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흥용 목사는 15년간 쪽방 동네 주민들을 돌보며 살았다. 김 목사가 직접 부딪혀 만든 목욕탕과 체력 단련 공간 등은 정부 복지 센터의 모델이 됐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사람 시력을 잃게 하는 전염병이 퍼진 세상을 그리고 있다. 전염병이 휩쓴 도시에는 화장실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배출한 배설물과 치우지 못해 썩어 가는 쓰레기가 도처에 널려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오물을 온몸에 묻히며 걷고, 거리의 악취를 고스란히 뒤집어쓴다. 등장인물들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몸을 깨끗이 씻을 때, 처음으로 온전한 평화가 깃든다.
몸을 씻고 싶은 마음, 김흥용 목사는 이 욕구가 얼마나 강한지 안다. 10대에 강원도에서 서울로 무작정 왔다가 돈과 머물 곳이 없어 길에서 먹을 것을 구걸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위생과 피부병 등을 이유로 자신과 같은 처지인 사람들이 목욕탕에 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김 목사는 무료 목욕탕을 만들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1997년 남산 아래 나사로의 집을 세워 경제적 약자들을 돌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욕을 중요하게 여겼고, 2000년에는 무료 목욕탕을 지었다.
이처럼 김흥용 목사의 마음가짐은 여느 봉사자들과 다르다. 추상적인 동정심으로 타인을 거드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이해하고 충족하는 데서 빈민들을 바라보고 도왔다.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목사 안수를 받아 15년간 서울 남산 주변에서 쪽방 동네 주민을 제 식구보다 더 살뜰히 돌볼 수 있었던 힘이다.
▲ 김 목사는 쪽방 동네 주민들을 직접 씻어 주었다. 2000년부터는 무료 목욕탕을 마련해 쪽방 주민이 와서 씻을 수 있게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김 목사가 시작한 목욕은 빈민들 삶의 양식을 바꾸었다. 김 목사가 닦아 준 몸, 김 목사가 얻어 준 옷, 김 목사가 다듬어 준 머리칼은 구걸과의 이별을 의미했다. 말끔한 사람은 길에서 손을 벌려도 돈을 얻을 수 없었다. 노동해야 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김 목사는 손수레를 한 대 사서 쪽방 동네 사람들과 함께 폐지를 수집했다.
김 목사와 쪽방 동네 사람들이 예전과 다른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했을 때, 이들의 생활공간이 잔인하게 운명을 결정하는 현실을 목도해야 했다. 쪽방 동네는 고층 빌딩이 무심히 등지고 있는 서울 용산구와 중구 한 자락에 있다. 도심 속 다닥다닥 붙어있는 0.5평~1평 남짓한 방은 더위에 약하다. 김 목사는 여름마다 더위에 지쳐 숨진 주검을 수습해야 했다.
김 목사는 숨 막히는 더위를 피해 주민이 쉴 곳을 찾았다. 그러다 10여 년 전 서울시 도움으로 60평 규모의 지하 공간을 얻어 용산 푸른 나눔터로 만들었다. 김 목사는 새로 생긴 공간에 운동 기구를 들여 놓아 주민이 무료로 체력을 단련할 수 있게 했다. 한편에는 책과 책상을 두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했다. 더위를 피할 수 있으면서 여가 활동도 할 수 있는 장소가 생긴 것이다. 덕분에 올해 열흘간 이어진 기록적인 폭염에도 서울 쪽방촌에서는 사망자가 한 명도 없었다.
김 목사는 맨몸으로 부딪혀 쪽방 동네와 사회가 통하는 길을 내고 닦았다. 김 목사가 만든 나사로의 집은 정부 복지 기관의 모델이 되었다. 지금은 서울에 쪽방 동네를 돕는 복지 시설 7개가 세워졌고, 다른 지역에도 복지 시설이 들어섰다.
▲ 추석을 앞두고 찾은 쪽방 동네에도 명절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용산 푸른 나눔터에서 밑반찬을 만드는 봉사자들이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김 목사를 만나러 용산 푸른 나눔터를 찾은 9월 28일은 밑반찬을 만드는 봉사자들로 북적였다. 매주 금요일은 쪽방 동네 주민에게 주는 음식을 만드는 날이다. 이날은 추석을 앞두고 평소보다 많은 봉사자 20여 명이 찾았다. 봉사자들은 김치를 담그고 전을 부쳤다. 송편도 마련했다. 여기서 준비한 음식은 한 사람 일주일치 반찬이다.
밥은 나눔의 쌀독이 책임진다. 사람들이 나눔의 쌀독에 쌀을 두고 가면 주민이 가져간다. 쌀 한 바가지면 한 사람이 이틀 먹을 분량이 된다. 나눔의 쌀독 역시 전국으로 퍼졌다. 지난 2006년에는 나눔의 쌀독 덕분에 밥을 먹은 주민이 10만 명이 되었다. “제가 근처 호텔에서 먹을 것을 얻어다 나누었던 시절에 비하면 환경이 많이 좋아졌지요.” 김 목사의 아이디어와 봉사자들의 도움은 쪽방 동네 먹을거리를 바꾸었다.
▲ 쪽방 동네 사람들 밥은 나눔의 쌀독이 책임진다. 나눔의 쌀독에 쌀을 두고 가면 쪽방 동네 사람들이 먹을 수 있다. 김 목사가 나눔의 쌀독 옆에서 자세를 취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쪽방 동네 환경은 개선됐지만, 김 목사 건강은 악화됐다. 몸을 돌보지 않고 일한 탓이다. 김 목사는 만성 신장염으로 신장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 신장이 전체 1/3만 남았다. 위암으로 위도 떼어냈다. 뇌졸중 병력 때문에 가끔 집을 찾지 못하는 때도 있어 집 주소가 쓰인 명찰을 목에 걸고 다닌다.
74세 작은 노인은 그래도 여전히 ‘왕초’라 불린다. 바람에 날아갈 듯 여윈 몸이지만, 일할 때만은 장사 같은 힘이 나온다 하여 얻은 별명이다. 그의 일대기를 정리한 책 제목이 <쪽방 동네 거지 왕초>로 결정된 배경이기도 하다.
김 목사는 현재 다른 봉사자들에게 현장을 맡기고 뒤로 물러났다. 대신 조만간에 쪽방 동네서 다시 교회를 열 계획이다. 김 목사가 나사로의집교회를 개척했으나, 그가 아파서 쉬는 동안 쪽방 동네 사역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 바람에 교회가 문을 닫은 적이 있다. “용산 복지 센터 3층에 교회를 열려고 합니다.” 김 목사 얼굴은 새로운 사역에 대한 기대감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