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여자가 죽어 없어졌다. 무섭네 어쩌네 한참을 떠들더니 조용하다. 우리네 뉴스가 늘 그렇듯 야단법석하며 떠들썩하다가도 다른 사건에 밀려 신문 한 귀퉁이로 처박혀 버린다. 살기도 힘든데 누군들 죽이고 파묻은 얘기를 더 듣고 싶어 하겠냐 마는 그 해결책도 미뤄 놓았을까 봐 걱정이다. 몇 년 전엔 몸을 함부로 굴렸다고 스무 명도 넘게 토막내 죽인 유영철이더니, 이번엔 강호순이다. 이번이 제3의 유영철인가, 제4인가? 우린 그저 숫자만 세고 있다. 여성의 인권이나 권리, 차별 철폐 등을 얘기해 왔던 내가 좀 머쓱해진다.
궁금하다. 왜 남자들은 화가 나면 여자의 몸에다 분풀이를 할까? 살인이야 개개인에 의해 행해졌겠지만 그 행위 저변에는 우리 사회문화 속에 깔려 있는 여성 혐오 의식이 반영된 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그것은 사회문제이고 책임도 사회의 몫이다. 여성의 몸이 갖는 사회적 의미는 대체 뭘까?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자들을 응징하고자 그토록 잔인하게 살인을 했다는 유영철. 몸의 주인이야 여자지만 그 몸을 함부로 대하고 함부로 굴리는 자는 남자 아닌가? 응징? 누가 누구를?
속말에 술, 담배, 그리고 여자가 남자를 망친다는 말이 있다. 여자는 술이나 담배와 동격이 되는 셈이다. 여성을 오브제로 사용한 작품들을 보자. 나체의 여자와 똑같이 생긴 마네킹을 나란히 세워 놓고 누가 사람인지 마네킹인지 헷갈리게 만든 헬무트 뉴턴의 사진 작품도 있다. 여성에 대한 노골적인 폭력을 정당화하는 일본의 외설 사진가인 아라키의 사진은 한술 더 뜬다. 여자를 쇠줄로 묶고 위태롭게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아 놓지를 않나, 여자를 연상시키는 꽃을 갖고 변태적으로 표현하지를 않나. 정말로 엽기적이다.
여성을 경시하고 고통이나 치욕, 강간을 마치 여성이 즐기는 것으로 표현하거나, 비굴하고 억압적으로 여성의 몸을 전시하는 따위의 표현은 그 작품의 예술적인 가치나 작가의 철학과 관계없이 금지돼야 할 것이다. 그렇구나! 여자는 마네킹과도, 시들면 따서 버리는 꽃과도 같구나. 그래서 마네킹의 팔·다리를 해체하듯, 쇠줄로 여자를 묶어 천장에 매달아 작품을 만들듯, 시든 꽃 쓰레기통에 처박아 넣듯이 여자의 몸을 훼손하면서도 죄의식을 갖지 않는가 보다.
이번 사건 후 사회에서 내려준 처방을 한번 보자. ‘밤늦게 귀가하거나, 낯선 차를 타거나, 부츠와 스타킹과 생머리의 여자들을 범죄 대상으로…’. 그러니까 일찍 일찍 다니고 남의 차 타지 말고. 옷차림도 단정히 하라고? 소가 다 웃겠다. 원인을 분석하고 근절할 생각을 해야지, 미친개에 물리지 않도록 여자들을 보고 집에서 나오지 말라고? 전염병이 유행해도 손을 닦고 물을 끓여 먹는 건 우리가 할 일이고, 그 병이 더 확산돼 피해자가 더 생겨나지 않게 백신이나 예방약을 만들어야 하는 것은 사회, 아니 국가가 할 일이다. 설마 이번에도 제3, 제4 같이 번호만 매기고 사건을 마무리하진 않겠지.
그럼 여성들이 안전하게 밤에도 일하고 활보할 수 있게 국가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은 뭐가 있을까?
To Top가로등이나 CCTV 설치 확대는 물론 첨단 통신망의 활용도 시급하다. 하지만 이런 문제는 근본적으로 여자들을 성적 도구나 성 상품으로 생각하는 많은 남자의 의식이 먼저 바뀌어야 해결될 것이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므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더 적극적으로, 더 빠르게, 사회 전체에 양성 평등 의식을 확산시켜야 할 것이다. 모든 남자가 ‘여자도 나와 동등한 인간’이라고 인식할 때까지 말이다.