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12월3일 저녁. 서울 대한문 앞에서 경찰의 국가보안법 수사를 비웃는 젊은이들이 북한과 관련 없는 ‘김정일 노래’를 부르며 흥겹게 파티를 벌일고 있다. 박은선 제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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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만세! 만세! 만만세!!”
지난 12월3일 토요일 저녁 서울시청 인근 대한문 앞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젊은이들이 시끄러운 드럼과 베이스에 맞춰 “김정일 만세! 만세! 만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길을 지나던 나이 지긋한 아저씨 두 분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얼굴은 파래져서 한참이나 그들을 쳐다보았다. 딱딱하게 굳은 안면 근육은 말하고 있었다. ‘아! 성스러운 자본주의국가에서 이게 무슨 북괴 돋는 짓인가? 아! 장군님(박정희 장군)….’
대한문 앞에 버젓이 ‘뉴타운 간첩 파티’라고 적힌 현수막이 펄렁이는 것도 기가 막히고. 그 앞에 모여 머리를 흔들어대며 “김정일 만세! 만만세!!”를 부르는 어이없는 광경에 아저씨들은 분노를 어쩌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김정일 만세!”를 외치는 이 노래는 인기 인디밴드 ‘밤섬해적단’이 패기 있던 자신의 중학교 때 친구인 김정일을 기념하려고 만들었으며 북한의 김정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순수한 노래다. 여러 사람이 모여 시내 한복판에서 이 순수한 음악을 함께 즐기게 된 데에는 ‘박정근’이라는 현장사진가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사받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9월21일 경기지방경찰청은 트위터에서 북한 말투를 사용하며 때때로 ‘우리민족끼리’의 트위터를 리트윗하는 ‘박정근’이라는 지극히 평범한 젊은 사진가가 운영하는 사진관을 급습해 압수수색을 강행했다. 경찰은 박씨가 트위터를 통해 북한 체제를 찬양· 고무했으며, 홍익대 청소노동자 투쟁, 두리반 투쟁, 서울 포이동 주거복구 투쟁, 반값 등록금 집회, 희망버스에 참여하는 등 국가 체제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인 점으로 볼 때 국가보안법상 찬양·고무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루를 다 할애한 압수수색의 결과 그들이 가져갈 수 있었던 증거물은 ‘사회자(MC) 박정근’이라고 적힌 명찰을 포함해 시답지 않은 ‘찌라시’ 정도여서 세간의 비웃음을 샀다. 이후 두 달에 걸쳐 경찰 조사를 받고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에서 4차에 걸쳐 심문을 받는 동안, 박씨는 급격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정신과 치료에 의존하게 되었다. 100쪽이 넘는 조서에서 박씨가 대답할 수 있는 말은 한마디밖에 없었다. “장난이었다.”
박정근이 의사를 표현한 범죄의 장소는‘트위터’요, 그의 직업은 ‘현장사진가’이다. 국가보안법이 시시콜콜한 일상을 표현하는 공간인 트위터까지 검열하는 것은 ‘감성’의 공간마저도 검열하겠다는 의도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의미가 무색해졌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박씨는 ‘현장과 함께하는 사진가’이다. 기업의 횡포를 비판하고 가난한 이웃과 노동자를 도운 일이 국가 체제에 반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예술계는 예술가의 수에 비해 다양성이 부족하다. 노동 탄압, 부정부패가 심각한 나라치고는 이런 현실의 모순을 지적하는 예술가는 그리 많지 않은데, 여기에는 국가보안법 같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악법이 존재하는 이유가 크다. 예술은 먹고사는 문제 외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상상하게 만든다. 무한 경쟁의 구도, 자기계발에 함몰된 병든 사회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예술의 상상력과 자유에서 비롯된다. 국가보안법 같은 시대착오적 발상은 예술의 자유로운 정신과 다양성을 위축시켜 우리 삶을 더욱 지치게 한다. 표현의 자유를 위해 박정근의 친구들은 저녁 늦게까지 시민들과 함께 뛰어놀았고, 파티를 지켜보던 어르신들은 111에 간첩 신고를 하셨다.
리슨투더시티 아트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