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에 대한 자료

바벨론에 대한 자료

복음제일교회 0 1,577 2021.01.28 10:52


 아래 글들을 모아 보면 어느 정도 나올 듯합니다.

 

 

 

 

 

 

<늘푸른나무/김상신의 '고대문명의 발자취를 따라/2011년7월>

메소포타미아의 바벨론

바벨론은 비교적 친숙한 이름의 고대문명의 하나입니다. 구약의 다니엘서에 나오는 느부갓네살왕과 다니엘의 이야기가 바로 바벨론제국의 이야기이며 그보다 훨씬 전 창세기 10장과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에 관한 이야기 역시 바벨론으로 알려진 스날(Shinar)인들의 이야기로 메소포타미아에 자리했던 바벨론 문화는 분명 오랜 역사를 가진 문명으로 널리 인식되어 왔습니다.

 

 

한편 고대 희랍인들 역시 ‘세계 7대 불가사이’의 하나로 유브라데 강변에 만들어진 바벨론의 ‘The Hanging Garden’을 들었고 기원전 450년 경 여행을 무척 즐겼던 희랍의 역사가 헤로도트스(Herodotus, c.484-425 BC)는 자신이 직접 시리아의 산과 사막을 건너 유브라데스 강을 따라 걷다가 본 바벨론의 장관을 기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네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가 달릴수 있는 넓이의 성곽이 53 마일 이상 도시를 둘러싸고 있었다고 기록하였습니다.

 

‘위대한 바벨론’이라는 희랍인들의 평가나 ‘매춘부의 어미요 세상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죄악의 도시’라는 신약성서의 평가가 엇갈리지만 분명 거대한 문명이 기원전 5,6세기에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인듯한데 같은 시대의 로마나 희랍의 문명과는 달리 기록만 전해질뿐 1899년 독일의 고고학자 Robert Koldway가 이끄는 발굴단이 바벨론을 발굴하기 까지는 바벨론에 관한 것들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티그리스 강과 유브라데스의 비옥한 흙들이 덮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들판에서 흙을 햇볕에 말려 만든 벽돌로 지은 신전과 궁전과 주택들을 찾아 내어 발굴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헤로도토스가 보고 놀랐던 거대하고 높은 성벽이 모습을 들어내면서 2000여년 동안 죽어있던 도시가 모습을 들어내고 발굴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벽돌과 벽 등 여러곳에 새겨져 있는 앗시리아의 설형문자들을 해독하게 되면서 역사가 밝혀지게 되었습니다.

 

(*19세기 말 앗시리아의 설형문자 발견과 함께 시작된 앗시리아 문자 해독작업은 1921년 제임스 해어헨리 브리스티드 박사의 제안으로 시카고대학에서 ‘앗시리아사전’을 편찬하기로 하고 90년 동안 88명의 연구진이 이 작업에 매달려 2천여년 동안 사용되지 않던 고대 설형문자 2만 8천 단어가 수록된 메소포타미아 시대에 관한 백과사전 형식의 사전을 출간하였다고 지난 2011년 6월 9일 발표하였습니다. 21권으로 된 이 사전이 널리 보급되면 인류 최초의 문명 발생시기인 메소포타미아 시대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더 많이 알려질 것입니다.)

이 발굴을 통해서 발굴된 느부갔네살 시대의 궁전과 성곽은 바벨론 후기의 것이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남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BC 6000년 경에 이미 강을 끼고 사람들이 정착하였으며 3,500년 경에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을 끼고 티그리스 강 남부 하류쪽에는 수사가, 유브라데스 강 남쪽으로는 우룩과 우르가 도시들 가운데서도 두각을 나타냈는데 BC 3300년 경에 설형문자가 만들어졌고 BC 2350년에는 아카드 왕이 수메르를 정복하였지만 BC 2200년에는 우르가 이 지역의 맹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BC 2000년경에는 우르가 엘람과 아모레 족들에게 정복되고 수메르 문명은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이때 좀더 북쪽에 위치한 바벨론 일대에서는 BC 4000년경부터 주민들이 정착하여 살았고 BC 2350년 경에는 아카드의 왕이 수메르를 정복하였으나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BC 1894년에 아말렉 왕이 바벨론 제국을 세웠고 BC 1792년에는 하무라비 왕(c 1792-1750 BC)이 수메르와 아카다를 정복하고 제도와 법전을 정비하는 한편 말둑(Marduk)신을 바벨론의 수호신으로 정하면서 바벨론이 융성하였으나 BC 1595년경 히티티 족들이 침략하여 400여년을 지배하였습니다. 그 후 BC 1158년경부터 계속 엘람, 아말렉, 아시리안 등의 침공을 받았으며 BC 689년경에는 앗시리아 왕이 바벨론을 침략하여 두번이나 함락하였습니다.

 

그러나 갈대아의 장관 나보포라싸(Nabopolassar)가 BC 625에 앗수르를 몰아내고 BC 612에는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까지 함락시키면서 한때 새로운 바벨론을 재건, 그의 대를 이은 것이 아들 느브갓네살 2세입니다(Nebuchadnezzar, c. 605-562 BC). 다니엘서에 나오는 왕으로 유브라데스 강 동쪽 연안을 따라 2중 성벽을 쌓고 자신이 이상하는 당시 세계 제1의 도시(주민이 20여 만명이었다고 함)를 만들었으며 전성기에 그는 앗시리아, 시리아, 팔레스틴 그리고 에짚트의 일부까지도 정복하였고 다니엘서에 나오는대로 586 BC에는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5000여명의 히브인들을 바벨론으로 강제로 이주시켰는데 우리들은 그것을 바벨론 유수(Babylon Captivity)라고 부릅니다.

 

 

발굴을 통해 왕궁은 아버지 때에 이미 건축되었으나 느부갓네살 때에 확장하였고 그가 만든 이중성곽은 22미터 높이에 하나는 6.5미터 넓이이고 또 하나는 3미터 넓이라는 사실등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리고 궁전의 정문은 사랑과 전쟁의 여신인 Ishtar에게 바쳐졌고 도시로 들어가는 8개의 문들은 각기 다른 8개의 신들이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궁전에서는 바벨론의 수호신인 말둑(Marduk) 신전으로 가는 길이 닦여져 있는데 그것 역시 느북갓네살 왕이 지은것으로 사각형 성채 한 가운데 정원이 있고 말둑신의 성소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데 성소안에는 말둑신의 조각상과 왕관을 보관하는 방들과 함께 제신들과의 결혼을 상징하는 침대가 놓인 방도 있었다고 합니다.

 

말둑신전 옆에는 높은 탑이라고 할까, 아니면 고대의 신전(ziggurat)이라고 할 독립된 조형물이 있었는데 그것은 느부갔네살 때보다 수백년 전에 만든것으로 전혀 수리되지 않은채 방치되어 있어서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수 있도록’ 재건하도록 느부갓네살 왕이 지시하였다고 합니다. 이 탑은 네모의 받침대 위에 피라밋과 같은 형태로 90미터 높이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기원전 1세기의 시실리의 역사가 디오도로스(Diodorus)에 의하면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갈데아 점성가들이 별을 관찰하던 탑이었다고 하고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탑의 꼭대기에 침대와 금상(金床)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들의 성교(聖交)를 위한 곳이였다고 합니다만 프랑스의 고고학자 앙드레 페로(Andre Parrot)에 의하면 야곱이 꿈에 지상에서 하늘문까지 이르는 사다리를 보았드시 바벨론 사람들은 지상의 신전과 하늘문 사이에서 휴식하는 공간으로 탑을 생각하였다고 풀이하기도 합니다.이 탑은 알렉산더 대왕때 다시 짓기 위하여 일단 허물었으나 다시 짓지를 못하고 빈터만 발견되었는데 그 때문에 상상으로 그린 바벨탑 그림들이 많이 그려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탑이 바로 창세기 10장과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의 소울스라고 생각들 합니다. 창세기 10장 5장에는 이미 언어가 나뉜것으로 기술하였는데 11장 1-9절에 바벨탑 기사가 나타난 것은 바벨론 탑의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은 창세기 저자의 삽입과 해석으로 보고 있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하늘을 너무 영적으로, 신비적인 것으로 숭상하지는 않았던듯 합니다. 그들은 이미 별자리를 그리고, 항성의 운행에 관하여 연구하엿으며 일식과 월식 날자를 예측하고 점성술로 자신들의 운명을 예측하여 미리 변화시키려는 시도도 하였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특히 여행을 좋아하는 장사꾼들로 아라비아, 인도, 시리아, 페르시아 까지도 다니면서 무역을 하였던듯 합니다.

 

느부갓네살은 황후 Amyitis를 위하여 유브라데스 강변에 ‘고대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The Hanging Garden’을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만 당대의 기록에서는 그에 관한것을 찾아 볼수가 없다고 합니다.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에 그러한 인조 정원이 있었는데 그것이 잘못 바벨론에 있다고 와전된 것인지 아니면 아직도 그 자리를 찾지 못한 것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559 BC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숭배하던 달신(月神) Sin의 여사제의 아들 나보니두스 (Nabonidus)가 느부갓네살의 뒤를 이어 왕이 되면서 바벨론의 말둑신 보다도 우르와 시리아 등지에서 성행하는 ‘달신’을 더 우대하여 나라가 분열되었고 융성하던 新 바벨론이 갑자기 쇠퇴하여 갔습니다. 거기에다 바벨론 사람들은 자신의 왕보다 메데와 파사의 왕 사이러스를 더 좋아하게 되자 바벨론의 벨사살 왕이 연회를 하는 동안 사이러스는 군대를 이끌고 바벨론을 점령하고 맙니다. 다니엘 서에 나오는 사람의 손이 나타나서 궁전의 벽에 ‘mene, mene, tekel, upharsin’(너의 나라는 분열 될것이며, 메데와 파사에 넘겨주리라)라고 썼다는 기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이러스는 자신이 바벨론의 말둑신을 경배하고 그곳에 잡혀온 유대인들을 석방하였으나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완전 장악하지 못한 가운데 2세기 후 알렉산더 대왕이 중동지역에 제국을 건설하면서 옛 바벨론의 영광을 재건하려는 대망을 품었었으나 그의 죽음으로 허사가 되었고 바벨론 주민들은 약탈을 피해 바벨론을 떠남으로 결국 BC 275년에는 바벨론이란 이름은 사라지고 2000여 년 동안 방치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수메르 문명이 쇠약해진 BC 2000여 년경부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대를 계승하여 제2기를 이끌어 간 것이 바벨론 문명이라고 할 수 있으나 흥망성쇠를 거치면서 그 절정은 너무나 짧았고 그 결과는 너무나 허무하였습니다.

 

 

이하 kcm 자료임

바벨론(Babylon)


뜻:혼란케 하다
국명 겸 도시의 이름으로 로마인들이 부르던 갈대아 인의 영토(렘24:5, 25:2, 겔12:13).

(1) 함의 손자 니므릇이 건설한 나라로서 시날 평원인듯하다(창10:10,11:2).

(2) 느부갓네살 왕때에 국력이 강성하여 유대국을 멸하고 국민을 포로로 잡아갔다(왕하25:8-12).

(3) 다니엘과 세 청년이 그때에 왕궁에서 시종하였다(단1:7).

* 국토는 장360마일, 광90마일의 대평원으로 동은 티그리스강, 서는 아라 비아 사막, 남은 페르샤 바다 북은 앗수르국으로 땅이 비옥하고 기후가 열대성에 속하여 1년2회 수확을 한다.
바벨론성은 주위 54마일, 높이 300 척,폭75척, 성곽은 2중, 성문은 100개인데 모두 구리로 만들었다.
홍수후에 쌓은 바벨탑이 이곳에 있다.


 

바벨론 성 발굴
신바빌로니아의 수도인 바벨론 성이 현대 이라크 수도인 바그다드 남쪽 60마일 지점에서 발굴되었다.

1899년부터 1917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20년간 로버트 콜더베이(Robert Koldewey)교수는 독일 동방학회의 사업으로 바벨론 성을 발굴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사 13:20-21, 14:1; 렘 51:37) 지금은 폐허로 남아 있다. "오직 들짐승이 거기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 가옥에 충만하며 타조가 거기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서 뛸 것이며 그 궁성에는 시랑이 부르짖을 것이요 화려한 전에는 들개가 울 것이라"(사 13:21, 22)

 

발굴 결과 바벨론 성의 규모는 내외 전장(全長)이 15마일 정도이고, 느부갓네살 이후의 전 도성의 둘레는 하궁에서 옛 왕궁까지 유프라테스강 전면을 포함해서 10마일 정도였다. 강 동편의 내성을 두른 2중 성벽은 바깥 것이 22피트, 안의 것은 12피트였다. 바벨론 전 성읍을 바깥으로 두른 성벽 역시 2중 성벽인데 바깥 것은 26피트, 안의 것은 24피트였다. 폐허 중에 제일 높은 부분이 이슈타 게이트로서 48피트 가량이다. 본래 성안에서 제일 높은 건축물은 300피트 가량의 신전 탑 '에테메난키'(Etemenanki)였다.

 

그 폐허에서는 느부갓네살의 이름과 직위가 찍혀진 평방 12인치 반의 벽돌이 발굴되었다. 가장 높은 건물은 주문(主門)인 이슈타 게이트인데 그 성문의 벽돌에는 바벨론을 상징하는 용의 머리, 사자의 몸, 독수리 뒷 발톱을 가진 복합 짐승이 문각되어 있어 다니엘 7장의 표상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다니엘의 세 동무가 던져졌던 풀무는 벽돌 굽는 가마였다. 원추형으로 생긴 이 가마속에 진튊 벽돌을 쌓고 원유와 짚 또는 겨를 섞어 연료로 사용했다. 다니엘 3장에서 분노한 왕이 7배나 뜨겁게 하라던 것은 원유가 섞인 연료를 7배만 더 넣으면 된다. 또 우상이 세워졌던 '두라 평지'(단 3:1)는 지금의 힐라 언덕 5마일 아래에서 유프라테스 강으로 들어가는 한 지류의 입구에 있는 '나르 두라'(Nahr Dura)이다.

 

다니엘 6장의 사자굴은 고대 제국의 왕들이 스포츠로 사자 사냥을 위하여 사자를 가둬 두었던 곳이다. 이와 같은 사자굴은 앗시리아 여러 곳에서 발굴되었다. 사자굴을 인봉할 때는 그 입구를 돌로 맞고 그 둘레를 젖은 석회로 바른 뒤 원통 모양으로 문각된 도장을 굴려서 직사각형의 인상(印象)을 남겨 아무도 뜯지 못하게 했다.

다니엘 5장에서 벨사살이 마지막 잔치를 했던 큰 홀은 느부갓네살이 지은 남궁에 있다. 그곳 중앙에는 보좌가 있는 넓은 방이 있는데 길이가 173피트, 넓이 57피트, 높이 66피트이다

(신계훈, 조대연, 고고학과 성서 배경, 134-14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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