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창세기 3장 고집불통(固執不通)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생각의 틀’ 즉 세계관 속에서 살아갑니다. 보고 듣고 느낀 것 등 다양한 경험들 속에서 나의 기준을 세워나갑니다. 그 누구도 ‘평견의 함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갈등과 싸움이 빚어지는 이유도 서로가 절대 굽히지 못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관 충돌인 경우가 많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내가 경험한 것들을 서로 연관시켜 자기중심적인 폐쇄적 구조물로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점점 고집불통(固執不通)이 되어간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 건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집의 늪’에서 빠져나오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래서 흔히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들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 근본이 무엇일까요?
지정의(知情意)의 타락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창세기 3장 원죄 사건으로 인해 그 영적 본질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최악의 비극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영적인 죽음뿐만 아니라 지성과 감성, 의지에도 타락의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죄로 오염되고 만 것이지요. 자연 만물도 함께 저주를 받아 허무한 데 굴복하는 피조물로 전락해버립니다(롬 8:20). 하나님을 떠난 모든 인간은 죄로 오염된 타락한 지정의로 왜곡된 세상을 계속 경험하면서 창세기 3, 6, 11장 나, 물질, 성공 중심의 세계관이 계속 강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은 세속적이고 반(反)복음적인 세계관을 계속 확대재생산 해오고 있습니다. 흑암문화가 범람하는 이 시대, 과연 우리 렘넌트들의 생각과 마음, 영혼 속에 실제 무엇이 각인, 뿌리, 체질화되고 있을까요? 복음에 대한 파편적 이해는 있으나 사고방식, 감정체계, 삶의 패턴은 불신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불신자와 엇비슷한 생존방식을 모색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그런 삶에 익숙해져, 마치 성경 속 렘넌트의 여정을 신화(神話)처럼 여기고는 언약의 여정에서 멀어진 상태에 있는 안타까운 모습들도 적잖게 목격됩니다.
‘관성의 법칙’처럼 오늘날 뇌 과학과 후생유전학의 발달은 인간의 뇌가 항상 새롭게 다듬어질 수 있는 유연성(뇌 가소성)이 있음을 밝힙니다. 거의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뇌는 후천적인 요인에 의해 계속 영향을 받으며 두뇌 네트워크를 형성해갑니다. 각인된 대로 응답이 오고, 뿌리내린 대로 열매를 거두며, 체질된 대로 인생을 살게 됩니다. 따라서 무엇을 경험하느냐, 무엇을 입력하고 저장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어느 뇌 과학자에 따르면, 1 페타바이트가 100만 기가바이트, 또는 5천억 페이지 분량의 책, 혹은 mp3 음악을 2천 년간 재생할 수 있는 데이터인데, 인간의 뇌에 입력되는 데이터가 무려 연간 30만 페타바이트나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입력된 엄청난 데이터는 1000억 개가 넘는 뇌세포와 100조 개 이상의 시냅스에 연결되어 몸에 밴 습관처럼 어떤 형태로든 세계관을 계속 강화하고 삶을 주도해나갑니다. 어떤 결정적인 전환점이나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세계관은 ‘관성의 법칙’처럼 이미 익숙해지고 강화된 내용과 방향을 충실히 따르기 마련입니다.
세계관 Reform 시간표 우리는 성경과 복음에 비추어 자신의 세계관을 Reform해야 합니다. 성경과 복음은 영혼구원, 신앙생활, 신학연구에만 적용되는 진리가 아닙니다. 성경과 복음의 기준은 대중문화를 비롯한 정치, 경제, 노동, 복지, 평등, 인권, 세대갈등, 실업, 교육, 과학기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