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24 12:53
http://blog.naver.com/ehshe/120192700046
안녕하세요 부자되는 에포틀리스의 신태순입니다.
내일이면 6월 25일 625한국전쟁의 날이네요.
지금은 평화가 오래되다보니 625한국전쟁이라는 단어에 민감한 사람은 거의 없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세대는 전쟁의 무서움을 잘 알고계실것입니다.
사실 북한에서 이런저런 일로 꼬투리를 잡아 남북관계를 경색시키거나
천안함사태등이 발생해도 그때뿐이며 대다수 국민들은 이제 이러한 일들을 자신들의 일로 느끼지는 않는것 같아요.
경계가 느슨해지고, 걱정하지 않아도될것 같을때 일은 터지게 마련입니다.
참혹했던 625한국전쟁을 직접 겪었던분들은 그 비참함을 잘 아실것입니다.
하지만 겪지 못해본 사람들은 625한국전쟁은 그저 역사속의 전쟁이야기일뿐이죠..
오늘은 결코 잊어선 안될 625한국전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625한국전쟁의 배경
6.25전쟁은 우리 민족이 서로 총을 겨눈 슬픈 전쟁입니다.
다른 말로 ‘한국전쟁’이라고도불리죠.
남한과 북한이 서로 대립되는 사회이념 문제로 인해서 일어난 전쟁을 말합니다.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해방되었다고 기뻐하던 것도 잠시
불과 5년 만에 3.8도선을경계로 한반도에는 두 개의 국가가 세워지게 됩니다
그게 바로 남한과 북한인데요.
625한국전쟁의 가장 근본적인 발생원인은 한반도의 분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열망이었던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이었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오랜 식민생활로 인해
홀로 자립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때 아시아에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하고 싶은 강대국들이 등장합니다. 바로 미국과 소련이에요
미국과 소련은 우리나라를 지원한다는 명분으로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분할 통치를 시작하게 되는데요.
결국 북한은 소련의 공산주의, 남한은 미국의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각각 다른 정부가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분할 통치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과 소련간의 이념 대립이 격화되면서 한반도의 분단은 고착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북한이 공산주의의 무력통일을 위해
불법으로 남한을 침범함으로써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6.25전쟁은 우리 민족간의 전쟁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강대국들의 이념 대립이
원인이 되었던 가슴 아픈 전쟁이죠..
한 나라의 자치력이 나라의 존망과 직결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게 한 전쟁이었습니다.
◆ 625한국전쟁의 결과
6.25전쟁은 1950년 6.25일 새벽 4시경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어 1953년 7.27일 휴전협정까지
무려 3년 1개월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치뤄졌습니다.
휴전협정이 맺어진 후, 전쟁은 중단되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남북한 모두
엄청나게 큰 피해를 입고 말았죠..
6.25전쟁은 민간인들의 피해가 가장 큰 전쟁이었는데요. 그 결과는 너무도 참혹했습니다.
인명피해만 하더라도 민간인들을 포함하여 약 45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망자 수가 발생했고,
산업시설의 43%와 주택의 33%가 완전히 파괴되어 전 국토가 초토화가 되었습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해 10만 명의 고아와 1천만 명의 이산가족이 발생하였습니다.
결국 남북한 모두 심각한 인명피해와 경제피해를 입어 경제력은 바닥을 치고
온 국민이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는 처참한 결과를 불러오게 되었죠..
하지만 625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가장 큰 아픔과 슬픔은
한민족인 우리나라가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어지게 되었단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서 남한과 북한은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가 되고 말았는데요.
남한과 북한이 좋은 관계로 회복하고 통일이 되어 다시 예전처럼
한 민족, 한 국가가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랄뿐입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픔의 역사, 동족상잔의 비극은 결코 잊을 수 없겠죠..
그것도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어진 38선을 놓고 아버지와 아들이 남편과 아내가
혹은 형제간에 70년이 넘도록 철천지원수가 되어 살아오는 데 625한국전쟁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그 비극의 역사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진실을 밝히고 똑똑히 알고 기억해야 합니다.
결코..625한국전쟁에 대해서 우리는 잊어선 안됩니다.
63년 전, 잊을 수 없는 동족상잔의 비극... 전 후 세대들은 알기나 할까요?
국군 약 62만 명, 북한군 약 64만 명이 전사를 하거나 부상, 실종, 포로가 됐던 전쟁
민간인도 남한의 약 99만 명, 북한 약 150만 명 등 총249만여 명이 사망, 학살, 부상, 납치, 실종되었습니다.
또한 30여만 명에 달하는 여인들이 남편을, 10여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부모를 잃었구요..
6·25로 인한 물질적 피해도 서울에서만 10여만 채 이상
전국적으로는 60여만 채의 주택이 파손되었고, 4,000여 곳의 학교시설이 파괴되었습니다.
또 한반도 철도시설의 약 75%, 탄광시설의 약 50%, 그리고 공업시설의 약 45%가 파괴되었습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많은 이들이 배고픔과 가난으로 고통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아내와 남편이 형제들이 원수가 되어 산 60여년의 세월은 또 어찌할까요..
전쟁발발 63주년을 맞았지만 아도 화훼와 신뢰는커녕 정전협정까지 폐기한 긴장과
불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게 우리의 현실인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625한국전쟁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요.
우리 민족의 아픈역사..역사를 바로 알고 결코 잊어선 안될 625한국전쟁
하루만이라도 나라를 끝까지 지켜주신분들에 대한 감사와 묵념하는 소중한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