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파에 대한 소고

교파에 대한 소고

복음제일교회 0 1,202 2021.01.18 23:24

기독교 교파들 3
나사렛교회 (-敎會 Church of the Nazarene)
프로테스탄트의 한 교파. 미국의 홀리네스운동(홀리네스파)에서 생긴 교회로, 1895년 메더디스트교회에서 이탈한 B.F. 브리지에 의해 로스앤젤레스에서 창립되었다. 처음에는 남캘리포니아뿐이었으나 다른 교회와도 합동해서 뒤에는 중서부에도 퍼졌으며, 또한 몇몇 대학과 학교 그리고 병원을 운영한다.

독일개혁파교회 (獨逸改革派敎會 German Reformed Church)
복음개혁파교회 구성 조직의 하나. 재미(在美) 개혁파교회의 전신(前身)으로 18세기에 독일 및 스위스에서 미국 펜실베이니아로 이주한 신자들에 의해서 조직되었다. 처음에는 네덜란드개혁교회의 지도를 받았으나, 1747년 제1회 교회회의를 열고, 1793년 기본규약을 채택하여 독립하였다.

강림교회 (降臨敎會 Church of the Nativity)
330년경 콘스탄티누스 대제(大帝)와 그 어머니 헬레나에 의하여 베들레헴에 세워진 세계 최고(最古)의 왕립교회. 현재의 건물은 6세기 중엽 유스티니아누스황제에 의해 재건된 것이다. 그 제단의 바로 밑에 그리스도가 태어난 것으로 믿어지는 구유의 성동굴(聖洞窟)이 보존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동굴에서 탄생한 것은 원래 신약외전(新約外典)의 《야곱원복음서(原福音書, 150년경)》에 기재되어 있으며, 유스티누스나 오리게네스의 저작에도 인용되고 있다. 제1회십자군이 라틴제국(帝國)을 창설하였을 때, 보두앵 1세(1100∼18)가 이 교회에서 즉위하였다. 현재 그 북쪽에 성카타라교회 (1883년 건설)가 인접해 있고, 지하에는 E. 히에로니무스가 《구약성서》의 라틴어역(譯)인 《불가타》를 완성하기 위해 살았던 동굴이 있다.

독일복음주의교회 (獨逸福音主義敎會 Evangelische Kirche in Deutschland)
독일에 있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연합조직. 종교개혁 이후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각영방(領邦;Land)마다 영주를 우두머리로 하는 통일조직으로서 루터파 또는 칼뱅의 전통에 입각한 개혁파 중 어느 한 편에 속해 있었다.
독일에 있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연합조직. 종교개혁 이후 독일의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각영방(領邦;Land)마다 영주를 우두머리로 하는 통일조직으로서 루터파 또는 칼뱅의 전통에 입각한 개혁파 중 어느 한 편에 속해 있었다. 뒤에 양파(兩派)의 합동으로 합동파 교회도 생겼으나, 정치형태가 크게 변하여도 이 영방교회(領邦敎會;Landeskirche)의 형태는 변하지 않았다. 1948년 모든 영방교회는 자립성을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공동행동을 취하기 위한 연합체로서 독일복음주의교회(EKD)를 결성하였다. 17개의 영방교회가 가맹하고 있는 EKD는 소속 신도수가 약 2700만 명에 이르고 공통찬송가를 제작하여 사회봉사활동이나 전도에 협력하였다. 한편 처음부터 영방교회에 속하지 않았던 침례교파·감리교파 등의 자유교회는 현재에도 이에 속하지 않고 있다.

동방전례가톨릭교회 (東方典禮-敎會 The Uniates Churches)
넓은 뜻으로는 고대 동로마제국 영토에 민족주의 테두리에서 생겨난 여러 교회. 좁은 뜻으로는 정교회(正敎會;Orthodox), 즉 비잔틴전례(典禮)를 따르고 있는 여러 교회.
넓은 뜻으로는 고대 동로마제국 영토에 민족주의 테두리에서 생겨난 여러 교회. 좁은 뜻으로는 정교회(正敎會;Orthodox), 즉 비잔틴전례(典禮)를 따르고 있는 여러 교회. 전례용어로서 고대 그리스어·고대 슬라브어·아라비아어·루마니아어 등을 사용하고, 성호는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십자(十字)를 그으며, 빵과 포도주 두 가지를 배령(拜領)하는 등의 특징을 가진다. 전세계에 약 2억의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 교리(敎理)·전례·도덕의 면에서 신학상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초대(初代) 7차에 걸친 공의회(公議會)의 결의에 기초한 가르침에 대해서는 로마가톨릭교회와 거의 같고, 유효성도 다름이 없다. 동·서로마의 분리 이래, 각국 교단이 독립하고 있지만,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總大主敎)의 명예로운 수위(首位)를 인정하고 있다. 로마교황의 베드로의 후계자로서의 수위권(首位權)은 인정하지 않는다.

성분묘교회 (聖墳墓敎會 Church of the Holy Sepulchre)
왕립교회의 하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골고다언덕과 그의 무덤을 보존하기 위하여 335년 콘스탄티누스대제가 건립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왕립교회의 하나.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던 골고다언덕과 그의 무덤을 보존하기 위하여 335년 콘스탄티누스대제가 건립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이다. 현존 교회는 대체로 십자군시대에 재건, 중수된 것이다. 예수의 무덤은 당시 전형적인 유대식 암굴무덤[岩窟墓(암굴묘)]으로, 부활성당(아나스타시스)이라 불리는 돔의 바로 아래에 있다. 그 주위의 벽을 따라서 카타콤(catacomb)식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누가복음 23:50∼53>). 아나스타시스 동쪽의 순교자성당 지하에는 콘스탄티누스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십자가를 발견했던 것으로 알려진 장소(성당)가 보존되어 있다. 예수의 무덤의 위치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현재 다마스쿠스문(門)의 북쪽에 있는 <정원의 무덤(Garden Tomb, BC 7세기)>을 진짜 무덤으로 생각하고 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基督敎大韓聖潔敎會 The Korea Evangelical Church)
한국 기독교 교파의 하나. 그 중심교리는 중생(重生)·성결·신유(神癒)·재림(再臨)의 4중복음, 즉 중생하게 하는 그리스도, 성결하게 하는 그리스도, 치료하게 하는 그리스도, 재림하는 그리스도이다.
한국 기독교 교파의 하나. 그 중심교리는 중생(重生)·성결·신유(神癒)·재림(再臨)의 4중복음, 즉 중생하게 하는 그리스도, 성결하게 하는 그리스도, 치료하게 하는 그리스도, 재림하는 그리스도이다. 이는 감리교의 창시자인 W. 웨즐리의 사상의 일부이기도 하며 복음주의사상의 계승이기도 하다.

연혁
한국의 성결교회는 일본 도쿄[東京(동경)]에서 동양선교회 소즉 선교학원을 졸업한 정빈(鄭彬)과 김상준(金相濬)이 귀국하여 1907년 서울 종로에 복음전도관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모체인 동양선교회 (東洋宣敎會;The Oriental Missionary Society)는 미국의 C.E. 카우던과 E.A. 킬버른이 극동지방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하여 1901년 일본 도쿄에 복음전도관을 창설함으로써 시작되었다. 한국에서는 1910년 영국인 J. 토머스가 한국 동양선교회에 초대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선교활동이 시작되었다. 1911년에는 현재의 서울신학대학의 전신인 성서학원을 설립하여 교역자를 양성하였으며 1913년에는 아현전도관이 설립되었다. 1921년에는 충정로에 성결교회 본부 및 성서학원 준공을 계기로 그 명칭을 조선예수교 동양선교회 성결교회로 하여 전도와 목회의 양면적 선교활동을 시행하는 획기적 발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어 교세의 성장에 따라 1924년 교역자회를 조직, 최초의 해외선교사로 이원근(李元根)전도사를 간도의 용정(龍井)에 파견하였다. 1929년에는 제1회 연회(年會)를 개최하여 교회헌법을 발표함으로써 정식교단의 발족을 보게 되었다. 1933년에는 제1회 총회를 개최하여 박현명(朴炫明) 목사를 총회장으로 선출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 이르러 교회에 대한 탄압정책이 심해지면서 1943년 조선총독부에 의하여 성결교회 복음이 일본 국체(國體)에 배치(背馳)된다는 이유로 강제해산되었으며 많은 신도들이 순교 및 옥고를 치렀다. 광복 후, 1945년 11월 재건총회를 개최하여 그 명칭을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변경하여 독립된 교단으로서의 독립·자주권을 선포하였다. 이후 교회는 다시 성장의 궤도에 올랐으나 6·25로 많은 교회가 파괴되고 최석모(崔錫模)·박현명·이건(李鍵)·김유연(金有淵)·박형규(朴亨圭) 등이 납북되었다. 뒤이어 불어닥친 교회분열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렸다가 몇번의 합동작업 끝에 재연합되어 1989년 현재 82주년의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교단조직 및 교세현황
교회 본부는 서울 대치동(大峙洞)에 있으며 현재 1549개의 교회와 2695명의 교역자, 57만여 명에 달하는 교인을 가진다. 기구편성은 총회·총회장 밑에 총회 본부, 각 위원회 등이 있으며 부속기관으로는 산하에 서울신학대학이 있고, 협의기구로 국제성결연맹·국내외교회연합회·OMS주한선교회·전국장로회·사회사업유지재단·신학대학동문회가 있다. 그 밖에 교단기관지 《활천(活泉)》을 간행하며 장학회와 기타 사회사업을 한다.

고대교회슬라브어 (古代敎會Old Church Slavic language)
9세기 중엽 큐리로스(슬라브어 이름 키릴)와 형인 메토디오스(메토디이)에 의해 슬라브어문자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인위적으로 정해진 11세기말까지의 슬라브어 문헌의 언어. 슬라브어파(語派) 중 최고(最古) 문헌의 문어(文語)이다.
9세기 중엽 큐리로스(슬라브어 이름 키릴)와 형인 메토디오스(메토디이)에 의해 슬라브어문자가 만들어지면서부터 인위적으로 정해진 11세기말까지의 슬라브어 문헌의 언어. 슬라브어파(語派) 중 최고(最古) 문헌의 문어(文語)이다. 이 시대의 문헌에서도 개개의 슬라브어의 특징이 현저한 경우에는 이를 제거하는 것이 관례였으며, 국가나 학자에 따라 어느 정도 범위가 다르다. 또 이 시대에 존재했었다고 생각되지만 문헌에는 나와 있지 않은 형태를 포함하여 넓게 생각하는 견해도 있어 그런 경우를 고려하여 <고대 슬라브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한 이 언어는 제1기(유리로스메토디오스어라고도 불림)에 마케도니아(당시 불가리아의 일부)의 방언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리아에서는 <고대 불가리아어>라고 하고 있다. 고대교회슬라브어는 슬라브어 중에서도 가장 고풍적이며 각각의 슬라브어에서 상실된 오래 된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다. 때문에 인구어(印歐語;인도 유럽어) 비교문법에서는 슬라브 조어(祖語) 대신 사용되고 있는데, 몇 가지의 특징으로 미루어 슬라브어파의 남쪽 그룹에 속해 있었던 것이 명백하다. 이 언어는 현존하는 사본(寫本)의 언어로서 종교적인 면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슬라브문화 전체에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각 지역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하여 지방적 특징을 지닌 교회슬라브어로 그 모습을 바꾸어 갔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교회슬라브어는 러시아어 발달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으며, 그 후 수세기에 걸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 언어는 우선 글라골문자로 쓰였으며 약 50년 뒤부터는 키릴문자로도 쓰이게 되어 2가지 문자의 문헌이 있다. 현존하는 문헌 중 복음서가 가장 많은데 그 대부분이 그리스어로부터 번역된 것이다. 다만 큐리로스 등의 원본은 없고 그 사본에 지나지 않는다. 이 언어의 특징은 음성면에서는 비모음(鼻母音)·약화음(弱化音)을 지니고 있으며, 명사의 곡용(曲用)·동사의 활용, 나아가서는 분사(分詞)도 형식이 다양하여 통사론(統辭論)에서는 이른바 <독립여격(獨立與格)>이 특징적이다. 유형적으로는 고도로 굴절(屈折)된 형태의 언어이다.

 루터파교회
16세기 독일의 루터가 종교개혁으로 성립시킨 그리스도교의 한 교파. 복음주의 교파로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16세기 독일의 루터가 종교개혁으로 성립시킨 그리스도교의 한 교파. 복음주의 교파로서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독일·북유럽에서 북아메리카·아시아·아프리카로 전파되었으며, 신도수 약 7000만으로 그리스도교교파로서는 로마가톨릭·그리스정교에 다음가는 교파이다.
발단
가톨릭교회에 대한 개혁의 움직임은 영국의 J. 위클리프와 보헤미아의 J. 후스 등에서 찾아볼 수 있지만, 종교개혁은 루터가 성서를 새로운 각도에서 파고들어 하느님의 은혜를 재발견함으로써 시작되었고,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가톨릭교회의 면죄부에 반대하는 95개조의 논제(論題)를 공개함으로써 역사적 사건이 되었다. 루터의 개혁은 본래 교회 관습에 대한 비판이나 개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성서의 이해를 통한 혁신으로서, 이것을 가톨릭교회 안에서 실행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당시의 교회 상황이나 체제, 국제적·국내적 정치상황 등이 이를 허용하지 않았고 로마교황청으로부터 파문당함으로써 동조자들과 함께 자신들의 교회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전개
루터 자신은 <루터파> 교회라는 의도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교회는 모름지기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어야만 한다고 설교하였는데,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루터적 교회>라고 부른 것이 정착함으로써 루터의 종교개혁에 관계한 각지의 교회가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루터파교회는 우선 루터가 대학의 신학교수로 있던 비텐베르크와 그 주변, 작센선제후령(選帝候領)으로부터 중부·북부 독일, 북유럽각국으로 퍼졌으며, 당시 각 지역에서 국교회 또는 이에 준하는 형태를 취하였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의 화의(和議)에 의해서 마침내 제국법상(帝國法上)으로도 존재를 공인받아 그후 서구 그리스도교의 큰 주류의 하나가 되었다. 교리중심의 정통주의 시대 또는 경전주의에서 근대로 거쳐왔는데, 그 동안 미국에서도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을 중심으로 루터파교회가 성립하였고, 18세기 이후 아시아·아프리카·남아메리카 각지에 전도되었다.
세계연맹
세계 각지의 루터파교회의 75%가 1947년 <루터세계연맹>을 결성하여 본부를 제네바에 두고 있다. 현재 가입한 신도수는 전체의 약 93%이다. 에큐메니컬운동에도 적극적이며, 최근에는 로마가톨릭과의 대화와 협력에도 획기적인 전개를 보이고 있다. 현재 한국의 루터파교회수는 24개 교회, 신도수는 약 7000명(1993)이다.
교리
신앙과 교리와 신앙생활의 원천으로서<성서만>을 주장하며 신앙고백을 중시하고 있다. 성서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로 이루어진, 죄인에 대한 용서와 구원이라는 하느님의 은혜와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신앙에 있다고 하고, 이 믿음에서 신도들이 교회와 사회를 위해서 책임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강조하고 있다. 루터의 이 <직업소명관>은 근대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교리는 <소교리문답> <아우크스부르크신앙고백>에 잘 밝혀져 있다.

칼뱅파교회(장로교)
프로테스탄트 여러 교회에서 루터파에 대하여 칼뱅파(캘빈파)교회를 가리키는 호칭. 프로테스탄트 여러 교회(敎會)의 총칭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프로테스탄트 여러 교회에서 루터파에 대하여 칼뱅파(캘빈파)교회를 가리키는 호칭. 프로테스탄트 여러 교회(敎會)의 총칭으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스위스와 남부독일의 여러 도시는 루터주의와 좀 성격을 달리하는 종교개혁을 하였는데, 이것이 개혁파의 원류(源流)이다. 이 개혁파는 뒤이어 J. 칼뱅과 J.H. 불링거에 의해서 주로 제네바를 거점으로 하여 통합되었고, 1550년대에 프랑스·스코틀랜드·네덜란드·독일·폴란드 남부·헝가리에 침투하였다. 12세기초 P. 왈도의 사상을 이어받은 북부 이탈리아의 왈도파는 1532년부터 개혁파의 한 파에 가입하였다. 정식으로는 <하느님의 말씀에 따라 개혁된 교회>이나 <개혁된 교회>라고 줄여 개혁파 교회라고 말한다.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J. 녹스)에 기원을 두는 교회는 <장로파 교회>라고 불리지만, 신앙내용과 교회제도는 개혁파와 기본적으로 동일하며, 장로와 목사의 회의가 지도권을 가지므로 한 개인에게 권력이 집중되지 않는다. 초기의 지도자가 모두 인문주의자(人文主義者)이고, 또한 이 파의 지반(地盤)이 모두 서구였기 때문에, 서구의 지적(知的) 합리주의와 대결·절충을 거듭하여 서구적 민주주의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다. 특색으로는 하느님의 초월성과 주권(主權)을 강조하고, 교리, 교회의 질서와 규율, 국가에 대한 교회의 자립을 중요시한다. 따라서 교회의 자립의 침해에 대해서는 맞서는 경향이 있다. 신학을 대표하는 것은 칼뱅의 《그리스도교 강요(綱要)》이며, K. 발트의 위치도 근래에 와서 비중이 커졌다. 루터파와는 16세기 이래 <성찬론(聖餐論)>과 그 밖의 것을 둘러싸고 논쟁과 대화를 계속했지만 기풍은 크게 다르다. 1877년 <개혁파 세계연맹>을 조직하고, 1970년에는 회중파(會衆派, 또는 組合派) 세계연맹을 병합하였다. 산하의 교회인구는 4900만명에 달하며, 한국에는 100만명 정도의 신도가 있다.

아르미니우스派敎會 The Arminian
반(反)칼뱅주의 프로테스탄트 일파. 네덜란드의 개혁파 신학자인 J. 아르미니우스의 신학적 견해에 따라 그가 죽은 뒤, 도르트레히트회의(1618∼19)에 <레몬스트란티아(이의신청)>라는 문서를 제출하여 이후 레몬스트런스파라고도 하게 된 집단 및 신학적 입장을 같이 하는 여러 교파를 통틀어 이른다. 신이 처음부터 인간을 구제할 것인가 멸망시킬 것인가를 선택하고 있다는 엄격한 예정설에 반대하고, 신은 인간에게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로 구제 또는 멸망을 선택한다는 예정설을 주장하였으나 도르트레히트회의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는 18세기 J. 웨슬리에서 비롯된 감리교회, 홀리니스교회, 구세군 등이 있다. 신의 은총과 그리스드 속죄 행위의 보편성, 신의 선행하는 은총 밑에서 인간의 자유나 책임 등을 강조한다. 영국에서 북아메리카로 퍼졌고 거기에서 세계전도에 의해 각지로 퍼져 전도·교육·봉사의 여러 활동을 전세계에서 실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감리교파, 영국에서는 웨슬리파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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