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교권, "위험하다" 말할 수 없는 교사들
1시간 전
"아이들이 교사에게 욕을 하거나 때리는 일은 일상이에요. 어떤 학생이 언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담임 교사들에게는 '시한폭탄'과도 같아요."
전남지역의 초등교사 A씨는 20일 최근 교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교권 침해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실제 교사들에게 교실은 학생들을 지도·관리하는 공간임과 동시에, 상시 위험에 노출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학생들이 교사에게 폭언과 폭행을 가하거나 민원 등으로 위협을 가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지만, 정작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대비책이 마련돼 있지 않은 탓이다. 학생들을 체벌 등 폭력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교사들의 인권 문제는 뒷전이 돼온 것이다.
'서이초 사건'으로 떠오른 교권 추락 실태
추락하는 교권, "위험하다" 말할 수 없는 교사들© 제공: 아시아경제
최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교사 폭행 사례가 주목을 받으면서 교권 침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서울교사노조에 따르면 한 초등교사는 지난달 30일 학급 학생으로부터 얼굴과 몸 등 여러 차례 가격을 당해 전치 3주의 진단을 받았다. 해당 학생은 분노 조절 등의 문제로 하루 1시간씩 특수반 수업을 듣고 있었으며, 이 교사는 지난 3월에도 같은 학생에게 폭행당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8일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은 교사들의 누적된 분노를 터뜨렸다. 이 교사에 대한 교권 침해 사실은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교사들의 쌓였던 울분을 건드리는 계기가 됐다. 사태 이후 서이초 교장은 입장문을 통해 담당 업무가 '학교폭력' 업무가 아닌 '나이스 권한 관리' 업무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에 반발한 교원단체들과 교사들은 기자회견과 추모제를 열고 나섰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교권이 무너지면 공교육이 무너진다"며 원인 규명과 제도 개선을 약속해야 했을 정도로 교육계가 느끼는 교권 붕괴 상황은 심각하다.
30대 초등교사 B씨는 "어떤 선생님은 개학 첫날 아이들에게 청소 지도를 하는데 반항하는 학생에게 대걸레로 맞을 뻔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20일 서이초에 추모차 방문한 초등교사 C씨도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며 "저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어서 오게 됐다"고 말했다. 학생에게 쓴소리했다가 학부모의 민원과 고소·고발, 담임 교체 요구 등을 겪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교사들은 전했다.
실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따르면 학교교권보호위원회 심의 건수 기준으로 최근 6년간 교원 상해 ·폭행 건수는 1249건에 달한다. 지난 5월 발표한 '2022년 교권 보호 및 교직 상담 활동' 보고서에서도 학생에 의한 교권 침해 유형으로 '수업 방해'를 꼽은 교사가 34.4%로 가장 많았고, '폭언·욕설'(28.1%), '명예 훼손'(20.3%), '성희롱'(7.8%) 순이었다.
교권은 언제부터 땅에 떨어졌나
추락하는 교권, "위험하다" 말할 수 없는 교사들© 제공: 아시아경제
13년 전인 2010년 전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면서 두발·복장 규제, 체벌 등 관행적으로 행해지던 것들이 금지됐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사의 학생에 대한 체벌이나 지나친 사생활 제약 등을 해소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뒀으나, 부작용으로 교권이 약해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교육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고 학생의 권리 보장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억눌려왔던 아이들의 권리 의식이 지나치게 분출되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과 학부모가 교사의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아이들을 이끄는 교사의 교권, 리더십이 약화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구 감소로 한 가정 당 아이에게 쏟는 관심이 늘어나면서 개인화된 구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송 교수는 "아이가 보통 하나 아니면 둘이다 보니 '우리 아이만'을 외치게 된 것"이라며 "부모들이 누군가 아이들을 야단치는 것조차도 못 받아들이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학생과 학부모의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공교육에서 길러줘야 하는 사회적 규범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는 것도 중요한 원인이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학적으로 '아노미 상태'인 것으로 보인다"라며 "공동체에서 어떤 것이 옳고 그르다, 어떤 것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이, 특히 학교에서 무너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학생 인권만 너무 강조되는 상황에다가, 공교육인 학교라는 공간 자체가 사교육으로 점차 대체되어 버리면서 학생들이 교사에 대해서도 신뢰를 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교권의 하락은 결국 학생들에 대한 학습 지도의 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교사가 위축될수록 학생 관리에 손을 놓게 되기 때문이다. 20대 초등교사 D씨는 "최근 교실 안팎에서 사고가 계속되면서 아이들을 지도하기가 무서워진다"라며 "올바르게 교육하기 위해 더 힘을 쏟아야 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말했다.
교사 개인이 아닌 정부·사회가 대응해야
서초구 초등교사 극단 선택에 잇따른 추모… 이주호 "교권 무너지면 공교육 무너져"(종합)© 제공: 아시아경제
교육부가 발간하는 '교육활동 보호 매뉴얼'에 따르면 교사는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원법)으로 보호받는다. 이 법률에 따라 각 학교는 교권보호위원회를 구성해 교권 침해 사건에 대해 조사 및 조처를 할 수 있다. 특별법은 ▲형법상 상해폭행죄 ▲성폭력범죄 ▲불법정보유통행위 등으로 교육활동 침해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모든 피해 사례를 교권보호위에서 다룰 수 없을 뿐 아니라, 교사 자신도 수업 방해 등을 우려하며 신고를 꺼린다. 조성철 교총 대변인은 "실제 교실에서 벌어지는 피해 사례 중 교권보호위에 신고되는 건수는 극히 소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현존하는 교권보호위원회를 열기 위해서는 시간적, 절차적 과정이 복잡하다"라며 "매일같이 당하는 폭력 건에 대해서 모두 신고 절차를 밟기 어려울 것"이라며 "교사를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