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정치후진국 인권후진국가일수록 대개 고문이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고문은 무엇보다 고문 피해자의 심신을 황폐화시키고 파탄시킴으로써, 전신 골병으로 인한 당시의 고통은 물론 먼 훗날까지 심각한 후유증을 안겨주고 있는, 권력 전횡자 및 그 하수인들에 의한 명백한 반인륜적인 범죄행위로서, 오늘날 국제적으로는 형사소추문제의 걸림돌인 시효를 철폐하여 끝까지 고문 범죄자들을 추상같이 단죄하려는 논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2002.5.29 추록 : 비근한 예로, 최근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 결과 중앙정보부의 고문으로 숨졌음이 밝혀진 1973년 최종길 서울대 교수 고문치사사건과 관련,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여러 사회단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반인도적 범죄 공소시효 배제 특례법 입법 추진 논의' 등을 그러한 움직임의 한 실례로 들 수 있다.]
민주주의 발전에 따라 인권의식에 눈 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은 정치범 등 고문후유증상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 전문치료병원 및 요양시설을 체계적으로 갖추고 있으며, 정부 차원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움직임이 점차 조직화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고문후유증상은 실제로 피해 개개인마다 사례별로 지극히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재단하여 말할 수는 없다.
현대의학계도 고문후유증상에 대해서는 전문 연구 의사가 매우 희소한 탓 등으로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임상 차원의 자료가 거의 없다시피한 실정이다. 이에 따라 고문후유증상에 상응하는 최적의 치료법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오줌요법은 이러한 경우에도 훌륭한 치유수단으로 기능한다.
다음 내용은 장기간의 오줌요법으로 현대의학에서 불치병으로 여기는 본태성 고혈압은 물론 혹심한 고문후유증상을 극복한 매우 드문 사례이다.
본인의 희망에 따라 익명으로 소개하며, 아울러 오줌요법에 대한 본인 특유의 지론도 함께 게재한다.
◆어느덧 중년의 나이(52세)에 접어든 내가 지금 건강 측면에서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지난 11년 동안의 오줌요법 시행은 나로 하여금 혹독한 고문후유증상에 시달리던 고통으로 점철된 과거에서 벗어나 전혀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삶을 영위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벌써 11년째 시행하고 있는 오줌요법이 그 악몽 같던 고문후유증 치료에 미친 참으로 경이로운 치유효과 체험을 간략하게나마 증거 함으로써, 특히 민주화운동 참여 상이자 등 동병상련 또는 유사한 입장에 처해 있는 많은 분들께서 이 오줌요법 실천을 통해 하루 속히 건강한 심신으로 거듭나게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나는 20세 당시 정상적인 현역병 입대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나, 뜻밖에 2년에 걸쳐 거듭된 고향에서의 징병검사에서 매번 수검자 약 1,500명 가운데 혈압이 가장 높은 중증의 '본태성 고혈압' 및 ‘고도의 안저혈압’ 유병자로 밝혀졌다.
그 후 나는 1974년 모 대학 재학 중 그 해 10월 중순 유신독재체제 타도를 외치는 대학생시위 주도로 출학(黜學) 처분되었으며, 곧 이어 방위소집 복무에 선행하는 군부대 입소 훈련 통지서를 받게 되었다.
당시 입소 훈련 적합 여부를 가리는 신체검사(1974.11 하순)에서 나의 혈압을 측정한 군의관은 수축기 혈압 수치가 200을 훨씬 초과하는 등 초고강도 고혈압에 매우 놀라 즉석에서 나를 귀가 대상자로 분류하였으나, 군 보안부대 파견관은 블랙리스트 등재에 따른 특단의 사유를 들어 나를 귀가조치자 명단에서 전격 삭제하였다. 즉, 나는 입소 전부터 이미 강제징집 대상자로 낙인찍혀 있엇던 것이다.
당시의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제대로 항변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3주간의 교육훈련을 끝내고 파출소(검문소)의 야간 방위병으로 21개월을 복무, 육군 일병으로 제대하였으며, 그 후 부과된 일체의 예비군 및 민방위 의무를 빠짐없이 모두 이행하였다.
남북분단 상황에서 이 땅의 청년들은 대개 병역의무 수행을 통해 국가 현실 및 민족 문제에 대하여 치열한 체험적 문제의식을 갖게 되며, 그것은 분단 시대를 살고 있는 젊은이로서 마땅히 지녀야 할 대단히 가치 있는 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러한 방위소집 강제 복무 사실을 기술하는 이유는 당시의 유신독재는 엄정해야 할 소집 훈련 적합 여부 판정마저 자의적으로 마구 농단함으로써, 담당 군의관에 의해 방위소집 복무 부적합 귀가대상자 판정이 내려졌더라도, 그가 독재정권 유지에 걸림돌이 되는 신원특이자인 한 그의 기본적 인권은 무참하게도 짓밟혀버리고 말았다는 사실을 나의 생생한 체험담을 통해 역사의 법정에 증거하고 고발하고자 함이다.
아무튼 당시 나는 아직 젊고 건강한 탓인지, 중증의 본태성 고혈압으로 인한 별다른 증상은 심각하게 느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다만, 달리고 뛰고 나면 남들보다는 숨길이 좀 가쁜 편이었지만 뚜렷하게 의식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유신독재정권에 의해 황금 같은 청춘을 저당 잡혀버린 장장 5년 5개월 세월을 뒤로 하고 1980년 봄 늦깎이 복학생 신분으로 학교로 되돌아갔다.
그러나, 민주항쟁사상 '1980년 민주화의 봄'으로 일컬어지는 격동의 시국상황에서 신군부독재정권의 5.17 전국계엄 선포 당시 계엄포고령 위반 혐의로 체포돼 모 지역 계엄합동수사본부에서 당한 고문으로 인해 온몸에 이른바 '전신 골병'이 들게 되었다.
그 결과 오랜 세월 심각한 고문후유증(*척추 전반의 통증, 가슴 통증, 양쪽 무릎 통증, 양쪽 겨드랑이 저림, 귀울림증 등)을 앓게 되었으며, 1990년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장장 11년여에 걸친 강도 높은 오줌요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척추 일부 부위에 잔존 증상이 약간은 남아 있어 평소 거동이 100% 완전히 자연스럽지는 못한 형편이다.
특히 불과 3~4일 정도만 물리적 운동요법을 실시하지 않으면 허리에서 양쪽 발가락 끝까지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저릿하게 저리는 통증 때문에 물리적 운동요법을 필수적인 일과의 하나로 시행하고 있다.
나는, 1980년 5월 당한 고문 이래 10년 세월 동안 조금씩 차도가 있다가도 금방 다시 상태가 악화되어버리곤 하면서 끊임없이 고통 받아온 이와 같은 고질적인 고문후유증이, 1988년 늦가을 갓 입사한 새 직장에서의 소관 업무 오리엔테이션 기간 중에 급격히 악화되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이에 부득이 병가/휴직을 거듭하는 동안 이름난 침술가와 뜸에 의존하는 한편 궁극적으로는 시각장애인으로부터 척추교정시술을 장기간 받음으로써 마침내 200여일만에 지팡이를 짚고서야 겨우 직장에 복귀할 수가 있었다.
당시 보행이 극도로 힘들었으므로, 나는 1년 이상 도시락을 휴대하고 직장 출근을 하였으며, 회사의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내근직 근무로만 시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와 같은 참담한 상황에서 나는 1990년 초반 모 대학병원 선배 교수님의 배려로 고문후유증 환자 임상 치료 차원에서 동 대학병원이 갓 도입한 레이저 통증 치료기로 통증 완화 무료 시술을 40여일간 아침 이른 시간을 이용해 받아보았다.
그러나, 선배님의 지극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전혀 차도가 없어 더 이상 치료가 불가하다는 판정을 받았으며, 아울러 척추의 통증 및 이상 정도가 너무 현저하고 광범위하여 몇 차례나 척추수술을 받아야만 어느 정도 활동이 가능할 수 있다는 가히 절망적인 선고(?)까지 듣게 되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척추시술은 실패 위험도가 상당히 높아 간혹 잘못되면 하반신 마비의 불구가 되어야만 했었다. 그래서 나는 척추수술 대신 여전히 척추교정술 등에 의존하는 등 끊임없이 고문후유증 치료에 따른 비용을 적지않게 지출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한계상황에서 나는 1980년대 10년 세월을 육체적으로 끊임없이 고통에 시달리는 것과 더불어 날로 가중되는 치료비로 심신이 지쳐 있던 중, 기왕에 언론 보도를 통해 알고 있던 오줌요법에 대해 1990년 후반 수개월 먼저 오줌요법을 시행하고 계신 선배님으로부터 적극 권유받고는 곧장 철저한 시행에 들어갔다.
오줌요법은 무엇보다 일체 돈이 들지 않았으므로, 경제적으로 아무런 부담이 없는 홀가분한 상태에서 하루에도 여러 차례 마시고 또 마시면서 오줌마사지를 병행하였다.
여러 가지 호전반응이 다양한 형태로 엄습해 왔으나, 오줌요법 이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있을 수 없다는 철석같은 믿음 하에 오로지 오줌요법에만 전력투구를 하였다. 시도 때도 없이 오줌요법의 효과를 자주 늘어놓는 나를 두고 직장 동료들은 '오줌쟁이' '오줌박사'라고 불렀다.
예로부터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다. 이렇게 오줌을 열심히 마신지 채 1년도 되지 않아 직장 건강검진에서 전혀 생각지도 않던 악성 고혈압이 완전 정상(80-120)으로 나타나 정말 깜짝 놀랐다.
전문 의약계에 종사하는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믿기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이렇게 정상이 된 혈압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정상을 유지하고 있다. 본태성 고혈압은 불치병이라는 현대의학의 정설 하나가 오줌요법 실천 1년도 채 안 되어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이후 나는 더욱 확신을 갖고 오줌요법을 계속 철저히 시행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부지불식간에 그 동안 이름난 대형병원에서도 원인규명 및 치료가 불가능하였던 갖가지 고문후유증상들, 즉, 척추 전반의 통증, 가슴 통증(흉통), 양쪽 겨드랑이 저림, 양쪽 무릎 통증, 귀울림증과 같은 신체 각 부위의 통증 및 불편한 증상 등 지긋지긋하던 전신골병 후유증상들이 하나 둘 서서히 완화되어 가고 점차적으로 사라져갔다.
때때로 장기간 계속되는 격렬한 호전반응에 놀라기도 하고, 그럴 때면 오줌요법 자체에 대하여 미심쩍어 하기도 하였으나 결국 강철 같은 믿음 하나로 이겨냈다.
다만, 지금은 당시 당한 혹독한 고문이 척추에 미친 영향으로 발생한 구조적인 문제 탓으로 척추 부위 중에서 유독 요추 부위에 잔존 통증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그 통증의 정도는 예전보다는 훨씬 가벼워 어느 정도 기술적으로 관리만 잘하면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나는 1995년 12월 5일 내가 소속된 ‘OO 동지회’에서 개최한 기자회견 당시 이러한 고문후유증으로 인한 피해 사실을 증거하면서, 지난 15년여간 물경 약 5,000만원을 고문후유증 치료 관계 비용(*자가 물리치료기구만 \1,000만원 어치 상당)으로 투입하였다고 증언하였다.
그런데, 오줌요법 실천으로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고문후유증에서 90% 이상 탈출한 셈이 되었다.
최근 언론 보도에 의하면 김홍일 국회의원이 오랜 고문후유증상 치료를 위해 조만간 미국행을 결심하였다고 한다. 기왕 김 의원이 첨단 현대의학의 본고장에서 선진 치료 의술에 몸을 맡겨보기로 한 이상 완전히 건강한 모습으로 귀국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김근태 국회의원 또한 악성 비염 등 심각한 고문후유증상으로 오랜 세월 갖가지 고통에 시달려왔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분들의 증상 및 그 치료 의존 행태를 살펴볼 때, 나의 체험상 그토록 오랜 세월 시달려온 고문후유증상의 깨끗한 완치가 과연 현대의학 의존만으로 가능할 수 있겠는지는 대단히 의문스럽다.
아무튼 마침내 국가는 오랜 세월 '신원특이자'로 분류하였던 나에게도 ‘의료급여증’을 부여하였지만, 나는 오늘 하루도 이렇게 치열하게 실천하고 있는 오줌건강법 덕분에 나머지 생애 기간 더 이상 병,의원에 가지 않아도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작금과 같은 심각한 건강보험재정 파탄 사태를 맞아 생각해보면, 아프지 않아 병,의원에 가지 않는 것도 개인적으로 조용하게 애국하는 작은 방법들 중의 하나가 아니겠는가.
조직적인 정치폭력으로서의 고문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의 각종 인권 사각지대에서는 오늘도 여전히 사람 잡는 구타/폭행이 조직적으로 일상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오랜 산고 끝에 마침내 국가인권위원회(www.humanrights.go.kr)가 발족하였지만, 이미 몽둥이로 구둣발로 군홧발로 개머리판으로 처참하게 당함으로써 깨지고 망가진 몸과 정신은 과연 어느 누가 제대로 치료하고 보상해주겠는가.
없는 형편에 여기저기서 돈을 마련하여 보약도 먹어보고 좋다는 것은 무엇이든 해 보지만 이미 골수에 뿌리내려 '전신 골병'이 되어버린 몸은 별달리 차도가 없는 가운데 황금 같은 세월만 속절없이 흘러가기 마련이다.
살다보면 갖가지 간난신고 우여곡절로 곤경에 처하는 험한 경우를 한두 번은 당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생유전이 파란만장할수록 필사즉생의 각오로 건강에 더욱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에서 보듯 건강하게 장수한 사람들은 수십 년 세월 헤어진 가족/친지와 상봉하는 기쁨을 누린다.
정치인을 실례로 들어 다소 뭣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대통령도 수십 년 '영어'(囹圄)의 처지에서도 건강을 잃지 않았기에 노익장으로서 만년에나마 뜻을 펼 수 있었으며, 우리나라의 원로정치인 3김씨 세 분도 나름대로 역경의 세월 속에서도 본인들이 70여세에 이르도록 한결같이 건강한 심신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만은 우리 모두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동양 명리철학에서 일컫는 호시절 대운이 찾아왔는데도 대운을 담아나갈 그릇이자 몸체가 되는 본인의 건강이 뒷받침하지 못해 대운을 대운의 주인답게 당당하게 맞이하지 못하고 안타깝게도 떠내려 보내는 사람이 주변에 너무도 많다. 완숙기까지 기다려서야 비로소 화려하게 만개하는 학문/예술/정신계일수록 일찍 사그라지는 사람들을 수없이 본다.
사회가 고령화사회⇒고령사회⇒초고령사회로 급변할수록 건강한 노익장이 되려면 평소부터 건강제일주의를 생활철학으로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경제적 여건이 좋은 환자들은 현대의학으로부터 거의 포기 선고를 듣지 않는 한 오줌요법을 결코 쉽사리 시행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 구차스럽기도 하고 역겨운 냄새마저 나 혐오스럽기까지 한 오줌요법보다는 가진 돈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망하는 보다 질 좋은(?) 의료서비스에 의존하는 것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생각되고 신뢰성 또한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최상의 시설을 갖춘 1인용 병상의 독실에서 암/당뇨병 같은 급/만성 성인병을 고치고자 노력하지만 치료비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마냥 끝없이 들어가면서도 몸은 나날이 시들어가고 있는 이른바 부자병(?) 환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오줌요법에는 돈이 전혀 필요 없다. 오줌요법은 사람이면 누구나 생래적으로 마련돼 있는 특히 돈 없이 병든 사람들을 위한 천혜의 '건강 만사형통의 여의보주'인 것이다.
지금 자신의 삶이 비록 고단할지언정 늦게라도 다가올 대운을 적극적으로 주체적으로 맞이하기 위해서라도 원천적으로 돈이 들지 않는 오줌요법으로 평소 자신의 건강을 철저히 관리해나가는 지혜로움이 필요하다.
오늘날 '장병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무색하게도 심지어 '늙고 병든 부모 유기사건 속출' 등 가족공동체적 윤리의식이 땅에 떨어지고, 더구나 연령층 구분 없이 이혼율이 급증하는 등 가족 해체현상이 만연하고 있는 세태에서는, 설령 자신에게 대운이 이미 지나가버린 데다 그나마 가진 돈 마저 없다고 할지라도, 최소한 자신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다는 것은 부모-자식-형제 관계에서마저 스스로를 지키는 최후의 안전판이며 마지막 보증수표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더욱이 오늘날 의약분야 역시 황금만능적 행태가 횡행하고 있는 세태에서는 특히 가진 돈 없이 늙어가고 있는 '중/장/노년층'에게 있어 오줌요법은 바로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오줌요법을 다소 극단적인 시각에서 강조한 측면이 없지 않으나, 오늘날 사회보장적 복지수준이 저급한 상태에 머물고 있음은 물론 기초적인 사회안전망마저 충분히 형성되어 있지 아니한 가운데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고령화사회 측면에서 평가해 볼 때, '돈 한 푼 들지 않는 오줌요법' 시행이 특히 가진 돈 없이 병들어 시들어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코 지나친 표현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계제에 한국오줌건강운동본부가 순수 시민운동단체로서 아마도 세계 최초로 발족한 것은 참으로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오줌요법은 도무지 돈 하고는 인연이 없는 건강법이고 치료법인지라, 기존의 이른바 ‘돈이 되는’ 전문 의약계의 강력한 비판과 반발은 어찌할 것이며, ‘오줌=노폐물’로 잘못 배운 저 하고많은 사람들은 또 어떻게 설득하여 자기 오줌을 마시게 할 수 있을지 앞으로 난관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운동본부 관계자들이 향후 사면초가 고립무원 지경에서 고군분투할 때도 있겠으나, 이 운동은 언젠가는 인류 보건의료사에 인류의 건강장수에 지대한 기여를 한, 전 지구촌에 걸친 전무후무한 4무요법(*돈이 전혀 필요 없고, 시간도 노력도 들지 않으며, 더욱이 부작용이 전혀 없는 가장 완전한 치료법) 보급 운동으로 기록돼 길이 전해질 것이라 확신한다.
끝으로 운동본부 관계자들의 건승과 건투를 빌어마지 않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