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사회복지의 이념과 실제

기독교 사회복지의 이념과 실제

복음제일교회 0 2,223 2021.01.23 18:01

† 기독교사회복지의 이념과 실제

유장춘1) 


1. 서론


오늘의 한국의 기독교는 개별화 그리고 내면화로 규정되는 그 신앙적 특성으로부터 사회화 그리고 외연화(外延化)라는 새로운 방향을 향한 전환기를 맞이하고 있다. 오랫동안 제국주의와 권위주의의 압력아래 시달려온 이 땅의 백성과 그들의 교회는 자꾸만 개인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향해 숨어 들어갈 수밖에 없었고 그 내적 영성의 세계에서 고통과 한을 소멸시키고 오늘의 좌절을 피안의 세계를 향한 소망으로 승화시킴으로써 평안을 갈구하고 또 체험하였다.

기독교의 진리를 깨닫고 신앙적 신념을 소유함으로부터 발생하는 삶의 에너지가 사회화  되거나 구조적 또는 환경적 변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외연화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따라서 신앙의 외향적 실현은 매우 엄격하게 절제되었고 기껏해야 교회라는 영역 안에서 사용되도록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평안을 얻기 위해 받아들인 신앙으로 말미암아 고통을 얻게 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적 태도와 특징은 한 개인의 정신적․내적 세계와 일상적․사회적 생활을 분리시키고 교회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하였다. 교회 안에서 드려지는 예배와 기도는 매우 열정적이었고 진지하였으나 교회 밖에서의 일상은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라는 은인자중의 덕을 존중하게 하였던 것이다.

한편 신앙으로 말미암아 솟구치는 열정과 에너지는 ‘교회성장’이라는 통로로 분출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교회”라고 개념화시킨 건물과 시설 그리고 조직적 확장을 위해 그 막대한 자원을 쏟아 넣었고 결국 그들이 원하는 교회성장은 이루었으나 고립과 단절로 말미암은 왜소화도 동시에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양상에 대한 논의가 그 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교회갱신, 사회참여, 사회선교, 기독교 공동체 운동 등과 같은 외향적이고 적극적인 방향제시가 끊임없이 있었으나 그러한 신념들은 본류(本流)를 형성하지 못하고 단지 분파적 흐름으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분위기는 반전되고 있다. 사회로부터 자신을 격리시켜오던 교회가 오히려 사회로부터 고립을 경험하게 되고, 스스로 격리됨으로 말미암아 획득한 자원의 축적이 오히려 사회적 고립으로 말미암은 자원의 단절로 나타나자 교회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이제 교회의 사회적 참여 또는 사회복지활동의 문제는 최선과 차선의 문제가 아니라 성장과 쇠퇴의 문제, 심지어는 생존적인 문제로 재설정 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와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기독교 사회복지의 이념을 정리하고 한국기독교의 사회복지현실을 조망하여 미래의 기독교 사회복지를 제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겠다. 기독교의 사회복지 이념은 성경과 이를 기초로 한 신학, 그리고 교회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제시되어 왔고 축적되어왔다. “한국 기독교 사회복지 현실은 이와 같은 기독교적 신념에 부합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이 글의 중심적 주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은 두 가지 큰 주제로 나뉘게 된다. 첫째는 사회복지에 대한 기독교적 이념을 정리하는 일이고 둘째는 현재 한국기독교의 사회 복지적 현황을 설명하는 일이다. 전자는 종교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면, 후자는 사회과학적 또는 사회 복지적 차원에서 제시되어야 할 과제이고2), 전자가 기독교 사회복지활동의 정신과 가치관, 교훈과 모델을 설명하는 작업이라면 후자는 한국기독교의 사회복지활동의 약사(略史)와 함께 기독교인의 사회복지 의식, 자원과 활동의 양적 질적 양상을 제시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논리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기독교의 사회복지이념과 한국교회의 사회복지양상을 비교하는 결론을 도출하게 될 것이다. 과연 “한국교회는 기독교의 경전과 사상과 교회의 역사가 제시해온 사회복지 이념을 충실하게 실천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자칫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왜곡되기 쉽다. 그러나 문제의 발견과 분석은 문제의 해결을 전제한다는 명제아래 문제제기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 본다. 따라서 결론 부분에서는 한국기독교 사회복지의 과제들이 제시되어야 하겠다.

2. 본론

기독교는 사회복지라는 말이 탄생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사회복지활동을 실천해 왔다. 사회복지란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정부나 민간기관들의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모든 활동을 말한다(장인협, 1988: 32-36). 따라서 교회의 사회복지활동이란 교회가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적, 민간적인 모든 사회적 노력에 동참하는 활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 용어는 교회의 사회봉사, 사회선교, 또는 교회사회사업과 같은 다른 용어들의 의미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포괄적 용어가 되기 때문에 사회사업처럼 전문적 활동 뿐 아니라 자선사업이나 구제사업과 같이 사회봉사에 해당되는 비전문적 활동도 포함되고, 미시적이고 관계적인 구호활동 뿐 아니라 복지정책의 개선이나 문화적 변화를 추구하는 구조적 활동이 모두 포함되며, 종교적 가치관에 근거하여 실천하는 선교적 차원의 봉사에서 사회과학적 가치관에 근거한 전문사회복지 서비스까지도 포함될 수 있다(유장춘, 2000: 31-32).

역사적으로 기독교 신앙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교회가 쇄신되는 단계에서는 언제나 사회 복지적 활동도 함께 활발해졌다. 기독교가 그 시작 단계부터 인간을 돕는 활동에 깊숙이 참여해 왔던 이유는 기독교의 본질적 정신과 가치관이 그것을 지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의 사회복지활동 양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신앙의 사회 복지적 이념을 분석하는 일이 필요하다. 본고에서는 먼저 방대한 기독교의 사회복지 이념을 정리하고 요약하고자 한다.


1) 기독교 신앙의 사회 복지적 이념

기독교 신앙의 사회 복지적 이념은 기독교 신앙이 절대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성서의 교훈에 일차적으로 근거하고 많은 신학적 업적에 의하여 축적된 사상적 체계를 통해 설명되었을 뿐 아니라 교회 역사에 등장한 수많은 모범과 사례에 의해서 제시되어왔다. 이러한 자료들을 통해 제시된 공통적이고 기본적인 사회복지이념은 기독교인의 사회복지활동은 하나님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 평화롭게 하려는 동기와 가치를 뛰어넘어서 하나님과의 관계 때문에,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사회복지활동을 실천한다는 사실이다.

  (1) 성서에 나타난 사회복지 이념

성경은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권위 있는 문서이다. 기독교인의 사회복지사상은 성경의 다양한 교훈에 근거하고 있다. 이 성경에 나타난 사회복지 이념들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하나님의 명령으로서 사회복지3)

기독교 신앙인의 최고의 덕성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순종이라면 성경은 여러 장면에서 사회복지적 활동을 명령하고 있다. 노예에 대한 해방, 빈곤자에 대한 구제와 대여(貸與), 나그네와 고아, 과부 등 다양한 취약계층에 대한 보호가 명령되어졌다. 이 명령에는 “내가 오늘날 이같이 네게 명하노라”라는 신탁(神託)이 붙여진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곧 법이고 이 법을 어기는 것은 죄이다. 그리고 이 죄를 어길 때에는 형벌이 따른다. 이러한 율법적이고 의무론적인 사회복지 이념은 제정일치의 성서사회에서 성문법 적이고 사회구조적인 틀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였다.

② 복의 근거로서 사회복지4)

신으로부터의 복은 기독교 신앙의 동기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성경은 사회복지에 관한 교훈을 따를 때에 다양한 보상을 약속하고 있다. 사회 복지적 활동에 대한 하나님의 보상은 물질적 풍요, 범사의 형통함, 육체의 건강에 대한 보장, 자손의 번성함, 또는 위기로부터의 구출이나 마음의 평안. 더 나아가 하늘나라의 상급 등 다양한 형태로 제시되어있다. 이러한 보상적 의미에서 기독교인의 사회복지 활동은 신에게 투자하는 행위이기도 하고 신에게 꾸어드리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지(全知)하신 신이 사람들의 봉사와 섬김을 헤아리고 계시고 그 행위에 대하여 보상을 약속했다는 사실 때문에 사회복지는 장래를 위한 중요한 투자라는 실용적 의미도 갖는다.

③ 윤리적 덕성으로서 사회복지5)

성경에서 사회복지활동은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적, 윤리적 품성을 표현하는 덕으로서 묘사되었다. 이것은 의무나 보상의 차원을 넘어서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인격적 품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 복지적 행위를 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행위일 따름이라는 주장이다. 자신이 고난당한 적이 있으니 고난당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 당연하고, 거저 받은 적이 있으니 거저 주어야 하며, 남에게 도움을 받고자 하면 당연히 남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어야 한다는 당위론적인 접근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을 만날 때 불쌍한 마음이 생기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이러한 자연스러운 인간의 성향을 실천하는 행동이 사회복지활동인 것이다.

④ 신앙적 결과로서 사회복지6)

기독교의 사회복지 행위는 신께 대한 신앙의 증거로서 나타나는 행동이기도 하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야고보서 1장 27절)”로서 언급되고 신을 존경하는 행위이며 의인으로서의 증거임과 동시에 신적 지혜를 소유한 사람의 행위이기도 하다. 예수는 “지극히 작은 자”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는 것,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는 것,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는 것, 벗었을 때에 옷을 입히는 것,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고, 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보는 것”들이 모두 예수자신에게 행한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였고 베드로는 봉사를 할 때에 항상 하나님께 하듯 하라고 가르쳤다. 봉사의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며,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거짓말하는 자이며 결코 신의 사랑을 받을 수가 없다고 경고한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신앙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회 복지적 행위는 더 절대화 될 수밖에 없다.

⑤ 종교적 행위로서 사회복지7)

성경은 신앙인의 사회 복지적 행위들을 제사, 기도, 금식, 헌금, 예배, 회개 등의 종교적 행위로서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사회 복지적 활동이 곧 제사요, 기도요, 금식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회 복지적 행위들이 종교적 행위들의 전제, 다시 말해서 제사로 하여금 참된 제사가 될 수 있게 하고 기도가 응답될 수 있게 하는 조건으로서 의미도 부여된다. 봉사가 없는 기도는 응답될 수 없고, 공의를 상실한 제사는 신의 미움을 받는다. 진정한 금식은 고통과 압제아래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며, 다른 사람의 죄와 빚을 탕감해 주어야 자신의 죄도 용서받을 수 있다. 따라서 선한 행위 그 자체가 하나의 제사이며 예배이고 동시에 모든 종교적 행위들을 의미 있게 만드는 전제 조건이다.

⑥ 역사적 전통으로서 사회복지8)

경전으로서 성경은 동시에 신앙열전의 역사서이다. 히브리 민족의 역사적 흐름 가운데 신앙적 위인들의 사회복지활동은 오늘날 기독교의 사회복지활동에 동기와 의미를 부여하며 모범으로서 제시된다. 따라서 사회복지활동은 오늘을 향한 역사적 요구이기도 하다. 먼저 성경은 히브리 민족의 고통스러웠던 역사와 그 상황에서 건져진 사실에 근거하여 외국인에 대한 봉사와 가난하고 압제받는 계층에 대한 배려를 명령한다. 또 예수와 사도들, 고넬료, 아브라함이나 롯, 다비다, 등의 신앙적 삶에 나타난 섬김의 자세와 초대교회의 공동체적 모범들은 현대 교회들이 본받고 받아들여야 할 사회복지의 역사적 전통으로 제시 될 수 있다.

⑦ 하나님의 성품과 사회복지9)

성경은 사회 복지적 행위의 근거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품은 자비하고 인자하며, 공의로우시고, 공평하시다. 기독교의 사회복지는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한다. 하나님이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전당잡은 옷을 돌려주어야 하고 빚은 탕감되어야 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사회에서 억울한 일을 바로잡아야 하며 올바른 사회구조가 정착되도록 노력하고 주장해야 한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기 때문에 은밀하게 구제해야 하고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구제와 선행을 보상하실 수도 있다. 이러한 교훈들은 모두 사회복지가 신의 성품에 근거한 것이면서 동시에 신의 성품과 조화된 활동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⑧ 구원의 도구로서 사회복지10)

기독교는 한 개인의 영혼을 구원할 뿐 아니라 교회, 민족 또는 나라를 단위로 하는 공동체를 구원하고 더 나아가서 세계를 구원하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신앙인의 사회복지활동이 한 개인과 공동체, 그리고 세계를 구원하는 도구로 제시한다. 종교개혁이전에는 구제가 구원의 한 방법이었지만 종교개혁이후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의 교리가 확고히 정립된다. 그러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은 반드시 선한 행위로 나타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 복지적 활동은 구원의 한 도구가 된다. 뿐만 아니라 예수의 수육(受肉:incarnation)과 십자가는 교회사회복지의 이상적인 모델이 된다. 신자의 사회복지활동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진실한 고백이고 그 고백이야말로 진정한 구원의 조건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을 가진 사람들의 공동체가 사회를 구원하고 세상을 변화시키게 된다.

⑨ 일군의 조건으로서 사회복지11)

기독교에 있어서 신자가 경험하는 가장 중요한 은혜는 구원과 직분이다. 전자는 생명과 관계있고 후자는 삶과 관계가 있다. 사회복지는 생명의 구원과 관계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살아갈 삶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 목사로 세움을 받을 자격에는 사회 복지적 소양이 필요하고, 집사의 본질적 의무는 구제에 있었다. 또 선한 행실의 증거와 착한 일과 구제 사업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야 교회를 위한 일군으로 세워질 수 있었다.

⑩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서 사회복지12)

기본적으로 성경에서의 사회복지는 시혜(施惠)의 의미보다는 하나님께 이미 받은 구원과 은혜, 그리고 복에 대한 감사와 갚음의 의미가 더 강하다. 즉 모든 신자들은 신 앞에서 빚진 자로서 자아정체감을 갖게 되고 그 빚을 갚는 형태가 사회복지 활동인 것이다. 따라서 신자의 사회복지 활동은 자랑이나 교만의 자료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며 오히려 그런 기회와 능력을 부여받은 사실에 대하여 겸손히 감사해야 할뿐이다.

⑪ 종교적 제도로서 사회복지13)

구약의 율법서 에는 절기와 제사, 그리고 사회적 제도들이 설정되어 있다. 이러한 제도들은 종교적 제도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또는 국가적 제도이기도 했다. 성경의 안식일, 안식년,  희년 제도와 십일조 제도, 그리고 도피성 제도 등, 여러 가지 종교적 의미가 담긴 제도들은 사회 복지적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제도들은 노예해방, 빈곤자 구제, 고아와 과부에 대한 돌봄, 그리고 범죄인 보호 등 그 시대의 다양한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가 담겨져 있었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를 지키는 것은 사회 복지적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⑫ 성서적 진리의 상징들 속에 담겨진 사회복지14)

   성경은 성찬, 십자가, 출애굽, 떡, 빛과 소금, 어머니와 아버지, 등과 같은 다양한 상징들을 통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나타낸다. 이 상징은 기독교 문화와 생활에 직․간접 적으로 큰 영향을 준다. 동시에 이러한 상징들은 사회복지와 연관되는 의미들을 내포하고 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사회 복지적 활동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고 또 함께 나누는 성찬의 실천이기도 하고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동참이기도 하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임과 동시에 세상에 대한 빛과 소금의 역할이며, 인간의 어머니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의 행동이기도 하다.

    

  (2) 사회복지에 관한 기독교 신학적 관점들

기독교 신학이란 기독교 신앙의 교의(敎儀)를 심도 있게 성찰하며 체계적으로 진술하는 일로서 기독교의 신앙을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신학에는 성서학, 교회사, 조직신학,  기독교윤리학, 실천신학 등의 분야들이 있다. 신학의 다양한 관점과 접근방법들 중에서 사회복지와 관련된 중요한 개념들을 정리한다면 다음과 같다:

① 창조신학적 관점에서 사회복지활동

기독교 사상의 토대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본질적으로 악한 것은 없다. 따라서 인간은 모든 존재를 존중하며 선하게 가꾸어나가야 할 책임을 갖는다. 더 나아가서 피조물 간에 친밀한 연결을 이루어야 하고 이원론적 구분으로 소외나 격리를 시키지 말아야한다는 것이 창조신학적 원론이다(Erickson, 1985: 374-377).

이러한 창조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교회는 인간의 영혼만 중요시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 물질적 영역도 신성하고 중요한 부분으로 받아들여 섬기는 자세가 요구된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목적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으며 각자의 기능과 독특한 가치를 갖는다는 사실은 사회복지의 기본적인 정신이기도 하다. 또 창조신학적 관점에서 과학과 신앙의 조화가 요구되는데 기독교사회복지는 신앙적 가치관과 과학적 방법론의 조화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창조신학적 관점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존엄한 존재가 된다. 또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야할 인간의 행복추구권이 보장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거룩하고 선하고 진실해야할 인간의 도덕적 목표가 설정되고 최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정된 가정의 가치와 사회적 욕구의 중요성, 창조주이신 신의 섭리와 신적 목적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궁극적 지향,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저주와 사회성의 파괴 그리고 비복지적 상황의 전개에 대한 설명, 그리고 타락한 인간의 구속과 우주적 회복이라는 기독교 사회복지의 궁극적 목적이 제시된다. 기독교사회복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조신학적 근거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② 삼위일체 신학적 관점에서 본 사회복지활동

삼위일체는 기독교 신학의 가장 큰 신비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성부․성자․성령이시다. 항상 세 분이신 하나님은 하나로서 영원하시고 때에 따라 한 분 또는 두 분은 다른 한 분에게 종속되신다(Erickson, 1985: 337-338). 이러한 하나님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 불가해하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섬기고 순종한다.

기독교의 사회복지는 이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공동체적이며 자율적인, 그리고 동시에 불가분리적인 모범을 따라 활동하는 것이다. 사회봉사는 “성부 하나님의 자기를 주는 아가페를 실천하는 행위이며,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섬김을 따르는 행위이고, 성령의 감동과 교제에 참여하는 행위”이기도 하다(박영호, 2001: 43).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시고 통치하시고 다스리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역을 성자를 보내시고 성령을 보내심으로 이루어 가신다(심일섭, 1985: 1393-4). 여기서 교회의 사역적 지표가 제시된다. 즉 오늘날의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여 보내져야 한다. 몰트만은 이것을 "메시야적 파송"이라고 하였다(1992: 74-75).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육신화 하셨듯이 예수님은 교회로 말미암아 공동체화 되신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수육적 모델을 받아들여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고 “세상을 위해” 일해야 하며 “세상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와 같은 관점에서 기독교 사회복지의 모델과 방법론은 제시된다.

③ 구원론 적 관점에서 사회복지

기독교의 신앙은 참회로부터 시작하여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중생(regeneration)에 이른다. 중생은 하나님의 죄의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단계이다. 신의 용서와 영원한 생명은 그러니까 전적으로 은혜요 선물이다. 우리의 행위나 공적으로 구원 얻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은 구원이 완전하게 그리고 값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중생은 기독교인의 삶의 출발과 같다. 다시 성화(sanctification)를 거쳐 영화(glorification)로 나아감으로서 구원의 대단원을 마친다.

기독교사회복지는 바로 이 성화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사랑과 희생, 그리고 헌신의 삶이다. 우리의 봉사의 참된 동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도와야 하며, 자신을 존중하고 또 환경을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분께 순종하려 하기 때문이다(Hendrics, 1988: 221-223). 

기독교의 구원관은 한 개인의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체험하고 변화된 개인들은 그들의 가족과 이웃, 그리고 지역사회와 더 큰 사회를 변화시키는 씨앗이 된다. 따라서 기독교의 구원은 공동체적이고 역사적인 구원이기도 하다. 사회복음(social gospel)의 지도자 라우센부쉬(Walter Rauschenbusch)는 침례교의 목사로서 붕괴된 사회체제 아래의 개별화된 사회봉사에 대하여 절망하고 사회적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개별적 영혼을 구원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Leonard, 1988: 249). 이 개념이 자유주의 신학으로 낙인이 찍히기까지는 보수․진보를 불문하고 기독교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사실이다. 비록 사회복음 지지자들이 개인구원을 무시하고 과격한 사회개혁을 주도하여 극단(極端)으로 나갔다는 비평은 들었지만 교회로 하여금 산업시대의 도시화의 와중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회적 문제에 대응하도록 자극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교회의 사회복지는 사회의 구조와 체제를 구원하는 방법이 된다.

④ 인간론 적 관점에서 사회복지

기독교의 신학적 관점에서 인간은 낙관적이면서 동시에 비관적인 존재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천하보다 귀한 존엄성을 지닌다. 뿐만 아니라 인격적이며 관계적이고 영원한 존재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으며, 자신과 이웃 그리고 세상에 대하여 책임 있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인간은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어 악하고, 노예화되었으며, 자기 기만적이고, 무감각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불안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인간의 죄성(罪性)은 사회적 차원으로 확대된다.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을 사탄의 지배아래 있는 악의 구조(evil system)로 보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인간론으로부터 기독교사회복지의 동기는 출발한다(Hendrics, 1988: 125). 인간은 돌보아야 할 문제와 돌봄을 받아야할 가치, 그리고 돌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을 동시에 갖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사회복지는 인간의 가치를 신적 가치로 높임으로서 가장 높은 차원으로 설정하고 시작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이라는 최고의 가능성을 지향하는 목표를 갖고 있다. 인간의 타락을 방지하는 것이 예방적 사회복지라면 인간을 타락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은 회복적 사회복지라 할 것이다.

부버(Martin Buber) 인간을 “나”로서는 존재하지 않고 “나와 너” 또는 “나와 그것”이라는 상대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인간은 신, 인간, 자연을 비인격적인 “그 것”으로 상대하지 않고 인격적 대상 즉 “당신”으로 상대함으로써 너와 내가 함께 인격적인 존재로 살아나게 된다. 기독교 신학적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과 “나와 너”의 관계를 맺으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총 아래서 이웃과 자연에 대하여 “나와 너”의 관계를 맺어나가야 한다. 기독교의 사회복지는 바로 이러한 관계설정을 위한 구체적인 태도이고 행동이다.

⑤ 선교 신학적 관점에서 사회복지

기독교 신앙은 선교를 통하여 씨앗이 뿌려지고 선교로 말미암아 열매를 맺는다. 그러나 선교가 무엇이냐는 관점에 대해서는 논쟁이 끊임없었다. 전통적으로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인간영혼구원 위주의 선교개념이 우세해왔다. 그러나 1964년 휘튼 선언 이래 복음주의자들 사이에서 그러한 선교개념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고 로잔대회에서는 전도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양대 영역을 선교에 포함시킴으로서 통전적 선교에 대한 관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Stott, 1985: 29-30 파딜랴, 1994) 이 개념은 M=P.S+SS라는 공식으로 표현하는데 설명하면 선교(mission)는 인간구원(personal salvation)과 사회봉사(social service)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이 개념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공식이 M=E+N+S(S.S+S.A)+F 이다. 설명하면, 선교는 전도(evangelism)와 양육(nurture), 봉사(service) 즉 사회봉사(social service)와 사회행동(social action), 그리고 친교(fellowship)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서정운, 1992: 41).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복지는 인간 구원의 구체적 행위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또 하나의 선교 신학적 관점으로써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개념은 선교의 주체가 교회나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시며 그 선교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있다는 전제를 갖는다. 물론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주권과 통치가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의 교회에 제한되지 않고 하나의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기독교 밖의 세계에도 역사 하시고 섭리하신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영적’인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고 정서적․사회적․정치적․생태적 제반 영역에도 임재 하신다는 확신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선교는 범세계적이고 통전적인 영역을 포함하게 된다.

기독교 사회복지는 교회가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여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통로이며 방법이고 도구라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위해 유익하게 하는 구체적이고 기술적인 활동이고 이 사회가 교회와 한편이 되게 하는 사랑의 행동이다.

⑥ 교회론 적 관점에서 사회복지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교회는 그의 몸이고, 우리는 그의 지체이다. 교회는 공동체화 되어진 그리스도이다. 교회라는 단어인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α)의 어원적인 뜻을 추구할 때 교회는 집합적이며, 지역적이고, 연합적이다. 뿐만 아니라 교회는 우주적인 공동체이기도 하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지속적으로 계속해야 한다.

따라서 교회는 본질적으로 진리의 선포(케리그마: kerygma)와 성도의 친교(코이노니아: koinonia) 그리고 사랑의 봉사(디아코니아: diakonia)의 세 가지 기능을 갖고 있다(호켄다이크, 1997:22-29). 이 기능들은 서로 분리되거나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디아코니아라는 말은 δια(dia: 통하여)라는 단어와 κονἰα(konia: 먼지)라는 단어의 합성어로서 “먼지 가운데로 지나서 가는” 의미를 통해 ‘봉사’와 ‘섬김’의 의미를 나타낸다. 디아코니아는 ‘시중들다’, ‘봉사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디아코네인(δίακονείν)이라는 동사에서 온 말로 원래 “식탁에서 기다림” 또는 육체를 위한 음식을 준비하는 데에 관한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한편으로 진실한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봉사의 섬김 형태를 나타냈다(박창환, 1995:7).

디아코니아는 봉사의 기능이지만 참된 봉사(디아코니아)는 말로써 진리를 선포하는 것(케리그마)보다 더 큰 감동을 주고 동시에 참된 인격적 만남(코이노니아)을 가능케 한다. 따라서 기독교의 사회복지활동은 진리를 전파하는 기능과 함께 교인들 서로 간에, 교회와 지역사회 사이에, 더 나아가서 인간과 하나님 관계에 참된 만남의 현장을 제공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유장춘, 2001). 디아코니아의 신학적 개념은 기독교 사회복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다고 하겠다.

⑦ 종말론적 관점에서 사회복지

기독교는 궁극적으로 부활과 하나님의 나라를 지향하는 종교다. 바클레이(W. Barklay) 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완전히 이루어진 상태를 말한다고 하였다(신학사전, 1978:735). 그 나라의 완성은 미래적이지만 그 나라를 향한 과정은 현재적이다. 그래서 몰트만은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실험하는 장(1992:68)”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봉사는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사랑의 실천으로서의 봉사다. 기독교 사회복지와 일반 사회의 사회복지가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전제로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제로 할 때 삶과 죽음을 초월한 사랑이 가능해지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현실적인 봉사에 적용되어질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 근거한 기독교의 사회복지활동은 단순한 구제나 국가적 차원의 사회복지에 대한 참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소외와 고립, 그리고 분리의 문제가 극복된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는 보다 차원 높은 사회적 과제를 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개념과 함께 ‘해방’이라는 개념도 종말론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 사상에 있어서 자유는 생존의 문제보다 더 절박한 가치를 부여 받는다15). 자유가 없는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기독교의 많은 자유사상가들이 목숨을 버려가며 해방을 주장한 것은 자유 없는 삶보다는 자유로운 죽음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유의 가치에 대한 절대적 신념과 함께 해방신학은 출발한다.  구티에레쯔(Gustavo Gutierrez)는 교회가 수세기 동안 진리 또는 윤리적 가치를 이론화하는 것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세계를 개선해 가려는 시도는 미흡했다고 지적한다(1974: 10). 그래서 해방신학은 진리를 이해하는 것보다 진리를 실천하는 일에 더 역점을 두고, 성서를 통해 현재를 보기보다 현재의 생활과 상황을 통해 성서를 해석하며, 구원에 대하여는 영적인 자유함보다 역사적 해방을 받아들인다. 하나님은 억눌리고 배고픈 자를 더 우선적으로 사랑하시되 억압당하는 사람은 그 억압에서 해방시킴으로써, 그리고 억압하는 자는 그 억압하는 힘을 빼앗아 버림으로써 사랑을 나타내신다고 믿는다(고재식, 1991: 181).

이러한 관점에서 기독교의 사회복지활동은 심리적, 경제적, 신체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더 나아가서 영적인 면까지 모든 억누르는 것으로부터 궁극적이고 종말론적인 해방을 추구하는 활동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복지는 모든 시민의 기본적인 삶의 질과 안정적 생활을 목표로 하고 사회사업에서는 클라이언트의 사회적 적응을 그 목표로 한다면 기독교사회복지의 중요한 목표는 자유와 해방이라고 할 것이다.


II. 한국기독교의 사회복지활동 현황

한국기독교의 사회복지현황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독교의 사회복지활동과 교회의 사회복지활동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기독교적 신념과 가치관 아래에서 실천되는 사회복지 활동을 말하는 것이고 교회의 사회복지활동은 교회라는 기관과 조직의 후원 아래에서 실천되는 사회복지 활동을 말하는 것이다(박종삼, 2002:433). 이것을 좀 더 쉽게 표현한다면 전자는 기독교인에 의해 수행되는 사회복지활동이고 후자는 교회에 의해 실천되는 사회복지 활동이다(Garland, 1992: 9-10). 통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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