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영제국의 기초를 다진 여왕, 엘리자베스 1세... | 기본 카테고리 | 2009-09-09 17: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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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영토의 약 3분의 1을 지배했던 해가 지지않는 대영제국.
지금은 후발 주자인 미국에 왕좌를 넘겨 주었지만 아직도 옛 제국의 자취는 커먼웰스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그러한 영국의 기틀을 다진 왕은 16세기 말, 튜더 왕가 출신인 여왕 엘리자베스 1세였다.
하지만 그녀의 치세는 그다지 평화롭지 못했다.
왕위에 올랐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던 늘 프랑스나 신성 로마 제국, 스페인 같은 이웃 나라들의 왕족들로부터 집요한 청혼 요구에 시달렸다. 결혼을 안 했으니 자연히 아이도 없어 왕위를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가를 두고 고민이 많았다.
그녀의 사촌이자 적수인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은 자신의 아들에게 잉글랜드의 왕위를 물려주기 위해 음모를 꾸몄다가 투옥되고 끝내는 참수되고 만다.
왕위 계승 이외에도 국내의 종교적 문제도 심각했다. 엘리자베스의 아버지 헨리 8세가 아들을 낳지 못한 왕비 캐서린과 이혼을 하기 위해 새로 만들어낸 종교인 성공회와 기존의 카톨릭 교회 간에 벌어진 갈등은 거의 내전 수준이었다. 영화 본편에서는 엘리자베스 본인이 그런 종교적 갈등을 관대하게 포용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사실은 그녀의 치세 기간에도 카톨릭 교도들을 정치적 사건에 연루시켜 탄압하는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그녀의 이복 언니이자 전임 여왕인 메리가 성공회 교도들을 자주 사형시켜 피의 메리라고 불리었다면, 엘리자베스 본인 또한 종교 탄압에서는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을 차지하고라도 그녀의 시대에 벌어진 가장 큰 사건은 바로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가 보낸 무적함대와의 결전이리라.
사실, 엘리자베스 이전까지만해도 영국은 유럽에서 그다지 힘없던 2류 국가였다. 대륙에서는 프랑스와 스페인이 오랫동안 패권을 두고 다투었는데, 15세기 말 스페인이 이슬람 세력을 내몰고 신대륙 항로를 찾아내고 저 멀리 아즈텍과 잉카 제국마저 정복하면서 스페인의 위세는 절정에 달했다. 스페인의 정규 보병 부대인 테르시오는 결코 패하지 않는 무적의 군대로 불릴 정도였으니까.
더구나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대군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면서 스페인은 명실공히 유럽의 최강국으로 떠올랐던 상황이었다.
또한 스페인의 국왕 펠리페 2세는 카톨릭 교회의 수호자라 자처하며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던 종교 갈등에 적극적으로 끼어든 인물이었다. 이런 펠리페 2세에게 카톨릭을 탄압하고 아울러 자신과의 청혼마저 거절한 엘리자베스는 눈엣가시같이 괘씸한 존재였을 것이다.
처음에 펠리페 2세는 영국에 군대를 보내 엘리자베스를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에 메리 여왕을 앉힐 생각이었지만, 메리 여왕이 처형되자 대신 자신의 어린 딸을 영국 여왕에 앉히겠다고 계획을 바꿔 무적 함대를 출정시켰다.
비록 영국이 엘리자베스가 즉위한 이후, 해군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지만 스페인의 무적 함대에 비하면 형편없이 모자라는 전력이었다. 영국인 스스로도 무적함대와의 결전에서 영국이 승리한 것은 폭풍으로 인한 난기류 떄문이라고 할 정도이니까.
하지만 어쨌든 무적 함대는 영국 상륙은커녕, 폭풍에 휘말려 함대의 3분의 2가 난파당하고 대부분의 병력마저 잃은 참패를 맛보았다.
그리고 이 원정의 실패로 인해 스페인은 서서히 내리막길을 걷게 되고, 반면 영국은 국력을 증강시켜 세계의 바다로 진출해 대영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영화 본편의 내용은 대단히 훌륭했고, 감독의 추가 설명까지 자막에 포함되어 매우 충실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기대했던 전투신이 약 10분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다른 부분들이 워낙 좋아서 크게 문제삼고 싶지는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