸던 천제는 대홍수 후 노아가 아라랏 산정에서 거행했던 제천의식이 원형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단군을 욕단이라고 단정할 수 있다. 그는 노아를 비롯한 홍수 이후 족장들과 함께 알이랑 고개를 넘어 아시아로 천동한 우리 한국인의 직계 조상이기 때문이다(자세한 것은 게시판 ‘선민 알이랑민족 뿌리찾기’를 참조하십시오).
홍수 후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을 갖고서 알이랑(하느님과 함께) 고개(파미르고원→천산산맥→알타이산맥)를 넘어 동방으로 이동한 욕단은 정착과 동시에 당연히 셈족의 관습대로 평지가 아닌 높은 산인 백두산 산정에 올라 제단을 쌓고 하느님을 위해 천제를 거행하였다. 백두산이 오늘날까지 우리 겨레의 의식 속에 성산(聖山)으로 남아 있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한국인에게 백두산은 평범한 산이 아니다. 백두산은 ‘천산’(天山)이요, ‘하느님의 산’인 것이다. 백두산이 우리 겨레의 가슴 속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성지’로 남아 있는 까닭은 단 하나 그것뿐이다. 그 높은 산정에서 욕단계 천손민족 한국인이 창조주 하느님께서 제사를 드리고 배달나라를 세웠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인에게는 천산(天山)인 백두산이 셋이 있다. 제1천산 백두산은 아라랏 산(해발5,137m)이요, 제2천산 백두산은 천산 산맥의 최고봉인 텅거리 산(해발 6,995m)이요, 제3천산 백두산은 함경도의 백두산(해발 2,744m)이다. 한국인의 선조들은 이 모든 특별한 산에서 천제를 드리며 하느님을 섬겼다.
성경에도 산꼭대기는 하느님께서 특별히 임재하시는 곳으로 나타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 올라간 산은 모리아 산이었고, 그는 거기에서 여호와 이레의 하느님을 만났다(창 22:2).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기 위하여 제단을 쌓은 곳도 갈멜산 꼭대기였고(왕상 18:20), 모세가 기도하고 하느님께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곳은 시내산 꼭대기였으며(출 19:20), 아멜렉과 이스라엘이 르비딤에서 전쟁할 때에 모세가 산꼭대기에 올라 기도하여 승리하였던 것이다(출 17:8~13). 예수님도 높은 산에 올라가 변형되셨고, 하느님은 그 산정에 오셔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하셨다(마 17:5). 이렇게 성경에도 산정은 하느님을 만나거나 예배하는 장소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한국인의 선조들은 더욱 아득한 옛날부터 산정을 하느님께서 내려오시는 장소로 믿고, 산꼭대기에서 제천의식을 거행했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아라랏 산정에서 노아가 천제를 거행했을 때, 바로 그 산정에 하느님이 오셔서 노아의 제사를 열납하셨기 때문이었다. 즉 단군이 산정에서 드린 천제는 노아의 아라랏 산정의 제천의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 벨렉의 가계에 없었던 욕단 족속의 제천신앙

한 분이신 하느님만을 섬기는 유일신 신앙을 가지고 알이랑 고개를 넘어서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대장정 끝에 백두산과 그 변두리에 정착한 한국인의 선조들은 우상 앞에 절하거나 제사한 바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처음부터 가진 종교는 창조주 하느님께 제사하는 ‘제천신앙’이었기 때문이다. 욕단 계열의 천손민족 한국인은 백두산 산정에서 그리고 마리산 산정에서 오직 유일하신 하느님을 위해 ‘제천의식’을 성대히 거행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메소포타미아에 거주하던 욕단의 형제인 벨렉의 가계가 급속히 우상 숭배자들로 타락했던 것과 견주어 볼 때 그 신실함이 대단히 놀라운 것이다. 벨렉의 5대손인 아브라함의 아비 데라(창11:1~26)는 이미 유브라데강 하구에 있을 때에 에벨이 전해 준 셈계의 일신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겼던 것이다(수 24:4). 아브라함 역시 애초에는 여타 이방의 족속들과 마찬가지로 우상 숭배자였으나, 하느님의 주권적 은총으로 말미암아 부름을 받음으로서 우상의 도시인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느님을 섬기게 된 것이다(창 12:1~3).
참으로 욕단의 가계인 한민족의 선조들은 벨렉의 가계인 유대인의 조상들보다 더욱 신실하게 유일신 하느님을 섬겼던 것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시아 동쪽에 거주하는 제2의 선민 한국인들이 아시아 서쪽에 거주하는 유대인보다도 더욱 뛰어나게 여호와 하느님을 섬길 것이다. 우리 겨레는 ‘알이랑민족’이요, 이 나라는 ‘무궁화의 나라’, 즉 ‘샤론의 장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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