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호 목사 - 73세에 선교사로 새출발합니다

김창호 목사 - 73세에 선교사로 새출발합니다

복음제일교회 0 1,292 2021.01.21 22:58
<2009 성탄특집-늦깎이 목회자의 끝없는 변신>
교수 10년 경영자 4년 목사 17년…“73세에 선교사로 새출발 합니다”
김창호 목사 ‘43년만의 귀향’
천영식기자 kkach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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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도전은 어디까지일까’ 미국 볼티모어 새생명장로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김창호(73) 목사는 이번 성탄절이 끝나면 또 한번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목회활동을 정리하고 선교사라는 임무를 띠고 43년 만의 귀향을 서두르고 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미국 대학교수와 대기업 부사장을 역임한 뒤 56세에 목사로 변신해 목회활동을 펼쳐온 늦깎이 목회자의 새로운 도전은 삶에 안주해온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있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성탄절을 앞두고 한국행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김 목사를 지난 15일 볼티모어의 새생명장로교회에서 만났다.

◆ 기업 임원에서 목회자로 변신 = 1936년생인 김 목사는 서울대 법대 ‘56학번’이다. 공군 장교를 거쳐 1961년 졸업한 그는 한국에서의 짧은 사회생활을 중단한 채 단돈 200달러를 움켜쥐고 1967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필라델피아 소재 드렉셀대에서 석사과정으로 도서관학을 전공한 그는 펜실베이니아 로스쿨 도서관 직원을 거쳐 볼티모어 시립대 교수로 승승장구했다. 강단에 선 뒤에도 존스홉킨스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배움을 이어갔으며, 이 인연으로 1979년 남광토건 국제담당 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됐다. 약 10년의 교수생활 끝에 전업한 남광토건에서 4년간 경영인의 길을 걸었고, 이후 개인 사업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1988년 그는 돌연 버지니아 리치먼드에 있는 미 장로교(PCUSA)소속의 유니언 신학교에 입교, 인생의 방향을 크게 한번 전환했다. 유니언 신학교는 미 장로교에서 가장 먼저 만든 신학교로 입학이 쉽지 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가 그의 나이 52세. 34명의 입학생 중 가장 나이가 많았다. 구약을 읽기 위해 히브리어를 공부했고, 신약을 이해하기 위해 그리스어를 공부했다. 이는 유니언 신학교에서 필수였다. 힘든 과정이었지만 4년간의 신학교 생활을 낙오없이 마칠 수 있었다.

◆ 왜 목회자가 되었는가 = 그는 왜 신학교에 입교했을까. 김 목사는 “고등학교때 성경을 25번이나 읽었으나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다”면서 “성경이 왜 하나님의 말씀인지, 왜 기독교만 구원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신학교에서 2년 만에 답을 찾았다. 김 목사에 따르면 성경은 하루아침에 기록된 게 아니다. 구약은 30여명이 기원전부터 시작해 1000년 동안 기록한 것이고, 신약은 9명이 50년간 기록한 내용이다. 김 목사는 “각각 다른 시대에 구약과 신약을 기록했는데 앞뒤 맥락이 일치한다”면서 “하나님의 계시 없이는 구약과 신약이 이처럼 일관될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또 여타 종교는 현명한 인간들이 만들어낸 데 비해 기독교는 하나님의 계시로 성립됐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김 목사는 당초 이같은 의문을 풀면 사회생활로 돌아오려 했으나 신학교 교수들의 격려와 권유로 목사를 결심, 안수를 받게 됐다고 회고했다. 마침내 1992년 56세의 나이로 목회활동을 시작했다. 미 장로교단의 발령에 따라 다른 한 곳을 거쳐 1999년 현재의 새생명장로교회로 부임, 영어와 한국어 예배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그는 목회활동을 하면서도 교회 부지 일부에 저소득층을 위한 아파트를 짓는 데 힘을 쏟았다. 주민들의 반발을 뚫고 지난 6월 87가구가 입주하는 시니어 아파트를 완공, 한인 12가구가 입주하는 성과를 얻었다.

◆ 새로운 삶 = 김 목사는 12월31일자로 담임목사를 은퇴하고 17년간의 일선 목회활동을 접는다. 그리고 2010년 4월 한국으로 건너가 선교사로 새 삶을 살 계획이다. 43년 만의 귀향이다. 김 목사는 “2년 전 한국에 잠시 가서 영어캠프강사를 맡았을 때 열광했던 학생들이 생각났다”면서 “한국에서 영어예배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자원봉사를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원봉사 대상으로 대형 교회가 아닌 중간규모 교회를 물색 중이다. 자신의 ‘달란트’가 고국에서 귀하게 쓰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김 목사는 또 한국에 가면 미 역사에 대한 한국인의 오해를 바로잡는 일에도 나설 예정이다. 그는 “43년간 미국 생활을 하면서 지난번 수입소 파동때 ‘미친 소’와 같은 인식을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면서 “한국에서 그같은 논쟁이 일었을 때 안타까웠고, 기회가 되면 미국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미국과 한국을 잇는 민간외교관으로서의 활동도 벌여 나갈 계획이다.

미국인과 한국인의 종교생활을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김 목사는 “미국인은 실천하는 크리스천으로, 성경 그대로 살려고 한다”면서 “상대적으로 한국인은 남에게 보여주는 데 신경을 많이 쓴다”고 꼬집었다. 그는 “실천하는 교인이 될 것을 늘 강조한다”면서 “교회가 사회정의와 불우한 이웃에 대한 배려 등을 위해 노력해야 진정한 교회이자 크리스천”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미국 교회의 분위기에 대해 “미 장로교의 1만2000여개 교회 가운데 4000군데는 목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미국 장로교에선 엄격한 생활과 고된 활동을 버텨내지 못하는 목사들이 많을 만큼 열심히 일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한국에서의 자원봉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두 아들은 모두 미 해군사관학교를 졸업, 미국에서 군의관과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성탄절을 맞아 “하나님이 인간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다”면서 “성탄절은 인간 구원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의미를 되새겼다. 어찌 보면 은퇴와 함께 편안히 쉬어야 할 나이에 고국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김 목사의 도전은 ‘봉사하는 삶’의 모범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볼티모어 = 글·사진 천영식특파원 kkachi@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9-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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