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와중에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완전히 파국으로 몰고 가는 게 있으니 바로 학교성적이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부모는 아이들에게 화내고 욕하고 때리기도 한다. 깊은 마음의 상처를 주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부모 자식 간은 서로 미워하고 증오하고 저주하는 사이가 된다. 그 어리고 소중한 아이들에게 “나가 죽어”라는 말을 우리처럼 쉽게 하는 사회가 또 있을까. 동물의 왕국이 차라리 인간적이다.
정신과 전문의 이시형 박사는 중학생이 겪게 되는 혼란과 방황을 ‘정상적 정신분열증’이라고 칭한다. 누구나 겪게 되는, 성장과정의 한 단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모들은 청소년기 자녀들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어야 함에도 성적을 가지고 자식들의 숨통을 조른다. 방황하는 청소년들은 의지할 곳을 찾게 마련인데 부모는 상처를 주고 등을 돌려버리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배신당한 것이다.
지난주 부산의 중학교 2학년 학생이 20층 베란다에서 몸을 던졌다. “이번 시험 정말 잘 치려고 엄청 노력했지만 뜻대로 안됐다. 성적 때문에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이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갖고 싶었던 그 아이는 중간고사 성적이 오르면 사 주겠다는 부모의 약속에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 스마트폰도 얻지 못하고 부모에게 꾸지람까지 들은 그는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이 사회를 떠나고 싶다. 한국이 왜 자살률 1위인지 잘 생각해보라”며 우리 어른들을 일갈한다. 그런데 그 아이가 남긴 마지막 부탁이 나의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아이팟을 함께 묻어달라.”
가족 대신 그 아이가 함께하고자 했던 마지막 하나는 바로 음악을 들려주는 손가락만한 기계였다. 그렇다. 이 아이들에게 소비는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결핍을 메우는 것이다. MP3플레이어와 스마트폰은 외로움과 싸우기 위해 없어서는 안되는 물건이자 친구인 것이다. 그것이 없으면 상처 받은 마음을 달랠 길이 없었던 것이다. 이제야 이해가 될 것 같다. 아이들이 왜 PC방에서 같이 밤을 새우고 왜 노스페이스를 입고 몰려다니는 것인지.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는 것이다.
인터넷에는 자살을 고민하는 아이들로 넘쳐난다. 모두 부모에게 배신당한 아이들이다. “너만 없으면 잘 살겠다”는 엄마의 말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는 아이, 칼로 손목을 그었던 아이, 휴대폰 충전기로 목을 졸랐던 아이, 고층아파트 난간에 매달려 본 아이, 약을 한 통 먹었는데 부모가 살려내 다시 자살을 준비하는 아이도 있다. 중학생이 글을 올리면 초등학생까지 쫓아와 달래주고 자기 이야기 같다며 같이 울어준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지금 죽지 말라며 뭐라 하는지 아는가. “부모님이 너무 불쌍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