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수업을 마치고 헐레벌떡 성남 모란시장으로 향했다. 다음날 있을 경기도 교육감선거를 앞두고 범도민개혁후보인 김상곤 한신대교수의 마지막 유세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아는 후배교수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나타났다. "노통이 돈을 받았다고
인터넷에 자백을 했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노래졌다. "
이권이나 청탁에 개입하면 패가망신 시키겠다"고 그렇게 큰 소리를 쳤던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던가? 그런데 측근들도 모자라 자신이(나중에 자세히 알아보니 자신은 아니고
부인이 받았다는데 그것이 그것 아닌가?) 돈을 받았단 말인가?
이전 정권의 최고위층들이 정권이 바뀌면 줄줄이 돈 문제로 곤욕을
치루는 것을 보고서도 노무현 정권의 실세들이 연이어 감옥에 가는 것을 보니 한국정치가
치매가 걸린 것인지 아니면 운동권이 연탄가스 중독에 걸려 도덕심이 마비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지난 주 이
칼럼에서
("한국정치, 치매인가? 연탄가스 중독인가?") 한탄한 바 있지만, 그래도 "설마 노대통령 자신까지 돈을 받았겠는가" 하고 생각했었다.
이제 조중동과 한나라당 등 냉전적 보수세력들의 기고만장함을 어찌 볼 것인지 아찔하기만 했다. 어디 그 뿐인가? 그 많고 많은 날 중 왜 하필 경기도 교육감 선거 전 날 고백을 하고 나서 선거에 찬물을 끼얹는가 하는 생각에 분노와 한숨이 함께 터져 나왔다. "하루만 뒤에 고백할 일이지, MB 교육정책을 추종하는 김진춘 후보에게서도 돈이라도 받았단 말인가!"(다행이 8일 치러진 선거에서 서울교육감 선거 때의 강남몰표와 같은 사태가 생기지 않아 김상곤 후보가 승리했다.)
그 날 이후 나는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일종의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증세와는 별개로 노 전 대통령의 고백을 꼼꼼히 읽고 사건에 대한 보도를 접하면서 자꾸
웃음이 나온다. 그렇다. 이건 개그다. 패가망신 운운하며 그처럼 기세등등하던 노 전 대통령이 개그가 아니라면 이같이 비참하게 추락할 수는 없다. "미처 갚지 못한 빚이 남아"있어 "저의 집에서 부탁"해서 돈을 받았다고? 그건 정말 개그다. 게다가 그 돈이 3억원이라고. 그것 역시 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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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 ⓒ뉴시스 |
대통령의 월급이 상당하며 대통령 재임 5년간 월급을 쓸 일이 별로 없어 거의 모두 저축이 가능할 터인데, 고작 3억원의 빚 때문에 돈을 받아? 단위가 백배 이상 받았던
전직 대통령들이 비해 상대적으로 깨끗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적은 액수에 비참해지고 코미디라는 느낌이 떠나지 않는다. 영부인의 자존심이 있지, 기껏 부탁해 3억원을 달라고 하는가? 그리고 3억원 이외에도 7억원을 더 받아 10억원을 받았다는 보수언론의 보도를 접하자 "그래도 10억 정도는 돼야지"하는 생각에 "3억이 아니라니 다행이고 그나마 어느 정도 체면을 세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 전 대통령만 개그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은 어떠한가? 노대통령의 폭탄선언 며칠에 있었던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도 개그다. 물론 자신들은 군축과 비핵화에 소극적이면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판하는
미국과 일본등 강대국들의 이중 잣대는 문제이다. 또 북한이 생존을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이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다수 민중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데 자유도 평등도, 아니 최소한의 민중들의 생존도 지켜주지 못하면서 현대사회에 부자세습이나 하는 '왕조'의 생존을 위해 수억 달러를 들여 미사일을 쏘아 올린다는 것은 정말 개그다. 게다가 이번 발사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3기 체제 출범
축하만이 아니라 후계구도 구축을 위한 사전정지 작업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으니, 이런 개그가 없다. 김정일 세습도 모자라 제 3대 세습까지 준비하고 있단 말인가?
물론 이미 진행되어 온 MB개그, 조중동 개그도 빼놓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때문에 세계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고 대부분의 나라들이 신자유주의를 버리고 있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을 더욱 강화하는 청개구리 노선을 고집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개그, 노무현 정부의 '박연차
리스트'에 비분강개하면서 자신들의
사주들이 관련된 '장자연 리스트'에 대해서는 침묵과 감싸기로 일관하고 있는 '해당 언론'의 개그까지 더해져 지금 한반도는 "누가 누가 더 웃기냐"는 개그
콘테스트 중이다.
그래 웃자, 웃자. 열 받아
건강을 상하느니 웃으며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길이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필자의 다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