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례사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입니다. 나는 차를 몰고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버스정류장 앞을 지나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세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한사람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할머니입니다. 그리고 또 한사람은 내가 전에 크게 은혜를 입었던 의삽니다. 또 한사람은 마음속에서 평생을 그려오던 이상형인 여자입니다.
그런데 이 세 사람 중에 한사람만 차에 태울 수 있습니다. 누굴 태우겠습니까? 누굴 태워야겠습니까?
그 답은 이 행사 마지막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오늘 이 경건하고, 아름다운 혼인식을 집전하게 되어 참으로 영광입니다.
신랑은 어머니를 뒷바라지 하고 있는 아들입니다.
굳이 이래라 저래라 할 필요 없이 인간으로서 참 교육을 받았다고 단언합니다. 이런 사람은 잘못될 리가 없습니다. 그 심성 또한 말할 것도 없습니다.
신부는 어떻습니까. 요즘, 처녀들의 얼굴은 성형외과에서 손을 봐서인지 비슷비슷합니다. 그런데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신부 김순진 양은 귀요미입니다
떠오르는 보름달 같고, 깍아 놓은 밤 같습니다.
얼마나 집안이 좋은지는, 이 귀티 배어나오는 얼굴에 다 써져 있습니다.
사람의 낯바닥을 왜 얼굴이라고 하겠습니까? 그건 그야말로 얼 즉 정신이 들어있다고 해서 얼굴입니다.
얼굴에는 그 사람의 영혼이, 사상이, 세상을 보는 눈이 다 들어있습니다. 신랑 신부의 얼굴이 이렇듯 밝고 아름다우니, 주례로서는 영광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한달 전에 신랑 신부가 서울로 찾아와서 주례를 서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이 신랑신부의 혼인식 주례를 맡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승낙하고, 상견례를 마친 다음, 실제로 주례를 서게 되니, 전라도 말로 참말로 오지고 또 오집니다.
주례사는 10분 이상 하면 효과가 반감된다고 헙디다. 주례 이야기가 신랑신부 귀에는 들어오지도 않는다고 하데요.
그렇지만 오늘 같이 기분 좋고 뜻 깊은 날, 작심하고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옛날 중국에 어떤 유명한 장군이 있었답니다.
그는 아무리 열악한 환경에서도 용감히 싸워, 그 장군의 이름만 들어도 적군은 도망가기 바쁠 정도로 맹장이었다네요.
3년여의 전쟁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장군에게 어떤 부자가 장군이 도자기를 좋아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전국에 몇 점 없는 아주 귀한 도자기를 선물했지요.
물론 그 장군은 그 도자기가 얼마나 귀한 도자기인줄 한눈에 알아봤답니다.
그는 도자기를 장롱 깊은 곳에 넣어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감상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그 친구는 장군이 귀한 도자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좀 보여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장군은 그 도자기를 자랑하고픈 마음도 있고, 친한 친구의 부탁도 있고 하여, 그 도자기를 구경하게 했습니다.
빼어난 도자기에 감탄했던 친구가 소문을 냈는지, 그 다음날부터 그 도자기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구경 왔던 사람이 도자기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도자기가 깨질 뻔 한 적도 있었답니다.
그때부터 장군에게 걱정거리가 생겼습니다. 구경하던 사람이 도자기를 깨뜨릴까봐, 노심초사하게 됐지요.
그러다보니 꿈속에서 도자기가 깨지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장군은 도자기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집을 떠나 있기도 했는데,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지요.
혹시 누가 도자기를 훔쳐 가면 어떡하나, 혹시 하인 놈이 도자기를 닦다가 흠을 내면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천하제일의 장군이 어느새 놀람증과 불안증 환자가 되어 잠도 푹 못자고, 제대로 먹지도 못해 쇠약해지기에 이르렀답니다.
그 결과, 호쾌하고 위풍당당하던 장군의 위용은 점점 사라지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동네 아저씨로 변해갔답니다.
어느 날 그런 자신의 변한 모습을 거울에 비춰본 장군은 자신의 모습에 깜짝 놀랐고, 그리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천군만마를 호령하던 사람이 이 무슨 꼴이냐 싶어 그 도자기를 들고, 처음 도자기를 주었던 부자에게 되돌려 주었습니다.
초췌해진 장군을 본 부자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도 장군과 똑 같은 일을 겪고서 그래도 천하가 알아주는 맹장인 장군만은 도자기를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그 도자기를 존경하는 장군에게 주고, 자기는 고통에서 벗어났다고요.
그래서 부자와 장군은 그들을 짓누르던 고통을 없애기 위해 그 도자기를 깨뜨려 없앴다네요.
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 모두는 앞서 말한 귀하디 귀한 천하일품의 도자기 하나쯤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그 도자기가 재물일 수도, 성공일 수도, 권력일 수도, 명예일 수도, 사랑일 수도, 이념일 수도, 종교일 수도 있지요.
사람에 따라 종류는 다르지만, 자기만의 귀중한 도자기를 누구나 적어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어떤 도자기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도자기가 나에게 기쁨을 주느냐, 고통을 주느냐 하는 겁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우연히 어떤 책에서 읽고 우리 모두는 그야말로“해바라기”라는 가수가 부른 노래 제목처럼, 내 마음의 보석 상자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의 보석상자가 무엇인지는 각자의 인생관, 세계관에 따라 다를 겁니다만, 혹시 그 보석상자 때문에 고통 받고 있지는 않는지 되돌아봐야겠습니다.
그 보석상자가 자신의 건강과 행복,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깨뜨린다면, 그 보석상자는 버리거나, 부셔야 버려야겠지요. 그런다고 하여 내 마음의 보석 상자를 두고 있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 보석상자가 행복을, 기쁨을, 건강을,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보석상자여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자, 영특하고 현명하고 아름다운 신랑과 신부는 이 주례가 이 말씀을 드리는 까닭을 알겠지요?
신부 김순진양의 마음속에는 임세진 군이 귀하디 귀한 도자기로 자리 잡고, 오승렬 군의 마음속에는 박주영양이 귀한 도자기로 자리 잡아한다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불행을, 불편을, 불쾌함을 주는 그런 도자기가 아니라 서로 상대에게 행복과 건강과 즐거움을 주는 그런 도자기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럴 자신이 있지요?
그런 행복과 건강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도자기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상대의 장점을 보고, 상대를 칭찬해야 한다는 겁니다. 제가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991년도 일이라고 기억하고 있는데, 일본 아오모리 현이 사과생산지로 유명하다네요. 그런데 9월이면 사과를 수확하여야 할 때인데, 갑자기 강력한 태풍이 밀어닥쳤습니다.
수확기를 앞두고 있는데, 태풍이 몰아쳐 사과들이 나무에서 거의 다 떨어졌답니다.
과수농민들은 과수원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보고 넋을 잃고, 하늘을 원망했답니다.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어떤 농부 한 사람은 자기 과수원의 사과가 다 떨어졌는데, 사과나무마다 몇 개씩은 떨어지지 않은 사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농민의 머리에 번쩍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는 다른 과수원에서 떨어지지 않은 사과들을 모두 샀습니다.
그리고 그 농민은 사과 하나하나를 따로 포장해서“떨어지지 않는 사과”라고 이름 붙이고, 시장에 내놨습니다.
그런데 입시철이 다가오자, 수험생을 둔 수많은 학부모들이, 학생들이, 그 사과를 너도 나도 사서 먹고, 선물했습니다.
떨어지지 않는 사과이니, 그걸 먹으면 입시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지요. 그 결과 농부는 떼돈을 벌었답니다.
이 사례가 무엇을 말합니까?
어떤 농민은 바닥에 떨어진 사과를 보고, 한탄하고 하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농민은 떨어진 사과를 본 것이 아니라, 떨어지지 않는 사과에서 희망을 봤습니다.
같은 일이 벌어졌는데, 어떤 농부는 절망의 사과를 봤지만, 어떤 농부는 희망의 사과를 봤습니다.
동일한 한 가지 일을 두고, 희망을 찾아내는 자세, 그리고 흠 많은 사람에게서 장점을 찾는 자세, 그게 바로 긍정적인 사고방식입니다.
단점만, 흠만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신랑, 신부 참 잘 생기고 아름답습니다. 배운 것도 많습니다. 좋은 회사에 근무하여 전도양양합니다.
그렇지만 장점만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단점 보다는 장점을 보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대해서 칭찬을 아끼지 마십시오. 그것이 바로 결혼생활을 성공으로 이끄는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미당 서정주 선생님께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울었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으며, 간밤엔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이 그럴진데 만물의 영장인 인간, 그것도 살아온 삶의 길이 다른 두 사람이 이제 한 가정 이루고 백년해로하였다가, 죽어 한 구덩이에 묻혀 도솔천의 하늘을 흰구름으로 날겠다는데, 얼마나 두껍고도 두꺼운 숙세의 인연이겠습니까? 그 인연 정말 소중하게 여기고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처음 이야기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차를 운전하는 나는 자동차 키를 의사에게 줍니다. 그리고 의사로 하여금 목숨이 경각에 달린 할머니를 태우고, 병원으로 가도록 합니다.
그리고 나는 폭풍우 몰아치는 밤, 버스정류장에서 평생 바라왔던 이상형의 사람과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겁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자기를 버리라는 겁니다. 자기를 버리면 비록 폭풍우 몰아치는 밤이지만 이상형인 사람과 오랜 시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두 분 꼭 자신을 버리고 당신를 공경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길 다시 진심으로 빕니다.
주례로서 장황한, 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세번째 주례를 서면서 했던 주례사|작성자 봉곡야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