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드디어 시험대에 올랐다. 김정일 사망이 계기다. 중국이 지금부터 북한에 취하는 정책은 세계가 중국
리더십의 가능성을 평가하는 리트머스시험지가 된다. 선택은 전적으로 중국의 손에 달렸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중국이 세계의 보편적 질서를 존중하는 평화대국으로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실망스럽다. 평화대국이 아닌 패권대국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김정일 사망 발표 이후 중국의 행동은 이해할 수 없다. 한국 정부의 거듭된 요청에도 이명박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의 통화는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조차 하루가 지나서야 가까스로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과 전화를 댈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달랐다. 사망 당일 애도 담화를 냈고, 공산당 중앙위원회 등 4개 기관 명의로 북한 정부에 조전을 보냈다. 후 주석은 북한 공관을 직접 찾아 조의를 표했다.
물론 권력 교체기에 북한을 자극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김정은을 ‘영도자’라고 떠받들어가며 북한의 시대착오적인 3대 세습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나서서는 곤란하다. 한반도의 통일을 반대하고 동북아에서 패권의 길을 걷겠다는 의도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미국과의 대결에서 북한을 영구적인
완충지역으로 만들고 동북아를 대립 구도로 유지하겠다는 생각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불행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중국의 한결같은 주장은 패권
주의를 지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종 목적은 경제 발전을 발판 삼아 평화적으로 중국의
존재를 우뚝 세운다는 화평굴기(和平起)라는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말의 성찬일 뿐이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해전 당시 그들이 보여준 행동은 패권대국의 모습 그대로다. 댜오위다오
남중국해 등 국제적인 갈등이 빚어질 때마다 중국은 보편적 가치를 내세우기보다는 자신들의 핵심적 가치가 훼손됐다는 점만 강조했다.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다)라는 외교의 기본 전략에 유소작위(有所作爲·행사할 수 있는 곳에 힘을 행사한다)라는 발톱을 숨겨뒀다는 사실을 구태여 감추지 않는 것이 오늘의 중국이다.
중국은 사실 한반도의 냉전 교착상태를 서둘러 해소할 생각이 없다. 무엇보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한반도로 각국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있다. 진정한 화평굴기는 중·미 간의 대등한 게임이 돼야 하는 만큼 비대칭성이 사라질 때까지는 현 상황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미국이 한반도 정세를 이용해 펴고 있는 대중
억제전략을 포기할 때까지다. 한국과 북한에 대한 기본 전략도 여기서 출발한다. 한국은 천안함 사건 등으로 불만이 있겠지만 이미 경제적으로 중국의 혜택을 보고 있어 결코 강하게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유에서 언젠가는 한·미 동맹이 약화될 수밖에 없으며 궁극적으로 미국의 뒤를 따르는 대북
적대정책도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후계자를 인정해 준데다 외교적으로 고립된 상황인 만큼 중국에 더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몇 십년이 걸리건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자신들이 진정한 발언권을 가질 때까지는 이런 구조를 그대로 가져가고 싶어한다. 중국이 현상 유지를 원하는 한 한반도에는 진정한 평화가 존재할 수 없다.
원자바오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국은 ‘국강필패(國强必覇·나라가 강해지면 패권을 좇게 된다)’의 길로 나서지 않을 것을 분명히 했다. 맹자가 강조했듯 힘으로
어진 척하는 ‘패도(覇道)’보다는 덕으로 어짊을 실천하는 ‘왕도(王道)’를 좇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중국이 지금 왕도를 추구한다고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순자(荀子)가 치도의 범주에도 넣지 않던 강도(彊道·덕치를 포기하고 힘으로 현상을 유지한다)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중국의 선택에 한반도는 물론 중국의 미래도 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