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사달라는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달래다가 끝내 폭발했다. 가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 이 더운 여름날 저녁, 소리가 옆집으로 넘어갈 것 같아 창문을 닫은 채 화를 버럭 냈다.
'아들이 이렇게까지 요지부동으로 떼를 쓴 적은 없었는데…'
이유가 궁금했다. 평소 아빠 스마트폰에 이런저런 게임을 깔아놓은 것을 떠올리고 처음에는 게임이려니 했다.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30명 정도인 같은 반 친구 중에
휴대폰을 갖고 있는 아이는 절반이다. 아들도 피처폰은 있다. 스마트폰은 그 중 몇몇이 갖고 있다. 스마트폰을 갖고 있는 친구들처럼 자기도 카카오톡을 하고 싶다는 게 아들의 소망이다.
중소기업 사장인 친구는 요즘 직원들에게 한마디를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사무실에서 얼핏 보면 직원들은 열심히 일을 한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하는 일이 2가지다. PC작업을 하다가 책상 위에 올려진 스마트폰에서 신호가 울리면 스마트폰작업을 한다. 스마트폰은 3~4초에 한번씩 울린다. 카톡이다.
카톡 안쓰면 온라인 소외 받는 세상이 불황에 별의별 아쉬운 소리 해가며 겨우 일감 따오니 직원들이 일은 안하고 사무실에서 허튼 짓이나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나도 카톡을 하는데 하면 할수록 친구 생각과 비슷해진다. 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들끼리 나눈 대화 내용을 찾아보면 이런 가관이 없다. 초대를 받은 수십명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데 "밥 먹었니? 너는?" "한번 보자. 그래야지." "빨리 퇴근하고 싶다. 나도."이런 식이다. 이렇게 세상 쓸데없는 잡담이 쉴새 없이 들어오는데 그럴 때마다
기계적으로 스마트폰에 손이 가는 나를 발견하곤 흠칫 놀란다.
어느 날 퇴근 길 지하철에서 본 청춘남녀의 모습은 압권이었다. 분명 느낌은 이성친구인데 두 사람은 말없이 자기의 스마트폰으로
온라인의 누군가와 카톡을 하고 있었다. 대화를 할 친구, 그것도 밀어를 나눌 이성이 바로 옆에 있는데 두 사람은 기계가 더 사랑스럽나 보다.
카톡이 뭐길래. 카톡이 뭐길래 아들이
아버지 말을 거역하고 사원이 사장을 우습게 알고, 어른이 아이처럼 유치해지고, 청춘이 고개를 숙이는 걸까.
카톡이 그토록 많은 사람에게 꼭 마약처럼 다가오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소ㆍ청ㆍ장년을 가리지 않고 다 물어본 결과 답은 하나였다. "공짜잖아요."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지만 이건 좀 심하다. 겨우 이 정도 이유는 아닐 것이다. 공짜에 대한 반박 논리는 직원들을 괘씸해하는 친구가 가르쳐줬다. "공짜라는 이유만으로 카톡을 한다면 그 사람은
문자 보낼 돈도 없는 거지다. 나는 문자 보낼 만큼은 벌기 때문에 카톡을 지웠다."
진짜 이유는 소외가 아닐까. 우리는 사람으로 진화하기 전부터 소외를 두려워했다. 소외는 죽음이다. 왕의 자리를 박탈당하고 무리에서 배제된 숫사자를 기다리는 것은 쓸쓸한 죽음뿐이다. 그런 현실의 소외에서 더해 이제는 실체도 없는 온라인에서의 소외까지 우리를 옥죄고 있다.
가끔 스마트폰
배터리가 완전 방전돼 완벽하게 온라인에서 떨어져 있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가 없어도 이 세상은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가는 경험을 한다. 온라인에서 오프하더라도 이 세상이 별 탈 없는 것처럼 나 역시 아무 이상 없이 잘 있음을 알 수 있다.
스마트폰 끄고 사람의 정 느끼길그래도 온라인 소외가 두렵다면 버틸 체력을 기르기 위한 온라인 단식이 필요하다. 그동안 먹고 마신 온라인 스팸 음식을 감안하면 아마 대부분 거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온라인 초고도비만이 돼 있을 거다.
물론 단식 초기에는 금단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하루 이틀 참다 보면 차츰 줄어들 것이다.
금연에 성공한 사람들은 안다.
단식 방법은 쉽다. 옛날
광고 카피에도 나오듯 가끔 스마트폰을 꺼두면 된다. 요즘 같은
휴가철이면 한 일주일 꺼둬도 상관없다.
전문가들은 중독은 더 좋은 다른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을 때 비로소 극복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온라인 소외가 두려워 온라인 중독이 돼 있다면 오프라인에서 좀 더 자주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자. 차가운 맥주 한 잔 살 돈은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