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진석 후보의 조부 정인각(좌)과 부친 정석모(중앙) 및 정 후보(우) © 뉴스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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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6.4 지방선거 새누리당 충남도지사 후보로 나선 정진석 후보의 조부인 정인각이 일제 강점기 당시 계룡면장을 지내며, 친일행적을 한 문건이 드러나면서, 정 후보 본인이 자민련 의원 당시 친일청산법 발의에 반대했던 일과 부합되면서 큰 파장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정진석 후보의 부친은 1961년 내무부 치안국 경무과장으로 시작돼, 내무부 차관, 충남도지사, 10~15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내무부장관을 지낸 정석모다.
▲ 조선총독부관보 4010호 1940년 6월 6일자 . 우측 적색 표시안에 정인각의 창씨명이 大谷正雄(대곡정웅)으로 기록돼 있다. © 뉴스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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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정석모의 부친은 3.1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난 해인 1919년부터 1928년까지 계룡면 서기, 1929년부터 1942년까지 계룡면장을 지내며(조선총독부관보 1939.2.13, 동아일보 1938.5.22 석간 4면) 친일행적을 했던 인물인 정인각(鄭寅玨. 창시명 大谷正雄-오오타니 마사오, 조선총독부 관보 1940.6.5. 위 적색 네모)이다.
뉴스파고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정인각은 충남 공주군 계룡면장으로 재직시, 군용물자 조달 및 공출업무, 군사원호업무, 여론환기 및 국방사상보급 선전업무, 국방헌금 및 애국기 헌납자금 모집업무, 등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지나사변공로자공적조서(支那事變功勞者功績調書)에 이름이 올랐던 인물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나사변은 1939년 7월 7일을 계기로 벌어진 중국과 일본간의 전면 전쟁을 일본에서 일컫는 단어로, 이는 1937년 7월 7일 북경 교외 노구교에서 일본군이 군사행동을 도발함으로써 시작됐다. 일본정부는 선전포고도 없이 총공격을 개시, 북경·천진에 이어 국민정부의 수도 남경(南京)을 점령하고 30만이 넘는 무고한 시민을 살육했으며(남경대학살사건), 무한(武漢)·광동(廣東)·산서(山西)에 이르는 주요도시 대부분을 점령했다.
이 때 중국은 장개석이 공산당의 항일 민족통일전선 결성 호소를 받아들임으로써 제2차 국공합작을 이루어 일본에 맞섰다. 일본은 이 전쟁에서 이른바 삼광작전(三光作戰, 살광(殺光)·소광(燒光)·창광(傖光))이라는 잔학행위로 1천 2백만 명에 달하는 중국인을 학살했으며, 왕조명(汪兆銘) 등 친일정치인을 내세워 남경에 괴뢰정부를 수립했다.(네이버 지식백과중·일전쟁 [中日戰爭] (한국근현대사사전, 2005.9.10, 가람기획)
또한 정인각은 1941년에는 총력운동 전개 및 일본정신 함양과 대정익찬운동 시찰 등을 목적으로 매일신보사 주최로 일본에 파견한 성지참배단의 일원으로 도일한 행적도 나타났다.
▲ 정인각은 1941년에는 총력운동 전개 및 일본정신 함양과 대정익찬운동 시찰 등을 목적으로 매일신보사가 주최하여 일본에 파견한 성지참배단의 일원으로 도일한 행적도 나타났다. 출처 네이버 라이브러리뉴스 캡쳐 (이하 동일) © 뉴스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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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41년 5월 17일자 2면에 실린 [총력전의 수훈부대 각 도서 20여명 선발] 제하의 기사(위)에는 '본사주관 성지참배단원들 결정'이란 부제와 함께 "실천운동의 제 이 단계로 힘찬 비약을 하게된 조선의 총력운동을 좀 더 활발히 하여 나가는데 도움이 될가하고 본사에서 계획한 전선각면 연맹 이사장 대표들의 성지참배단은 각 도 연맹에서 신중히 인선한 결과 드디여 매 도 이명식 이십명의 도 다음과 가치 결정되엿슴으로 오월 이십일일 오전 십일시에는 경성역을 떠나 장도에 오르게 되엿다.
일행은 강원신궁을 비롯하야 내지의 승지에 참배하야 일본정신을 기르는 동시에 내지의 각 도 시와 농촌을 차저 대정익찬운동도 시찰한 다음 육월삼일에 경성으로 도라올 터인데 이들은 일선에서 활약하는 사람뿐임으로 장내조선의 총력운동에 만흔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터이다.(이하 이십명 명단 속에 정인각의 창씨명인 大谷正雄이 포함돼 있다)"와 같이 실려 있다.
위 기사 제목의 '총력전'이란 일제가 1937년 중일전쟁 일으키면서 내선일체, 황국신민화 등을 명분으로 한국인을 전쟁으로 끌어내기 위해 국민총력연맹이 펼친 국민 총력 운동으로, 1940년 10월 제 이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본 내에서 전시 총동원 준비를 위해 대정익찬회(大政翼贊會)가 벌인 대정익찬운동에 발맞춰 조선에서 전개한 황국신민화 및 전쟁정책에 협력하기 위한 운동이다.
▲ 동아일보 1938년 5월 22일자 기사 © 뉴스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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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38년 5월 22일자 [신망과 수완겸지 계룡면장 정인각씨]제하의 기사에는 "정씨는 천성이 인후원만하고 두뇌가 명민하며, 임사에 지약이 풍부한 수완가이다.
대정팔년에 동면서기로 임명되어 면민에 대하야 지도가 민활하고 처무에 능률이 증진됨에 따라 씨의 사무성적과 면민의 신망이 독후한 면정 최적임자가 되었다.
대정십오년에 일본강산현 각촌역장에 삼개월간 사무견학을 마치고 돌아와 인하야 동면장에 취임되어 면정의 쇄신과 농촌진흥에 진력하며 각 사회단체에 중임을 겸하야 수완을 발휘하고 잇어 군내면장 중 모범적 인물로 당국의 신임과 면민의 신망은 날로 높아간다 하며, 씨의 장래는 다욱 만흔 촉망이 되고 잇다."고 기록돼 있어 당시 면장으로서 일제를 위한 활발한 활동으로 일본의 큰 신임을 얻었음을 알 수 있다.
▲ 동아일보 1939년 2월 12일자 기사 © 뉴스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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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동아일보 1939년 2월 12일자 [지방공적자의 포창에 대하야 대죽내무국장 담] 제하의 기사에서 "본년기원가절에 당하야 조선지방행정의 공적자로서 조선총독으로부터 충청남도공주군계룡면장 정인각, 경상남도진주군정촌면장 오순근, 평안북도창성군신창면장 이경주 ,강원도도회의원 김기옥 사씨가 표창되었다.
회고컨댄 대정십오년 이래 본부에서 기원절가일을 복하야 지방행정의 공적자를 선장함이 이미 육회본년은 칠회에 상당한데 본부가 지방행정의 공적을 표창한 소이는 말할 것도 없이 특히 지방행정의 중요성에 감하야 공직자의 사명을 존중하고 기활동에 의하야 일반민중을 지도유액하야 지방행정의 원만한 발전을 서기하려 함에 불외한 바이다.
금회선장의 영예를 담한 사씨는 누구나 지방행정의 요람시대부터 공직에 취하야서 다년제일선에 입하야 사무의 정리쇄신, 교육, 산업, 토목,교통,위생의 보급개선, 미풍양속작흥, 민심융화 등에 지성으로 일향의 흥륭에 진췌햇음과 동시에 지방행정을 금일의 정비된 상태에 이르도록 공헌함이 만흔 은인으로서 그 발군의 공적은 참으로 모범함에 족할 것으로 밑 는바이다.
생각하면 시정 이래 이미 이십유구년 지방행정은 현저히 진전되어 면목을 일신함에 지한 것은 동경에 불감하는 바로 어성덕이 그러케한 바이니 금회 선정된 사씨와 같음은 공직을 바뜬 사람의 지성노력의 결정임이 틀림없는 것으로 이에 깊이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라고 조선총독부의 두터운 신임을 받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와 관련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문제는 단순한 옛날 일이 아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친일문제는 금기에 속하는 영역으로 처리가 미뤄져 왔다. 연구소가 탄압받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며, "친일문제를 건드리면 국립대 교수도 해직되는 현재진행형 상황이다. 성역 없는 역사 그것이 균형 잡힌 역사이고 균형잡힌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럽 여러 나라들이 지금까지도 나치 협력자들을 추적하여 공소시효도 없이 처벌하고 있는 이유는 다시는 그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의를 후세대에게 보여주는 미래지향의 선택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는 "여러 문건을 통해 정인각의 친일행적이 나타나긴 했지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것은 직위가 면장으로 고등관료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뉴스1 22일자 기사에 따르면 정진석 새누리당 충남지사 후보는 6·4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 첫 날 야우리 광장 유세에서 경쟁자인 안희정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국가관에 대해 공세를 퍼부으며, "대한민국은 윤봉길 의사의 순국으로 지금의 평화와 자유를 누리고 있다. 윤 의사 뿐만 아니라 유관순 열사, 김좌진 장군 등 우리 충남이 가는 길은 ‘애국의 길’, ‘건국의 길’이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어 “그런데 이런 우리 역사를 잘못된 성공신화라고 부정하는 후보가 있다”며 “그 후보는 가시밭길을 걸으며 목숨 바쳐 대한민국을 만든 애국선열을 기회주의, 출세주의의 역사라고 비난하고 있다”고 안 후보의 국가관을 지적하며, “어떻게 이럴 수 있냐. 왜곡된 국가관을 가진 후보가 애국과 충절의 고장인 충남의 도지사가 될 수 있겠냐”고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진석 후보측에 전화와 문자를 통해 해명을 요구했지만 정 후보측에서는 아무런 해명이 없이 묵묵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