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시리아: 잊혀진 이라크 기독교인들
소외된 민족
이라크에서 전쟁의 징후는 매일 커져가고 있다. 전쟁의 불확실함 가운데에서 한때는 당당했고 매우 영향력이 컸던 한 민족이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졌다.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은 잘 알려져 있는 반면, 이라크의 역사적으로 유명한 지역에 살고 있는 120만 명에 달하는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의 삶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현재 진행중인 협상에서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이라크 전역에 흩어져 있고 대부분은 현재 모술이라고 알려진 니느웨 근처에 모여 사는 이 앗시리아 제국의 얼마 남지 않은 후예들은 아직도 예수님이 사용하던 말인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일한 족속이다. 최근 위축되어있던 그들은 다시 한번 자신들의 통제밖에 있는 상황의 희생양이 되었다.
최초의 기독교 국가
그들의 역사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앗시리아 제국은 주전 612년에 막을 내렸고 앗시리아의 군주제도는 주후 4세기에 폐지되었다.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회개했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사도 도마를 통해 아브가르왕이 그의 백성을 위한 회개를 했고 앗시리아는 주후 1세기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유명한 역사가인 케넷 스콧 라투렛이의 저서인 “기독교 역사”에서는 그들을 “역사상 가장 큰 선교 세력”으로 언급하고 있다. 중국의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최근자료에 따르면 그들은 서기 86경에 기독교를 저 멀리 중국과 일본에까지 전했다고 밝히고 있다.
어윈 St. 존 터커는 “동방으로부터의 빛”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 동방교회의 중심은 이뎃사(메소포타미아의 옛 도시로 현 터키 동남쪽에 위치한 우르파의 고대 지명. 주후 3세기 이후 기독교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639년 아랍군에 의해 그리고 1097년 십자군에 의해 정복되었다)에서 시작하여 중앙아시아 전체와 투르키스탄(중앙아시아의 광활한 지역), 몽골, 중국, 인도 그리고 일본으로 퍼졌는데 말씀을 전하는 사자들은 시베리아의 추위와 동남아 여러 나라의 더위에 굴하지 않았었다. 이러한 역사적 유물과 건물들은 이러한 지역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앗시리아인들은 그들의 기독교 신앙 때문에 거주자의 대부분이 무슬림인 지역에서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다. 그들은 1차 세계대전 동안에 페르시아인, 몽골인, 터키인, 쿠르드인 그리고 아랍인들에 의해 대주교와 정신적 지도자를 포함한 인구의 2/3가량을 잃었다.
흩어져 사는 앗시리아 사람들을 위한 잡지의 편집장인 윌프레드 알카스는 중동에 대해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 가운데 하나가 기독교인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이란에서 호메니이의 부상 이전에 이슬람교는 일반적으로 관용적인 종교였다. 중동 일대에서 기독교, 유대교, 조로아스터교 그리고 다른 종교의 큰 그룹들은 수 세대에 걸쳐 무슬림 사람들이 대다수인 지역에서 평화롭게 살았었다.
현재 이라크의 앗시리아 기독교인은 주로 세 군데 지역에 모여 사는데 북부 이라크에 20만 명, 이라크 중부(대부분 바그다드)에 1백만 명, 그리고 남부지역에 수천 명의 작은 그룹이 있다. 그 외 대략 4백만 명에 달하는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은 이라크를 벗어나서 살고 있는데 주로 이란, 시리아, 요르단, 캐나다, 미국, 호주 그리고 유럽에 살고 있다.
특별히 영국과 미국 군대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비행금지 구역에 집중되어 있기는 하지만 요즈음은 앗시리아인들에 의해 교회들이 재건되고 있으며 40개의 학교가 세워져 8천 여명에 가까운 어린이들이 몇 세대만에 처음으로 아람어를 배우고 있다.
아립화의 압력
이라크 기독교인들을 괴롭히고 있는 또 다른 문제점은 모든 시민을 아랍화하려는 정부의 시책이다. 인권단체는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이 그 지역의 소수민족과 함께 아랍화 프로그램으로 고통 당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아랍인이 아님에도 그들의 인종과 종교를 포기하고 자신들이 아랍인이라고 선언하도록 하는 국적정정 신고서에 서명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인권감시단체의 하니아 무프티는 이러한 정책을 소수민족을 말살하려는 인종청소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앗시리아 디아스포라로부터 얻은 정보에 따르면 중동지역에 사는 70% 정도의 기독교인들이 급진주의 이슬람 국가의 압제에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어 그곳을 떠났다고 한다.
중동지역에서 벌어지는 문제의 실상은 많은 면에서 정치적인 것보다는 경제적인 문제인데, 경제 구조가 근본적으로 무너지면서 직업과 미래가 없어진 젊은이들은 점점 정상적인 경제시기에서는 있을 수 없는 급진적 생각에 자신들의 삶을 바치려 하고 있다.
지역적 경제불황의 이유 중 하나는 기독교인들이 중동에서 대부분의 소규모 사업체를 운영해 왔기 때문이며, 이러한 사업체들이 지역 경제를 키워왔다. 이러한 기독교인들이 떠나게 된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 현재의 경제적 붕괴를 유발하게 되었다.
이슬람 법은 이자의 지급을 금하고 있는데 이자란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돈을 빌리는데 필수적인 요소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불공평한 방침을 극복하려고 작은 식료품 가게, 주유소, 식당과 다른 작은 사업체를 소유하였다. 기독교 사업가들이 박해를 피해 유럽과 미국으로 피난함에 따라 중동지역에서의 그들의 사업들은 문을 닫게 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무슬림 사람들이 실직 당하게 되었다. 코란의 고지식한 해석이 현실적으로 사업체의 붕괴를 가져온 것이다.
두려움 가운데 있는 앗시리아 기독교인
현재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은 극도로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있다. UN을 통해 원조를 받는 쿠르드족과 터키에 의해 지원받는 투르크만 사람들과는 달리 앗시리아 사람들은 어떠한 재정적 지원이나 후원도 없다. 그들은 압도적으로 우세한 무슬림 지역에서 소수의 기독교인으로 존재한다.
북부 이라크의 “비행 금지구역” 보호 아래에서 비공식적인 쿠르드족 의회가 생겨났지만 앗시리아 사람들은 105개 좌석 중 겨우 5개만을 부여받았다. 그들은 후기 사담 정권과 그나마 얻게된 대표 자리 마저 빼앗길지 모르는 급진적 변화에 대해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
폭스 텔레비전과의 최근 인터뷰에서 이라크의 한 야당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모든 아랍 영토에 자유로운 이라크를 재건하는 것입니다.”쿠르드족의 영토(이곳에는 앗시리아 기독교 마을들도 포함된다.)를 구체적으로 무시한 이 말은 독립에 대한 구체적인 국제사회의 확증이 없는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을 과거에 그들을 살육했던 쿠르드족 무슬림의 손아귀에 놓이게 하여 다시 한번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것이다.
현재 미국무성은 미래 정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이라크 국수주의자들의 연합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러 민족 가운데 유일한 비 이슬람 그룹인 앗시리아 기독교인들은 분명한 불이익에 놓여있다.
모든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는 민족주의 정당인 비종교적 바스당이 이끄는 비종교적 국가이다. 부통령인 타리크 아지즈는 기독교인이며 동방교회에게는 다른 중동 국가들에서 보다 더 많은 자유가 허용된다.
앗시리아 기관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세계 앗시리아인 연합의 책임자이며 상원의원인 존 니므롯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우리는 서양 기독교인들이 이스라엘에게 보내는 관심과 후원에 대해 이해한다. 그러나 왜 서방교회들이 중동지역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이 같은 관심과 후원을 보내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
앗시리아인 칼로 간테는 “우리는 나라를 다시 되찾을 수 있기를 여러 세대에 걸쳐 기도해왔다. 앗시리아는 1928년에 국가연맹협약에 따라 독립국가를 약속받았다. 앗시리아인들은 현재의 모술지역인 니네베 도시를 중심으로 고향인 북부 이라크 지역에 자치 지역을 가져야 하고 그런 다음 독립국가를 이루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앗시리아인들은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역사적으로 그들의 것이었던 지역에서의 그들의 지위를 옹호해 줄 것을 교회 전체에 요구하고 있다. 앗시리아 사람들은 그들의 역사적 땅에서의 국가 건설에 대해 UN의 전신으로부터 별개의 협약으로 두 번 약속 받았으나 오늘날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최근 런던의 어느 모임에는 유럽과 미국, 아시아와 중동으로부터 온 앗시리아 사람들이 모여서 최초로 사담이후의 이라크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논의된 사항들은 정당구성과 독립 앗시리아에 해당하는 땅에 대한 지도, 가능한 헌법과 사담 이후 이라크의 미래에 대한 다른 계획들이 포함되었다.
“앗시리아 대표자 회의”라 불리운 컨퍼런스 참석자들은 대부분의 정당과 조직체의 대표들이 포함되었다. 이때 의견들은 의회에서 보다 많은 의석이 있어야 한다는 사람에서부터 티그리스와 유프라데스 강 사이에 있던 역사적인 앗시리아 고향 땅에서 독립적인 앗시리아 국가를 세우기 위해 능동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것까지 이르렀다. 참석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두려움 가운데 하나는 정권이 바뀔 경우 사담의 폭정이 다른 폭정으로 대치되지 않을 까 하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압제자들의 손에 의해서 오랜 역사동안 무자비한 박해에 지속적으로 시달려온 사람들에게 이 두려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것이다.
어느 앗시리아 리더는 다음과 같이 앗시리아인의 상황을 설명했다 :"우리는 오늘날 아슬아슬한 상태에 있다. 우리 한 쪽에는 아랍인이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쿠르드인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북부 이라크에 사는 쿠르드족 형제들과 좋은 관계에 있었지만 요즈음은 쿠르드족들이 큰 형님의 행세를 하고 있다."
대량학살을 우려하는 전문가들
전문가들은 현재 정부가 무너질 경우 일어날 수 있는 대량학살을 우려하고 있다.
최근 터키 지도부가 더욱 이슬람을 지향하는 정부로 바뀌어가면서 이라크 중앙 정부가 몰락할 경우 앗시리아 기독교인의 역사적 땅인 북부 이라크가 그들의 차지가 될 위협이 생겨났다.
현재 쿠르드의 주요 정당인 쿠르드민주당(KDP:Kurdish Democratic Party)과 쿠르디스탄애국연합(PUK:Patriotic Union of Kurdistan)의 지도자들은 공식적으로는 독립 쿠르디스탄(터키·이란·이라크에 걸친 고원지역)에 대한 계획은 없다고 말하지만 최근 몇 주간 의견을 모아 국회를 열고 기독교 지역인 앗시리아가 흡수된 독립 쿠르디스탄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상황에 대해 특히 아시아에서 앗시리아 사람을 후원하고 있는 조직인 게이꼬 연구소는 전 세계의 기독교인들에게 첫째로 이라크 기독교인들을 기도를 해 줄 것과 그 다음 그들 입법자들에게 사담 이후의 이라크 정권에서 앗시리아 기독교인도 대표가 될 수 있도록 요청할 것을 부탁했다.
기독교 현황
동방의 앗시리아 교회(네스토리란)
년도
교회
교인
최대치교인
1960
34
16,813
30,600
1965
39
19,725
35,900
1970
46
23,000
42,000
1975
57
28,571
52,000
1980
70
35,165
64,000
1985
82
41,209
75,000
1990
90
45,055
82,000
1995
77
38,462
70,000
2000
66
32,967
60,000
앗시리아 복음주의(장로교)
년도
교회
교인
최대치교인
1960
5
100
200
1965
5
100
200
1970
3
100
200
1975
4
80
160
1980
2
50
100
1985
1
20
40
1990
1
25
50
1995
2
40
80
2000
2
70
140
(출처 : Operation World)
앗시리아인은 네스토리우스교도 혹은 고대 동방교회의 후손이다. 1964년 이후 2개의 교단으로 나누어졌다. 네스토리우스 교회는 역사적으로 가장 큰 교단 가운데 하나였으며, 1,000년 전에 모든 아시아 인구의 6%를 차지하였다. 오늘날에는 핍박, 타협, 부당한 대우로 전 세계에서 2백만 미만으로 감소되었다. 1990년대에 모든 기독교인의 약 1/3이 이라크를 떠났고, 많은 난민 등이 있다. 이들의 성격적 유산이 회복되고, 현재 시작된 부응이 번져나가고, 복음 전도에 대한 비전을 가지도록 기도하자.
대부분의 앗시리아인들은 카톨릭과 연관되는 갈데아 교회의 교인들이며, 지난 150년 간 외국 선교사들이 활동을 통해 더러는 복음주의자가 되었다. 이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해서 기도하자. 이주는 가장 큰 병폐이다 기독교인들이 기꺼이 어두운 세계의 빛으로 남도록 기도하자.
이라크에 있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기도 정보와 이라크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직접 후원을 할 수 있는 방법은 www.thechurchoftheeast.com에서 찾을 수 있다.
(출처 : ASSIST News Service, 세계기도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