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에서 "종전(the end of the war)"라는 말이 나왔다. 트럼프가 공개적으로 평화협정과 맥락이 닿아 있는 '종전'을 언급한 것은 취임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17일 일본의 아베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앞서 가진 기자 회견에서 "사람들은 한국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며 "그들(남북한)은 (한국전쟁) 종전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나는 이 논의를 축복한다"고 말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트럼프가 27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종전 문제가 핵심 의제라는 점을 누설(?)하면서 이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 발언이 마이크 폼페이오 현 중앙정보국(CIA) 국장 및 국무장관 내정자의 극비 방북 및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면담 이후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짐작건대, 김정은과 폼페이오는 비핵화와 더불어 이에 대한 상응 조치를 논의했을 것이다. 그런데 평화협정은 북한의 오랜 숙원이자 비핵화의 핵심적인 상응 조치다.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보고받았을 트럼프가 "종전"을 언급하면서 "축복"이라는 말을 덧붙인 것은 그래서 긍정적이다. 트럼프가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하는 것에 대한 역사적 의의를 깨달았다는 해석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가지 짚어볼 문제는 있다. 첫째는 트럼프 행정부가 "종전"을 '보상(reward)'으로 간주하고 있느냐의 문제다.
이와 관련해 폼페이오는 4월 12일 의회 청문회에서 "북한이 영구적으로 핵을 포기하기 전에는 보상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북한을 다녀온 지 열흘 정도 지난 시점의 발언이었다.
만약 미국이 보상의 범주에 종전이나 평화협정을 포함시키고 있다면 상황은 복잡해질 수 있다. 비핵화와 평화협정의 선후 문제를 놓고 북미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불가피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종전과 평화협정의 관계다. 즉, 트럼프가 종전을 언급했을 때 이것이 평화협정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평화협정에 앞선 일종의 정치적 선언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전의 글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노무현 정부는 '종전 선언'을 평화협정의 사전 예비 단계로 간주한 반면에,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둘을 동일한 것으로 간주해 큰 혼선이 빚어진 바 있다. (☞ 관련 기사 :
정전 65주년, 판문점에서 평화협정 서명식을!)
셋째는 당사자 문제, 즉 중국의 포함 여부다. 종전 선언이든 평화협정이든 남북미가 핵심 당사자들이라는 점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중국의 포함 여부는 물음표로 남아 있다. 한국전쟁 참전국이자 정전협정 서명국인 중국이 당연히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과 중국의 참여시 논의가 복잡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세 가지 문제와 관련해 문재인 정부가 전략적 입장을 정하고 관련국들을 설득·조율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해졌다. 먼저 종전 선언이나 평화협정을 비핵화의 보상의 관점에서 바라봐서는 안 된다. 평화협정은 65년간 지속되어온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화하는 조치이자 당사국들 안보를 획기적으로 증진하는 공동의 이익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비핵화를 통한 평화정착"이라는 접근보다 "평화정착을 통한 비핵화"라는 관점을 갖는 게 중요하다.
또한 노무현-부시 때의 혼선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남북미(중)이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의 관계를 명확히 설정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평화협정의 첫머리에 담길 내용이 "한국전쟁을 공식적으로 종식한다"는 것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종전 선언은 평화협정과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종전을 위한 평화선언'은 검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중국도 평화협정의 당사자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평화체제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 그리고 한중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