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욱 변호사는 '간첩 전문 변호사'로 통한다. 일심회 사건, 왕재산 사건부터 여간첩 이모 씨 사건, 최근 각각 2심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유우성 사건, 홍모 씨 사건까지 굵직한 간첩 사건마다 그는 변호인 명단에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장 변호사는 대형 간첩 사건들이 모두 국정원과 검찰이 기획한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입증하듯, 유우성 사건에서는 검찰이 법정에 제출한 증거들이 줄줄이 조작인 것으로 들통 나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국정원과 검찰, 보수 언론은 그를 '친북·종북 변호사'로 부른다. 제 입으로 술술 간첩 사실을 불던 피고인들이 장 변호사만 만나면 제 혐의를 부인한다는 것이다. 또 항상 피고인에게 묵비권(진술거부권)을 종용해 수사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검찰은 결국 지난달 말 '위증교사'를 이유로 대한변호사협회에 장 변호사에 대한 징계를 신청했다. 장 변호사와 함께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에서 활동하는 김인숙 변호사도 '묵비권 종용'을 이유로 징계 신청 대상에 올랐다.
그 후 며칠 뒤인 지난 7일, 대법원은 민변 변호사들에 대한 징계를 신청한 검찰을 머쓱하게 하는 판결을 내놨다. 장 변호사가 2006년 일심회 사건 당시 피고인에게 진술거부권을 권유해 국정원 조사실에서 쫓겨나 정당한 변론권을 침해받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고, 법원은 장 변호사의 손을 들어준 것. 진술거부권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입장이 다르다는 얘기다.(☞관련기사 : 대법 "피의자에게 묵비권 조언한 변호사 쫓아내면 불법")
장 변호사는 강압 수사 가운데서 나오는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이 혐의를 입증할 증거로 채택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나 간첩 사건처럼 무죄를 다투는 경우 진술거부권은 꼭 필요한 피고인의 권리라고 했다. 아울러 "진술 거부를 권유하는 것 또한 피고인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변호인으로서 정당한 권리"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자신이 '종북 변호사'로 낙인 찍힌 데 대해 "공안 문제에 이의를 제기하면 사람들은 왕따 수준을 넘어 공포심 느낄 정도로 폭력적으로 대한다"며 "우리 모두 국가보안법 피해자"이라고 했다. 그는 유우성에 대한 국가의 '간첩 조작극' 전말을 밝혀냈듯 앞으로도 계속 국가 폭력에 저항해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 10일, 그가 근무하는 법무법인 상록 사무실 인근인 서울 서초구 한 찻집에서 진행됐다. 편집자.
"어두운 전등, 보안 검색에 메모 금지…변호사도 '공포'"
프레시안 : 승소 축하한다. 국가를 상대로 한 민사 소송이었으니 고생이 많았을 것 같다.
장경욱 : 강제퇴거를 당했을 때 내가 맡은 일심회 사건이 2006년이었고, 3년 뒤인 2009년 소멸시효를 불과 며칠 앞두고서야 소송을 제기했다. 5년이 지났다. 재판부가 다행히 내 손을 들어준 셈이지만, 그 동안은 힘들었다.
소송 쟁점이 피의자 또는 피고인 신문 시 변호인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변호인참여권'이었다. 내가 소송을 낸 게 2006년인데, 형사소송법에 변호인참여권 내용이 2007년에 처음으로 들어갔다. 변호인참여권을 부당하게 침해당할 경우 준항고(법관이 행한 일정한 재판,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이 행한 일정한 처분 등에 대하여 법원에 제기하는 불복신청. 편집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전에는 변호인접견권만 있었다. 대법원에서 준항고 거쳐서 변호인참여권을 처음 인정한 게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었다. 2004년 1심, 2심에선 변호인참여권을 인정하지 않다가 2008년 대법원 판결에서 국정원 직원들의 고의과실을 인정했고, 그 후 대검찰청에서 변호인참여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다.
대검 규정을 살펴보면, 변호인은 피의자 대각선에 앉아야 한다거나, 수사 기밀 누설 우려가 있어 메모는 금지한다는 등 내용이 있다. 피의자랑 차도 같이 못 타게 한다. 그런데 조사를 받는 사람은 차에 따로 타는 것 자체도 불안할 수도 있다. 내가 검찰 측에 문제를 제기했더니 '예우상 변호사분들 차는 따로 마련했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을 하더라. 국정원 출입할 때도 보안 검색을 받으라고 한다. 피의자 방어권을 행사하러 왔으면 당연히 그냥 들어가야 하는 것 아닌가. 다 변호권을 침해하는 일들이다.
내가 변론권 침해로 소송을 제기한 게 2006년 일심회 사건 당시의 일이다. 조사 때 자리 문제나 메모 문제로는 수사관들과 크게 시비 붙지 않았다. 꾹 참았다. 그러다가 내가 '진술거부권 행사하시죠' 했더니 수사관들이 나더러 나가라고 하더라. 내부 상황이 녹화되어서 수사관들이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는데, (강제 퇴거) 지침을 받은 수사관이 나를 끌어냈다. 나는 왜 나가야 하느냐고 이유를 밝히라고, 내가 나가면 대체변호사라도 있어야 한다고 악을 썼다.
변호사들이 저항해야 한다. 변호사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얘기라 민망하지만, 대부분 변호사들은 저항할 줄 모른다. 자꾸 제한을 받으니 변호사들도 위축되는 것이다. 국정원 출입할 때 나는 '변호인은 보안 검색 안 받는 것'이라고 하고 피의자를 데리고 나와 버린다. 어떤 변호인은 안내받은 대로 보안 검색을 다 하고 들어간다. 이미 검색 마친 피의자들은 변호인 기다리는 게 아니라 국정원 직원이 시키는 대로 먼저 차에 타거나, 조사실에 가서 앉아서 기다리는 거다. 그러다가 국정원 직원들이 '조사받겠습니까' 하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네' 하고 변호인도 없이 조사받는다. 우습지 않나.
조사 내내 피의자들은 공포감을 느낀다. 차에 탈 때 밖을 못 보게 가림막을 친다든가, 조사실에 들어가면 피의자에게 각서를 쓰게 한다든가. 또 조명을 어둡게 하고, 조사실에서도 키 큰 사람들이 서성이게 한다. 공포를 주기 위한 효과다. 수사관들이 수사받다가 잠깐 자라고 해도 못 자고 바들바들 떠는 사람들이 많다. 신경쇠약에 걸린 것이다. 그럴 때 변호사들이 용기를 줘야 한다. 그런데 많은 변호사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조사실에 같이 들어갔다가 바쁘다고 그냥 나가기도 한다. 그러다 피의자가 혼자 있는 사이 꼬투리를 잡히는 거다.
프레시안 : 대부분의 변호사가 수사기관에 맞서서 피의자의 권리를 지켜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변호사로서 직무유기 아닌가.
장경욱 : 맞다. 참 나쁜 변호사다. 싸울 건데도 안 싸운다. 보통은 지레 겁부터 먹는다. 후배 변호사 한 명도 조사실에서 메모를 하다가, 조사관이 '대검 지침'을 들이대자 자진해서 메모를 반납한 적이 있다. 그러니 준항고를 해도 진다. 대검 지침이 법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워낙 오랫동안 겁을 먹어왔으니, 변호사도 이상 행동을 한다.
▲북한 보위사령부 직파 간첩 혐의로 기소된 홍모 씨 사건이 국정원과 검찰의 조작 사건이라며 기자회견을 연 민변 변호인단. 오른쪽이 장경욱 변호사. ⓒ연합뉴스
"진술거부권, 형사소송법이 보장하는 권리"
프레시안 : 검찰, 국정원에서는 민변 변호사들이 문제라고 한다. 특히 장 변호사는 '종북' 혹은 '친북' 변호사라고 한다. 간첩 사건을 무조건 '조작'으로 단정 짓는다는 것이다.
장경욱 : 10년째 같은 얘기를 듣고 있다. 민변을 비판하는 쪽에선 레퍼토리가 늘 똑같다. 민변 변호사들에게 위증교사 혐의를 씌운다. 간첩 조작? 맞다. 지금까지 검찰이 간첩이라고 한 사람들, 내가 봤을 땐 가짜 간첩이다. 이미 유우성 사건에서도 국정원과 검찰의 만행이 만천하에 드러났지 않나. 그런데도 검찰이나 국정원은 반성하는 게 아니라 판사가 공안 사건 전문성이 부족하다거나, 종북 판사나 친북 변호사가 문제라고 책임을 전가한다. 무죄가 나온 이유를 이념적으로 덧칠하는 거다.
국정원이 간첩을 만드는 방식은 늘 똑같다. 당사자나 참고인 자백을 증거로 내세운다. 독방에서 몇 날 며칠 수사관한테 시달린 피의자가 뭔가 잘못 말하면 그걸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나는 항상 피의자들에게 조사를 받을 때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라고 한다. 당연한 권리니까. 그리고 법정에서 증거관계를 살피는 것은 형사소송법이 지향하는 바이기도 하다.
자백을 받아내려면 강압 수사가 되기 마련이다. 당사자의 방어권보다는 수사기관의 반인권적인 행태가 우선되는 게 사법체계 안에서 관행이 된다. 그런 수사 관행이 있으면 우리 사회에서 억울한 일이 많이 생길 것이다. 누가 허위자백을 해도 검사가 쉽게 믿어버리고, 증거를 더 찾지도 않는다. 이렇게 해선 형사사법의 수준이 올라갈 수가 없다. 과학적인 수사 기법으로 증거를 수집하는 데 열을 올려야지, 지금은 자백만 내세울 시대가 아니다. 모든 경우에 진술거부권을 권유하진 않는다. 그러나 시국사건과 같이 무죄를 다투는 경우 나는 진술을 거부하라고 한다.
프레시안 : 장 변호사 사건 승소를 계기로 진술거부권의 의미에 대해 알려질 것 같다. 진술을 거부하는 게 당연한 권리인 것은 맞다. 그런데 진술을 거부하면 '뭔가 찔리니까 그런 것 아니냐'라면서 삐딱하게 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장경욱 : 진술거부권을 행사해도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형사소송법에 나오는 내용이다. 일체의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이는 언제든지 행사할 수 있는 권리라는 걸 알아야 한다.
▲지난 4월 항소심에서 국가보안법 무죄 판결을 받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피고인 유우성 씨. ⓒ프레시안(서어리)
"우리는 모두 국보법 피해자다"
프레시안 : 올 초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유우성 사건이 결국 국정원과 검찰의 '조작극'이었던 것으로 재판을 통해 밝혀졌다. 그럼에도 검찰이 간첩이라고 지목하면, 일단 의심부터 드는 게 사실이다.
장경욱 : 그게 무서운 거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우리나라에 간첩이 2만 명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 대고 아니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 내가 간첩 사건이 다 조작됐다고 해도 사람들은 '네가 진짜 간첩을 만나봤느냐'고 물어본다. 그럼 나는 거꾸로 묻는다. '간첩 2만 명'이 진실이라고 통용되는 데 대해 절대적으로 확신하는지. 그리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는 왕따 수준을 넘어 공포심 느낄 정도로 폭력적으로 대하는 게 제대로 된 사회인건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민주주의 기본도 안되어 있단 얘기다.
후배 변호사가 북 직파 간첩 혐의로 기소됐다가 최근에 무죄 판결을 받은 홍모 씨를 처음 접견한 다음 내게 한 말이 '너무 간첩 같아서 무서워서 못 하겠다'였었다. 간첩 사건 맡게 해달라고, 열심히 하고 싶다고 하더니, 막상 접견을 해보곤 못 하겠다고 했다. 변호사들도 쉽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 하고 겁을 먹는다. 결국 우리의 문제다. 항상 불안이 내재돼있기 때문에 사물을, 상황을 제대로 못 본다. 인식하는 이가 많지 않겠지만, 우리는 모두 국보법 피해자다.
프레시안 : 분단 상황에서는 공포 심리를 극복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장경욱 :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우리 사회가 민주화됐다고, 어느 정도 공포감을 극복했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더 견제력을 상실한 측면도 있다. 서해북방한계선(NLL) 문제에 대해 대통령도 제대로 얘기 못하는 나라다. 한 번도 그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본 적이 없었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니 국보법이 사문화됐단 얘기가 나오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 사람들이 크고 어두운 구조를 정면으로 보기보다 피상적으로 드러난 것만 본다는 얘기로 이해하면 되나.
장경욱 : 사람들은 흔히 야당이 집권하면 자연히 국보법이 폐지될 거라고 생각한다. 유우성 사건을 보고도 'DJ-노무현 때는 안 그랬는데, 지금 이런 일이 터진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조작 간첩은 순식간에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정교하게 기획된다. 늘 그래 왔다. 한 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그보다 더 큰 구조의 문제다.
프레시안 : 그런 거대한 구조를 어떻게 바꿀 수 있나.
장경욱 : 유우성 사건 하나 밝혀진 것만으로도 분단 이후 이어진 국가 지배체제가 근본부터 흔들거린다. 거대하고 튼튼해 보이지만, 사실은 몇 사람만 목숨 걸고 뛰어들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체제다. 이런 상황에서 내게 징계를 한 건 한 마디로 마지막 발악이다.
사실 '유우성 사건 무죄 판결'은 하나의 현상이다. 사회에 쌓여온 많은 노력들이 모여 무죄의 계기를 만든 것이다. 무죄 판결을 받은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끊임없이 싸운 결과다. 사람을 모으고 저항해야 한다.
"국가폭력 피해자 지원 위한 사단법인 '민들레' 설립 준비 중"
프레시안 : 장 변호사가 목숨 걸고 앞장서겠다는 건가(웃음).
장경욱 : 내 입으론 말 못하겠다. 다만, 지금이 진실이 거짓에 겁을 낼 필요는 없다는 교훈을 자식한테 물려줄 절호의 기회라는 건 분명하다.
이와 관련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있다. 같은 민변 소속인 김인숙 변호사와 양승봉 변호사 그리고 김정욱 신부 등과 함께 국가폭력 피해자 지원 기금 마련을 위해 사단법인 '민들레'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기금 성격이 크게 네 가지로 나뉠 것 같다. 탈북간첩조작사건 피해자 같은 이들을 위한 법률지원기금, 피해자들의 국내 정착을 위한 자립기금, 또 시국사건 외 국가 폭력에 시달리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 기금, 그리고 국가폭력예방사업을 위한 지원 기금. 많은 분들이 이 기금 설립에 관심을 가져주시면 국가 폭력을 추방하고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다. 내가 후배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긴 터널도 끝이 있고, 그 끝엔 빛이 있다고, 멈추지만 않으면 빛을 볼 수 있다고. 거친 들판에서도 홀씨를 날리는 민들레처럼, 우리도 힘들지만 멈추지 말고 계속 걸어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