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사고로 하나님의 품에 안긴 서울아산병원 주석중(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의 기도문이 공개돼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국내 대동맥 수술의 일인자로 꼽히며 수많은 생명을 살렸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모두 하나님의 손에 맡기노라고 고백했다.
주 교수의 장남인 주현영씨가 유가족 대표로 조문객에게 쓴 감사 인사 여러 곳에는 주 교수의 생전 신앙이 확인됐다. 주 교수는 서울 주님의교회 집사였다. 바쁜 일정 중에서도 교회 성가대로 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의 감사 인사는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 회장이 페이스북을 통해 26일 공개했다. 노 전 회장은 본보에 ‘감사 인사가 더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기 바란다’는 뜻을 전해왔다.
먼저 주 교수는 병원 연구실에 여러 편의 기도문을 남겼다. 이는 평소 사용하던 만년필로 직접 쓴 것이었다. 주 교수는 그중 한 편을 벽에 붙였다. 영문으로 “…but what can I do in the actual healing process? Absolutely nothing. It is all in God’s hands”라는 내용으로 이는 “실제 치유 과정에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절대로 아무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라고 번역된다. 주 교수의 아들 현영씨는 이 기도문에 대해서 “정성을 다해 수술하고 환자를 돌보지만 내 힘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십사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을 그렇게 적어두신 듯하다”고 전했다.
두 번째는 주 교수는 하나님이 주신 소명에 감사했다. 그는 사고가 있기 얼마 전 아내에게 “나는 지금껏 원 없이 살았다. 수많은 환자 수술해서 잘 됐고, 여러 가지 새로운 수술 방법도 좋았고, 하고 싶은 연구 하고, 쓰고 싶었던 논문 많이 썼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소명을 다한 듯하여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주 교수는 의사로서 남다른 희생정신을 발휘했다. 그는 병원 10분 거리에 살면서 응급 수술을 도맡았다. 또한 장례를 마치고 유가족이 찾은 연구실엔 뜯지 않은 라면 스프가 상자에 수없이 쌓여있었다고 한다. 현영씨는 “제대로 식사할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서 아니면 그 시간조차 아까워서 연구실 건너 의국에서 생라면을 가져와 면만 부숴 드시고 스프는 그렇게 버려둔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오로지 환자 보는 일과 연구에만 전심전력을 다하시고 당신 몸은 돌보지 않던 평소 아버지의 모습이 그대로 느껴져 너무나 가슴 아팠다”고 했다.
생전 하나님의 사랑을 몸소 실천한 주 교수의 사망 소식에 많은 이들이 함께 울었다. 현영씨는 “정말 많은 분들께서 오셔서 아버지가 평소 어떤 분이셨는지 얘기해 주시고, 진심 어린 애도를 해 주셔서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며 “많은 분들께서 저희 아버지를 누구보다 따뜻하고 순수한 가슴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해 주셨다. 여러분이 기억해 주신 아버지의 모습과 삶의 방식을 가슴에 새기고, 부족하지만 절반만이라도 아버지처럼 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