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의 기독교 건국 리더십

이승만 대통령의 기독교 건국 리더십

복음제일교회 0 1,689 2021.01.27 23:58

[신앙과정치] 우남 이승만의 기독교 건국 리더십(下)

입력 : 2009.03.24 07:08   

기독교 정신을 기초로 한 정치 이론과 그 실천을 연구하고 전파하기 위한 한국 최초 기독교 정치 잡지 <신앙과 정치>가 최근 창간 감사예배를 드렸다. <신앙과 정치>는 학문적, 사상적 논의와 더불어 신앙 위에 굳건히 선 기독교 정치인을 양성하고 기독교인 국민을 육성하는 일에 앞장서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이에 본지는 이를 한국교회 많은 성도들과 공유하기 위해 한국기독교정치연구소(이사장 황우여 의원, 소장 장헌일 장로)의 동의를 얻어 그 주요 내용을 연재한다.

[연재 순서]

1)해방 정국과 기독교 건국 운동 : 김흥수(목원대 교수)
2)우남 이승만의 기독교 건국 리더십 : 유영익(전 연세대 석좌교수)
3)도산 안창호와 기독교 : 이만열(숙명여대 명예교수)
4)한국 기독교가 나아갈 방향 모색 :황우여(국회조찬기도회 회장)
5)기독교 정치의 성서적·신학적 타당성(가능성) : 한국 그리스도인의 사회·정치 참여와 책임 : 김준곤(CCC총재)
6)성경에 입각한 정치의 참여와 실제 : 장헌일(대한민국 국가조찬기도회 사무총장)
7)현대 국가의 기독 정치가 및 기독 정부의 예 : 마크 빌라일즈 (미국 프라비던스재단 국제변혁네트워크 총재)
8)네덜란드의 민주주의와 기독교 역사 : 헹크 볼드링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자유대학 교수, 전 상원의원)  

우남 이승만의 기독교 건국 리더십(下)

▲유영익 (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
유 영 익 (전,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석좌교수)

미국 휴스턴 대학교 사학과 조교수-부교수(Tenure 취득)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 사학과 객원교수, 전 역사학회 회장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부설 현대한국학연구소 창립소장

3. 대한민국 건국기의 언행

해방 후 33년 만에 귀국한 이승만은 1945년 11월 28일 정동예배당에서 김구(金九) 선생과 함께 예배를 드린 다음 아래와 같이 의미심장한 연설을 하였다.

“나는 여러분께 감사합니다. 40년 동안 사람이 당하지 못할 갖은 고난을 받으며 감옥의 불같은 악형을 받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불러온 여러분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를 새로이 건설하는데 있어서 아까 김구 주석의 말씀대로 튼튼한 반석 위에 세우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물로 주신 이 성경 말씀을 토대로 해서 [새 나라를] 세우려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께서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반석 삼아 의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매진합시다.”

그 후 이승만은 1946년 2월에 반탁운동을 추진하기 위한 대중조직으로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결성하고, 1946년 6월에는 남한에 자율정부―이른바 단독정부―를 수립하는 추진기구로서 ‘민족통일총본부’(민통)를 발족시켰다. 이어서 1947년 7-8월에는 남한단정 수립과 총선거를 관철하는 기구로서 ‘한국민족대표자대회’와 ‘총선대책위원회’를 조직·발족시켰다. 그런데 이승만은 이들 여러 단체의 지도부에 기독교 목사와 장로 그리고 권사들(예컨대, 이윤영, 배은희 등 목사와 김활란 등 여성 지도자)을 발탁·기용하였다. 말하자면, 이승만은 해방 후 대한민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남한의 기독교 지도자들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국가 건설 작업을 진행시켰던 것이다.

1948년 5월 10일 총선거에서 동대문 갑구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이승만은 1948년 5월 31일에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제1차 회의)에서 임시의장으로 추대되었다. 제헌국회 임시의장 이승만은 이 역사적 회의를 개시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말로써 이윤영(李允榮) 목사(의원)에게 식순에 없는 기도를 부탁하였다.

“대한민국 독립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 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종교, 사상 무엇을 가지고 있든지 누구나 오늘을 당해 가지고 사람의 힘으로만 된 것이라고 우리가 자랑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간단한 말씀으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 부탁에 응하여 단상에 오른 이윤영 목사는 아래와 같은 기도를 드렸다.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을 ‥ 저희들은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고통과 수치를 신원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원치 아니한 민생의 도탄은 길면 길수록 이 땅에 악마의 권세가 확대되나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광은 이 땅에 오지 않을 수밖에 없을 줄 저희들은 생각하나이다. 원컨대 우리 조선 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우리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 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하야 저희들은 성스럽게 택함을 입어가지고 글자 그대로 민족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나 우리들의 책임이 중차대한 것을 저희들은 느끼고 우리 자신이 진실로 무력한 것을 생각할 때 지(智)와 인(仁)과 용(勇)과 모든 덕(德)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이러한 요소를‥간구하나이다. 이제 이로부터 국회가 성립이 되어서 우리 민족의 염원이 되는 모든 세계만방이 주시하고 기다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며, 또한 이로부터서 우리의 완전 자주독립이 이 땅에 오며 자손만대에 빛나고 푸르른 역사를 저희들이 정하는 이 사업을 완수하게 하야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이 회의를 사회하시는 의장으로부터 모든 의원 일동에게 건강을 주시옵고 또한 여기서 양심의 정의와 위신을 가지고 이 업무를 완수하게 도와주시옵기를 기도하나이다. 역사의 첫걸음을 걷는 오늘의 우리의 환희와 우리의 감격에 넘치는 이 민족적 기쁨을 다 하나님에게 영광과 감사를 올리나이다. 이 모든 말씀을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받들어 기도하나이다. 아멘.”3)

이 기도 후 계속된 회의에서 이승만은 재석 의원 198명 중 188표로 의장에 당선되었는데 오후에 속개된 회의에서 이승만 의장은 다시 한 번 아래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된다고 발언하였다.

“우리가[는] 오늘 우리 민국 제1차 국회를 열기 위하여 모인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이 있게 된 데 대하여 첫째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둘째 애국선열들의 희생적 혈전한 공적과 셋째로는 우리 우방들 특히 미국과 국련의 공의상 원조를 깊이 감사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후 약 두 달이 지난 7월 24일 국회에서 실시된 정부통령 선거에서 이승만은 180표의 압도적 다수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7월 24일에 거행된 정부통령 취임식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서를 했다. 그리고 8월 15일에 개최된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에서는 “하나님과 동포 앞에서 나의 직무를 다하기로 일층 더 결심하며 맹세한다”라는 취임사를 낭독했다.

4. 이승만 대통령의 기독교 장려정책

이상과 같이 1948년 8월에 대한민국 정부를 출범시킨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5월에 하야할 때까지 12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하였다. 이 기간에 그는 영부인 프란체스카(Francesca Donner Rhee) 여사와 함께 조석(朝夕)으로 기도와 성경 읽기를 실천하였으며, 서울 정동감리교회의 등록교인―1956년 이후에는 ‘명예장로’-로서 주일 예배를 거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독실한 신자로서의 모범을 보인 그는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을 사실상 형해화(形骸化)시키면서 기독교(특히 개신교)의 교세신장을 위해 일련의 특혜조치를 취하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기독교를 장려하기 위해 실시한 주요 조치는 다음과 같다.

(1) 국가의 주요 의식을 기독교 의식에 따라 집행하였다.
(2) 크리스마스를 국경일로 정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주목례(注目禮)로 바꾸었다.
(3) 군대에 군종제도(軍宗制度)를 도입함으로써 군에 복무하는 병사들에게 기독교 전도를 할 수 있는 길을 열고, 또 감옥에 형목제도(刑牧 制度)를 도입하여 옥중의 죄수들에게 기독교 전도의 문을 열었다.
(4) 정부 요직에 기독교 교인들을 많이 기용하고 기독교 교인들로 하여금 국회에 많이 진출하도록 권장하였다.
(5) 기독교 신문과 방송사의 설립, 기독교계 학교와 신학교의 설립, 그리고 YMCA 및 YWCA의 활동을 장려 내지 지원했다.
(6) 기독교 선교사들을 우대하고, 6·25전쟁 기간과 그 후에 외국(특히 미국)에서 들어오는 구호금과 구호물자를 ‘한국기독교연합회’를 통해 개별 교회와 교역자들 그리고 신학교 등에 배분토록 하였다.4)

해방 전 (현재의 남북한을 합친) 한국 전체의 기독교 교인 수는 37만 명에 불과했다. 해방 후 38선 이남에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남한에는 기독교 교인의 숫자가 조금씩 불어나 1950년에 이르러 그 수가 60만 명에 도달하였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통치 기간에 교인수가 부쩍 늘어 1960년에 남한의 기독교인 수는 무려 160만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 후 우리나라의 기독교 교세는-이승만 대통령 재임 시에 다져진 기초를 바탕으로-날로 팽창하여 2005년 말 현재 기독교인 총수가 1,376만 명(개신교 861만 명; 가톨릭교 514만 명)에 도달하였다. 달리 말하자면, 대한민국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기독교인 통치자였던 이승만 대통령의 기독교 장려정책에 힘입어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기독교 정권의 탄생을 경험하였고 나아가 아시아 굴지의 기독교 국가가 된 것이다.

5. 맺음말

이승만은 조선 왕조의 왕족 가운데 최초로 기독교로 개종한 지식인 개혁가였다. 한성감옥서에서 성경을 연구하며 옥중 전도에 열을 올린 결과 40여 명을 기독교로 인도하는 놀라운 전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한국 백성을 기독교로써 거듭 나게 만들 목적으로 미국 유학 기간에 기독교 신학을 공부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그는 서울과 호놀룰루에서 다년간 기독교 교육 내지 전도운동에 헌신하였다. 3·1운동 후 한국 독립운동의 최고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그는 새로 태어날 한국을 아시아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해방 후 33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귀국 직후 정동교회 예배당에서 ‘성경말씀을 토대로’ 새 나라를 건설하자고 역설했다. 1948년 5월 31일 대한민국 헌법을 제정하는 제1차 제헌국회의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그는 맨 먼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림으로써 대한민국 헌법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그는 “하나님과 동포 앞에서 나의 직무를 다하기로 일층 더 결심하며 맹세한다”라고 서약했다.

그 후 12년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남한을 통치하면서 그는 음·양으로 기독교 보급에 힘을 기울인 결과-원래 ‘모범적인’ 유교 및 불교 국가였던-우리나라를 역사상 처음으로 기독교 국가로 변모시키고 있었다. 이 대통령 집권기에 다져진 기독교 교회의 기반은 1960년대 이후 ‘폭발적인’ 교세 신장의 도약대가 되었다. 그 결과 한국은 아시아 굴지의 기독교 국가가 된 것이다. 한마디로, 이승만 대통령은 한국을 아시아 굴지의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 그의 이러한 공(功)은 서기 313년에 ‘종교 자유의 칙령’을 발포함으로써 로마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드는 데 기여한 콘스탄티누스 대제(Constantine the Great, r. 306-337)의 공적에 비견될 수 있다.5)

[이 글은 신앙세계사에서 간행한 《신앙세계》 (2008.7)에
“대한민국의 건국과 기독교- 이승만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재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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