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일보 문정임 기자] 번민은 ‘욕심’때문이었다. 사춘기 아들의 여자 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엄마, 가정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보니 아쉬움이 우울로 이어진다는 새댁.
번민은 ‘어리석음’이기도 했다. 부모 덕으로 더 많이 가지고 사는 친구들이 밉다는 청년, 어린 시절의 상처가 중년이 된 지금까지 남아 여전히 삶이 힘겹다는 남자.
▲ 법륜스님. '희망세상만들기' 리플렛에서 발췌. |
“각각의 존재는 있는 그대로 존엄한데 우리의 주관이 분별을 만들어 상에 집착하니 마음이 괴롭다”는 것. 법륜스님은 “벼랑끝에 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세상에는 그것에도 못 미쳐 당신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며 “삶에서 방황은 행복을 앞두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조건이다. 다들 배부른 소리를 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의 정신적 스승으로 알려진 법륜스님이 9일 제주를 찾았다. 지난 5월1일부터 오는 8월20일까지 전국 시군구 100회 순회 강연(평화재단 주최)을 시작한 법륜스님은 이날 제주학생문화원과 서귀포시청 1청사에서 제주도민을 만났다. 현장에는 복도와 통로, 법륜스님이 선 무대에까지 좌석을 얻지 못한 시민들이 줄지어 앉는 장관이 연출됐다.
‘즉문즉설’(그 자리에서 바로 묻고 바로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날 강연에서 법륜스님은 고민거리를 안고 온 모든 시민들에게 “삼라만상은 마음에 달렸다”며 “마음을 치유하고 정화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법륜스님은 “산에 있는 나무가 자기보다 더 큰 나무가 있다고 죽어버린다면 얼마나 우스운가. 화장실 변속의 구더기가 저들끼리 중량을 재어 무거운 놈이 으스대는 것은 또한 얼마나 우스운가”라며 “장미와 코스모스가 있을 때 두 꽃이 다른 개체라는 것만이 객관적 사실일 뿐, 뭐가 더 예쁜 지는 주관적인 분별이다. 분별은 마음이 낳은 판단”이라고 말했다.
욕심은 개인만의 것은 아니었다. 법륜스님은 “지금의 어려움은 정부가 나라를 사랑한다며 이것저것 일을 벌인 데에서 기인한 부분이 크다”며 “이는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정부 혼자 국민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해가 전제되지 않는 사랑은 독재가 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 9일 서귀포시청 1청사에서 법륜스님의 강연이 열렸다. 문정임 기자. |
이어 “부모가 자녀에게 헌신하지만 자녀가 저항하는 것은 상대의 요구를 넘어서서 내가 원하는대로 조종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며 “너 없으면 못 사는 것(일방적)은 사랑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법륜스님은 경제에 대한 어리석음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법륜스님은 ‘서귀포시에 오래 살고싶지만 인구가 적어 경제적 발전이 더디고 문화·교육적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걱정’이라는 한 시민의 물음에, “인구가 왜 많아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법륜스님은 “인구가 늘어나고 공장이 들어서도 아름다운 환경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보느냐. 사람이 늘면 더 많은 집을 짓고 더 많은 쓰레기가 생기고 제주도의 환경은 계속 천혜일 수 없다”며 “인구가 늘고 경제가 성장한다고 개인의 삶이 크게 나아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투자 유치가 중요한 발전 조건으로 부각되는 현 상황에 대해 “투자가 활성화되면 땅값이 오르고 외려 제주도민들이 제주 땅을 구입하기가 더 어려워 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법륜스님은 “골프장 등의 개발관광사업은 이미 지천에 널린 사업이 됐다”며 “미래는 삶의 질이 우선할 것이므로 공기가 얼마나 맑은 지 물이 얼마나 깨끗한 지가 중요하다. 환경을 껴안은 청정 고수익사업을 키워야 제주경쟁력이 커진다”고 충고했다. 또 “(행정은) 앞으로 펼쳐질 동북아의 시대에 무엇이 가치있는 일이고 제주도민들의 의견은 어떤 지, 잘 연구하고 이야기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법륜스님은 강연 시작 전 제주4·3의 집단학살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고 강정마을을 방문, 국가와 지자체에 소통 우선을 요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