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암 발생 패턴을 보면 뭘 조심해야 하고 어떻게 검진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적을 알면 백전백승하는 원리다. 암 발생 지형도(地形圖)는 암 전쟁에서 군사작전 지도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①암의 70%가 '6대 암'에 집중
신규 암환자 10명 중 7명이 위암·갑상선암·대장암·폐암·간암·유방암 등 6대(大) 암에 걸린다. 이는 정기 검진만 제대로 하면, 대다수 암을 조기에 발견해 완치할 수 있다는 뜻이다. 위암·대장암은 내시경, 유방암은 유방촬영술, 갑상선암은 초음파 등으로 암을 일찍 발견할 수 있다.
또 폐암은 금연으로, 간암은 B형간염 백신으로 대부분 예방된다. 가족 중에 폐암이 있거나 장기 흡연자는 폐암 조기발견을 위해 방사선 노출량이 적은 '저선량 CT(컴퓨터 단층촬영)'가 권장된다.
②'전통암' 위암, 1위 고수
1950년대 냉장고가 보편화되면서 서구에서는 위암이 점점 종적을 감추고 있다. 소금에 절이는 음식의 섭취가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위암이 위세를 떨친다. 한 해 신규 위암 환자 2만8000여명으로 전체의 15%를 차지한다.
위암은 짜고, 소금에 절이고, 간장으로 삭힌 음식을 많이 자주 먹으면 발생 위험이 커지는데, 한국인이 이런 음식을 선호하는 탓이다. 한 음식을 여럿이 공유하는 '찌개 문화' 등으로 헬리코박터균 감염률이 높은 것도 위암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 40대 성인의 절반 안팎이 이 균에 감염돼 있다.
③고기 맛 본 장년층… 대장암 급증
성인 남자 10명 중 4명이 담배를 피우는 나라(흡연율 42%)에서 대장암이 폐암을 따돌리고 남성 암 발생 2위가 됐다. 그만큼 대장암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어릴 때부터 '고기 맛'을 본 계층이 50·60대 장년층으로 넘어가고, 비만 인구가 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소화기 상부에는 한국형 위암이, 하부에는 서구형 대장암이 공존하는 형국이다.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이들 세대가 고령화될수록 대장암 발생 추세는 더욱 드세질 것"이라며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면 대장암 발생의 40~70%는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에서는 유방암이 남성 대장암과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나이 들수록 유방암 발생이 많은 서구 국가에 비해, 국내 유방암은 50세 전후에 집중해 있다. 이들은 '지방질 과다 조기 노출' 세대다.
④갑상선암은 진단 과잉?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변방 암'이던 갑상선암은 해마다 늘더니 마침내 여성 암 발생 1위가 됐다. 전문의들은 건강검진용 갑상선 초음파 검사가 보편화되면서 암 진단도 덩달아 늘었다고 해석한다. 갑상선에 조그만 혹이라도 발견되면, 조직검사를 하고, 거기서 암세포가 나오면 수술을 받는 현상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대한갑상선학회는 최근 '0.5㎝ 이하 혹은 아예 조직검사도 하지 말고, 더 커지는지만 지켜보라'는 진료 지침을 발표했다.
⑤서구 1위 전립선암, 의외로 적어
미국·영국 등에서는 전립선암이 남성 암 발생 부동의 1위다. 고령자에게 가장 흔한 암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는 급속히 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도 전립선암은 암 발생 5위로, 의외로 낮다. 전문의들은 "착시(錯視) 현상"이라고 말한다. 대한전립선학회 이현무(성균관의대 비뇨기과 교수) 회장은 "미국에서는 50대 이상이 정기적으로 전립선암 검사를 받는 비율이 70% 이상인데 한국은 20%도 안 된다"며 "숨겨진 전립선암이 매우 많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전립선암은 간단한 피검사(PSA 수치)로 발생 여부를 추정할 수 있다. 마늘이 전립선암 예방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는 역학조사를 통해 입증된 것은 아니다.
☞암 생존율
암으로 진단받은 후 5년 이상 살아남는 환자의 비율. 5년에 대한 의학적 근거는 없으나 임상적으로 5년 이상 살게 되면 재발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 국제적으로 공용된 기준이다. 아주 드물게 5년 후에도 재발해 숨지는 암환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