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안재만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 최재원 부회장의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주목하는 인물은 크게 2명이다. 베넥스인베스트먼트의 대표이사 김준홍씨, 그리고 무속인 김원홍씨다. 특히 김원홍씨는 최 회장의 선물투자를 적극 권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반인의 관심은 "대체 얼마나 용한 점쟁이기에 재벌이 믿고 수천억원을 `몰빵`하느냐"에 쏠린다. 선물투자와 비자금, 횡령 사실 여부보다 무속인과 재벌간의 관계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언뜻 보기엔 다소 이상한 조합으로 보이지만, 사실 재벌 및 대기업 CEO와 무속인의 `협력관계(?)`는 깊이 뿌리 내려 있다는 게 점집 좀 다녀봤다 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그룹 오너들이 인사나 대형 프로젝트, 사옥 이전 등을 결정할 때 역술인이나 무속인을 찾는 경우가 많다는 전언. 언론에 오르내리거나 차기 대통령을 맞히는 용한 무속인 중에도 `신들렸다`고 평가받는 무속인은 꽤 자주 오너급을 모시곤 한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오너가 무속인을 만난다고 하면 `중대사를 미신으로 결정하면 어떡하느냐`는 역풍이 불 수 있어 쉬쉬하지만, 바로 윗 세대만 해도 그렇게 감출 일이 아니었다.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사주와 관상에 관심이 많아 면접때 무속인, 역술인을 동석시켰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연초엔 유명 역술인에게 계열사 CEO의 한해 운수를 보게 했고, 이를 인사에 반영시키기도 했다.
이병철 회장로부터 시작된 전통은 아직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05년 용인시가 경기도 기흥(器興)의 명칭을 구흥(驅興)으로 바꾸려 하자 삼성전자가 제동을 걸었던 것. 삼성은 기흥은 `그릇이 흥한다`는 의미를 지닌데 반해 구흥은 `당나귀가 흥한다`는 의미라 내심 탐탁치 않아 했다는 후문이다.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은 `역술 경영`의 대표 주자다. 사주와 관상을 보고 사원을 뽑았다. 애초에 사업을 시작한 것도 역술인의 "사업 한번 해보라"는 권유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청호그룹의 정휘동 회장 또한 같은 경우라고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최근 최태원 회장과 검찰 수사로 얽혀 있는 코스닥업체 G사의 사장 박모씨도 무속인의 조언을 듣고 회사를 팔았던 전례가 있다. 무속인에는 해당되지 않지만, 사이비 종교에 빠져 기업을 통째로 기부하려 시도했던 코스닥기업 CEO도 있다.
지난 2009년에는 `부산 박도사`라고 불리는 유명 역술인 박모씨의 자료가 일부 유출돼 재계가 크게 들썩인 일도 있었다. 사주풀이를 하다보면 친모나 이복형제 등의 은밀한 사생활이 언급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유출되면서 몇몇 그룹이 바짝 긴장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점에 빠질까. 쉽게 결론 내리 어려운, 파급력이 막강한 중요한 순간을 매일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역술인은 "그만큼 중압감이 크다는 소리"라며 "의외로 이들이 사기 등에 휘말리는 사례도 많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