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교회 임이택 목사
‘우리 교회는 작다, 내세울 것이 없다.’ 그래서 ‘말할 것이 없다.’ 겉모습만 보자면, 이런 말을 할 법 하다. 이제는 서울의 ‘작은 중국’이라고 일컬어지는 곳. 지하철 2호선 대림역 주변은 언제부터인가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되었다. 이런 황금어장에, 복음 가진 교회가 세워진 것만 해도 감사하다. 게다가 작은 교회라고 하지만, ‘그 작은 자가 천을 이루겠고’라는 이사야 60:22의 말씀처럼, 교회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세계복음화와 후대 렘넌트를 키우는 교회라면, 절대 무너지지 않은 교회임이 분명할 것이다. 안디옥교회(임이택 목사‧58‧서울 강서노회장)는, 93년에 교회가 설립, 올해로 28년째이면서 다락방전도운동에 참여한 지 25년 되었다. 그런 가운데 현재 위치에 4층 건물을 마련, 렘넌트들을 위한 안디옥학교, 방과후 교실, 선교관 등을 갖추며 작년 2월 입당감사예배를 드렸다. 작지만 큰 교회, 목회자를 비롯해 중직자, 렘넌트에 이르기까지 ‘되어지는 목회, 응답’을 고백한다. 그 은혜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불신자 가정의 장남으로, 목회자가 되기까지 제사 지내고, 무당 데려다 굿 하고, 절에 가서 불공 드리는 전형적인 불신자 가장, 빈농의 장남이었다. 게다가 부친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소천을 했으니, 학교 다니는 것 자체가 두려움이었다. “수업료 때문에 학교 가는 것 자체가 힘 들었고, 집에 돈이 없으니 늘 먹고 사는 것 자체가 어려움이었어요. 결국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어요.” 임 목사는 알루미늄을 녹여서 금형에 부어 가스레인지 밸브를 만드는 일을 했다. 하루는 기계 작업을 하는데 프레스 기계에 손이 끼어 왼쪽 손목이 절단될 위험을 겪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친구 따라 신앙생활을 시작하며, 어느새 제 마음 속에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인식되어 있었는데, 서울에 올라와 생활하면서 아마도 너무 강퍅해지니까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됐어요. 그런데 손목이 절단될 뻔한 사건이 하나님의 경고로 느껴졌어요. 다시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임 목사의 말이다. 그 사건 이후로 곧 임 목사는 신학교에 입학을 했다. 한 학기 하다가 군대를 갔다왔더니, 이번에는 모친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얼마 지나지 않아 소천했다. 신학교 다니는 것도 한 학기 다니고, 휴학하고, 돈 벌고 하는 생활을 여러 번 반복하면서 결국 졸업을 했다. 그 와중에 결혼을 했다. “학교를 다니면서 직장생활도 열심히 했습니다. 7년 정도 자동선반 부속을 만드는회사에 있었는데, 기술, 구매, 영업 등 모든 분야를 섭렵하며 인정도 받고 공장장까지 맡게 됐지만, 제가 갈 길은 ‘목회’라는 하나님의 사인이 있었지요.” 임 목사는 10년 직장생활을 접고, 퇴직금을 가지고 신길동에서 ‘신길중앙교회’라는 이름으로, 93년도에 첫 개척을 했다. 가족 네 명이 개척 멤버였다. 그래도 하나님은 은혜를 주셔서, 처음부터 십의 일은 건축헌금, 신의 일은 구제, 십의 일은 선교에 헌신하며 40일 금식기도도 하면서, 교회를 조금씩 조금씩 성장시켜 나갔다.
다락방전도운동을 만나고, 복음운동에 뿌리내리기까지 그러나 목회는 쉽지 않았다. 자신의 능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했다. 그런 가운데 다락방전도운동을 만나게 됐다. “처음부터 ‘아 이것이구나’라는 깨달음은 없었어요. 마침 한창 합동측을 중심으로 류광수 목사가 이단이라는 이야기들이 나오기 시작할 무렵이기도 했지요. 그런데 한 목사님이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당한 것이지, 전도만 하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도, 말씀을 들으면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처음에는 답답해 했어요. 그러다가 창대교회에서 류광수 목사 메시지를 들으며 영적인 말씀이 부딪쳐 왔어요. 그 때부터 복음편지만 1-2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전국 집회를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다락방전도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윤리, 도덕, 선행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되어져야 한다는 메시지가 저에게 부딪친 것이지요.” 98년 신길동에서 대림동으로 성전을 이전하면서, 본격적인 다락방전도운동이 시작되었다.
안디옥교회가 한 것, 응답받은 것 네 가지 교회가 부흥되는 것 같다가, 오히려 다락방전도운동을 하면서 성도들이 떠나가는 과정을 겪으며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주변의 큰 교회로, 성도의 이전은 한 동안 임 목사를 힘들게 했다. 하지만, 그 때, 하나님은 임 목사에게 은혜를 주셨다. “집회 따라다니면서 제가 붙잡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메시지를 붙잡았어요.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테이프를 제작하여 미자립교회와 개척교회 중심으로 구원의 길, 제사, 전도, 교회에 대한 메시지들을 복사해서 전달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파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을 지속하고 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이 말씀이 제 안에, ‘각인’되기 시작했어요. 운동하면서 메시지를 집중적으로 듣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이 말씀이 저에게 뿌리를 내리는 것이었어요.” 그 때 임 목사가 크게 깨달은 것 ‘한 가지’가 있었다. 말씀이 임 목사 자신에게 각인이 되면서, ‘복음 각인된 제자’가 세워졌다. 그러자 그 변화를, 주변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7-8년 전부터 사람들이 저에게 변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저도 잘 몰랐는데, 제가 복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그 중심이 되다보니, 우리 중직자들이 하나님, 교회, 목회자 중심으로 변화되는 것이 보였어요. 그러자 성도들이 십의 삼조 이상을 낼 만큼 헌신을 하고, 성전 건축을 하는 과정 중에 한 명도 시험에 들지 않았어요. 이것이 바로 ‘목회가 되어지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사실적으로 깨달은 셈입니다.” 임 목사의 고백이다. 둘째는 후대 사역이다. 특히 초중등 렘넌트들을 위해 10년 전부터 겨울방학이면 7주 과정으로, 필리핀 ‘영어수련회’를 개최하고 있다. 필리핀 렘넌트신학교를 배경으로, 사역자와 아이들이 7주 동안 필리핀에서 영어를 공부하고, 복음 안에서 집중적으로 깊이 뿌리 내리는 시간을 갖는다. 어느 날 보니 아이들이 현지인에게 복음을 전할 만큼 실력이 늘어 있었다. 이렇게 세워지고 성장한 렘넌트들이, 치유는 물론이고 복음에 뿌리 내린 제자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셋째는 미자립교회를 섬기는 것이다. “21세기 한국 교회의 과제는 미자립교회가 세워질 수 잇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 부분에서 어떻게 응답받을까 기도하다가, 10년 전부터 기관 선교 헌신예배를 통해 1년에 1-2번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초청합니다. 최소한 6개월에서 1년 정도 미자립교회를 기도제목으로 전하고 성도들과 함께 기도를 함께 합니다.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성도들이 중심을 담아 헌금을 하고 있습니다.” 넷째는 ‘가족 선교’이다. 벌써 13년째 이어지고 있다. 필리핀 현지 렘넌트들을 위해, 맨 처음 10명이서 시작했다. 필리핀 다락방신학대학교 학생, 렘넌트 등, 현재는 15명을 후원하고 있는데, 6만원부터 12만원까지 한 학생과 한 명의 성도들이 연결되어 매 달 후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네 가지 응답 속에서, 안디옥교회는 성장을 했다.
후대가 세워지는 교회, 문화 사역으로 이어져 “각 가정에 렘넌트를 많이 강조하면서, 우리 교회는 한 가정당 아이가 3명일 정도로 후대 사역에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10년 이상 지속적으로 사역이 지속되면서, 아이들은 어느새 영어는 물론이고 중국어, 일본어 등 언어적인 감각에 응답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안디옥학교’라는 문화사역으로 이어지고 있다. 교회에서 부교역자, 중직자들이 교사가 되어 아이들에게 언어 뿐만 아니라, 피아노, 드럼, 기타, 학업캠프를 병행하고 있다. 렘넌트들이 방과후 학교에 참여하면서, 이른바 교회가 후대를 키우고 책임지는 사역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렘넌트들이 한 명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교회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중이다. 한편 ‘선교’에 대한 응답도, 안디옥교회의 큰 응답 중의 하나이다. 교회가 성전 이전을 하는 과정 중에서도, 필리핀 민복기 선교사의 현장을 가슴에 품고, 은퇴비자와 승합차를 마련하는데 헌신을 했다. “되어진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어느 때는 무서운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제가 지나가다 한 마디 하게 되면, 성도들은 그냥 기도제목으로 삼으며 응답을 받게 되니까요. 제 자신이 24 메시지가 되어지면서, 중직자들이 함께 그 응답과 축복을 누리니, 정말 되어지는 목회, 생을 걸고 지속되어야 할 후대 사역이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임 목사의 고백이다. 앞으로 안디옥교회의 기도제목과 비전은 ‘제자’, 단 한 가지이다. 중국 타운에 교회가 세워진 이유, 향후 하나님은 세워진 렘넌트와 제자들을 통해 어떤 응답들을 주실지, 안디옥교회의 기도응답이 기대되는 이유이다. 오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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